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명혜 편집부의 《아첨과 자심생마》를 읽고 약간의 깨달음이 있어 이를 적어내 나 자신과 동수들이 경계로 삼기 바란다.
내가 보기에 수련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했다고 여기면, 많든 적든 사람 마음이 나타나기가 아주 쉽다. 환희심, 과시심, 자아에 대한 집착 등의 사람 마음이 생기기 쉬운데 관건은 제때에 경각(驚覺)해 사람 마음과 잡념을 청리하고 안으로 찾는데 주의해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닦는 것이다.
“남에게 아첨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현상이 출현한 것은 수련인이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한 가지를 망각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것은 다 사존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는 사존께서 우리를 구도하고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층층 걸어 내려오시느라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셨을지 아는가?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이 몇 년 동안의 수련 중에 나는 당신들을 위해 매우 많은 것을 감당한 외에, 동시에 당신들의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당신들에게 점오(點悟)해 주었고,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 당신들을 보살펴주었으며, 당신들이 원만할 수 있게 하려고 당신들이 부동한 층차에서 진 빚을 갚아주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속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이지적이지 못하고 대법(大法)과 수련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를 뿐이다.”(《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
속인 중에서 우리의 기술, 기능, 기예와 각종 성취 등 일체는 다 사존(師尊)께서 주신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사존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 수련 과정에서, 각종 시련 속에서, 우리의 매 한 걸음마다 모두 사존께서 우리를 이끌어 걸어오신 것이다. 우리가 이 한 점을 생각할 때면 환희심, 과시심, 자아가 팽창하는 사람마음 등이 단숨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남을 칭찬하고 아첨할 때, 당신은 왜 그를 칭찬하고 아첨하려 하는가? 그의 모든 것은 다 사존께서 주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경사경법(敬師敬法)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교만할 게 뭐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남에게 아첨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에 땀이 날 지경이다. 남을 칭찬하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으로 쉽사리 질투심 등 사람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으면 길을 잘못 걷기 쉽다.
다른 동수가 성취한 것을 보면 우리는 묵묵히 동수의 정념을 더해줄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수의 성공 역시 사존께서 가지(加持)해주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치켜세우고 칭찬할 필요가 뭐 있는가? 오직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이다!
정법(正法) 중에서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에 부합해서 수련해야 한다. 특히 해외 환경은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이 크고 무대가 넓으니 그야말로 “팔선(八仙)이 바다를 건너며 각자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장기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아주 많다. 우리는 수련인이고 사존께서 우리를 가지(加持)해 주시는데, 다만 당신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또는 당신이 오래 전에 이것을 하려고 서약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사존께서 곧 당신을 가지하시고, 당신을 성취시켜 주시는데 일을 잘해서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다발과 박수갈채 속에서, 이런 환경에서는 또 잘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시시각각 경계하고 시시각각 안으로 찾아야만 한다. 생각해 보라! 신앙이 있는 속인들도 좋은 일을 만나거나, 뭔가 성취하면 곧 “신(神)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한다. 하물며 우리는 대법이 수련해 낸 대법제자들이 아닌가!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늘 일부 깨달음과 교류 문장을 써서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해왔다. 글을 쓸 때 단지 쓰고 싶다는 이런 마음만 먹으면, 전력을 기울여 아주 빨리 써낼 수 있다. 이는 사존의 가지(加持)로 내게 지혜를 열어주신 것임을 안다. 내가 배운 것은 아마도 나의 오랜 소망과 서약일 텐데 단지 자신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두려울 뿐이다.
문장이 발표되면 환희심, 과시심, 득의양양 하는 등의 사람마음이 생기기 쉽다. 이때 즉시 일체는 다 사존께서 가지하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 편집 동수들의 희생도 있다. 나는 바로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해,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마음과 잡념을 모두 청리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시 정상을 되찾아 평온해질 수 있다.
이 글을 써서 나 자신과 동수들을 일깨우고자 한다. 마땅히 시시각각 자신을 바로잡고 스스로에게 경고해야 하며 수련 중에 빗나가지 말고 일체는 다 법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당신이 빗나가 떨어질 때면 기뻐하는 것은 구세력이다.
사존의 한 단락 설법을 다시 되새겨보자.
“그러나 수련생으로 말하면 엄숙하게 자신을 대해야 한다. 일개 대법제자로 말하면, 우리는 자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을 수 없으며 대법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필경 대법이 육성한 생명으로서, 당신의 위덕은 곧 미래의 우주 중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게 될 텐데, 우리가 자신의 길을 잘 걷지 않을 수 있겠는가?”(《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수련의 기연(機緣)에는 한계가 있으니 우리 모두 이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정진하기 바란다! 사명을 저버리지 맙시다! 사존께서 마음 놓으실 수 있게 합시다!
법에 어긋나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