신우(新宇)
【정견망】
인류(人類 rénlèi )라는 이 명사는 ‘인루(人累 rénlèi 역주: 사람이 피곤하다는 뜻인데 중국어 발음이 서로 같다)로 들리는데 사람 노릇 하기가 피곤하다는 말에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내심으로 공명(共鳴)할 것이다. 당신이 이 말을 받아들이든 않든, 사람 노릇 하기란 정말로 고생스럽다.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 첫 반응은 “으앙”하는 울음소리다. 마치 이 속세는 반드시 고생스럽다는 뜻인 것 같은데 고생(苦 kǔ)스럽기 때문에 우는(哭 kū) 것이다.
[역주: 필자는 여기서 중국어로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단어를 이용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류(類)와 루(累)는 발음과 성조까지 일치하고 고(苦)와 곡(哭)은 발음은 같고 성조만 다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 환경을 우리는 지구(地球)라고 부른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지구 표면의 70%는 바다로 덮여 있는데 바닷물의 맛은 짜면서 또 쓰고 떫은 맛이 있다. 이렇게 쓰기 때문에 불가(佛家)에서는 늘 “고해(苦海)는 끝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나머지 30%가 인류사회가 주도하는 육지인데 이 인류 사회라는 세간(世間) 역시 여러분이 알다시피 고생스러운 것으로 인생이란 슬픔과 고생이 달콤함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속세 즉 인간 세상의 별명이 홍진(紅塵)이다. 그런데 붉은 색은 오행에서 화(火)의 색이고 화의 맛은 당연히 쓴맛이다. 그렇다면 홍진 역시 고생스럽다는 뜻이다. 즉 이 지구의 맛이 쓰다고 할 수 있는데, 쓴맛은 오장(五臟)에서 심(心)으로 들어간다.
[역주: 필자는 여기서 중의(中醫) 오행학설을 이용하는데 오미(五味) 중 화(火)에 해당하는 맛이 쓴맛이고 오장에서는 심장(心)이 되고 색깔은 붉은 색(紅色)이다. 그런데 심(心)은 또 오장의 심장도 되지만 마음이란 의미도 있다.]
그렇다, 홍진이란 바로 마음을 닦고 마음을 연마(修心煉心)하는 장소다. 저 쓴맛은 마치 연단로(煉丹爐)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사람을 용련(熔煉)하는 것 같다. 모두들 인생에는 백 가지 맛이 있음을 아는데 백 가지 맛의 으뜸은 소금이다. 소금은 짜면서 또 쓴맛이 있어서 마치 바닷물의 맛과 같다. 중국 사람들은 요리할 때나 밥을 먹을 때 모두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음을 안다. 소금이란 쓴맛을 대표하는데 왜 살아가면서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하는가?
왜냐하면 고생(苦)이야말로 바른 이치[正理]이고, 사람이 생활하는 환경은 고생스럽기 때문에 고생을 겪는 것[吃苦 역주: 직역하면 쓴맛을 먹는다는 뜻으로 쓴맛은 고생과 통한다]이 바른 이치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연세가 좀 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고생을 좀 겪는 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좋음을 알았다. 민간에서도 흔히 세상에서 쓴맛을 봐야 비로소 큰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외에도 또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면,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고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를 어지럽게 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수련하지 않더라도 고생을 겪는 것은 사람에게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고생을 겪으면 사람의 의지를 단련시켜 사람을 성취시킬 수 있는데, 보다 깊은 층면에서 보자면 고생을 겪으면 사람의 죄업(罪業)을 감소시킬 수 있고, 사람의 죄업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이후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세계의 몇몇 전통적인 큰 정교(正敎)들은 모두 사람더러 고행을 겪게 한다. 오직 사이비 종교나 사악한 것들만이 사람들더러 멋대로 방종하고 향락하며 사치하라고 가르칠 뿐이다. 이치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면 생명을 몹시 두려운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이 생활하는 지구는 이렇게 고생스럽고, 왜 고생을 겪는 것만이 바른 이치가 되는가? 불법(佛法)에서 얻은 깨달음에 따르면 사람(세계 대다수 사람들) 생명은 지구에서 내원한 것이 아니고 인류 사회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범간(凡間 세간)은 사람의 진정한 고향이 아니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천상(天上)에서 내원했으며, 천상의 집이야말로 사람의 진정한 고향이다.
사람은 죄업이 있기 때문에 경계(境界)가 낮아져 인간 세상에 왔기 때문에 고생을 겪고 죄업을 감소시켜야만 천계(天界)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단지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게 아니다. 물론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삶을 누리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적당히 노력해야 하지만 인생은 절대 이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사람이 된 근본 목적이 아니다. 반본귀진(返本歸真)해서 천상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 인간 세상이란 수련하는 장소로 마음을 닦고 업(業)을 없애 자신을 순수하고 깨끗하게 해야만 비로소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홍진이 기왕 수련하는 장소이고 사람이 수련을 해야 한다면 그럼 반드시 심법(心法)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심법이란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이자 불가에서 말하는 법(法)인데 어떻게 심법을 찾을 수 있는가? 지구가 기왕에 사람의 수련을 위해 이렇게 고생스런 환경을 마련한 것이라면 다시 말해 즉 지구상의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면, 그럼 지구는 또 누가 만들었는가? 그렇다면 지구상에는 왜 또 인류가 존재하게 된 것일까?
현재 세상에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똑똑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파룬따파[法輪大法 법륜불법(法輪佛法)이라고도 한다]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3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