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추원(秋遠)
【정견망】
남을 무시하는 마음과 남에게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는 이 두 가지 마음이 내 몸에서 두드러지게 반영되었다. 나는 수많은 집착심들이 이 두 마음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겉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자신이 강한 방면에서는 기뻐하고, 과시하며,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는 반면, 자신이 약한 방면에서는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하거나, 낙담하고, 회피하거나 또는 두려워하는데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두려워한다.
사람들 중에서도 표현이 두드러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의 강점에 대해 부러워하고, 자랑하며, 부풀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약점에 대해 비웃고, 비꼬고, 즐거워하며 경멸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심태(心態)에 물든 것 같은데 마치 사람이 되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 갈수록 더 좋아지기 위한 것 같다. 이런 가치관은 사실 속인 중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것이다.
1. 남을 무시하는 표현
최근 남을 무시하는 마음을 되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아주 심각한 것을 발견했는데 일찍이 마음속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 몇 년은 말할 필요도 없는데, 그 당시에는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 2년을 말하자면 이미 존재하지 말아야 함을 알면서도 또 완전히 멈추지 못했는데 여전히 남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어제, 나는 전에 내가 무시했던 동수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참회하고 사과하려 했는데 그 수가 그야말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아울러 사람을 무시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가령 남의 외모가 나보다 못하다든가 하는 이런 것들의 수량이 아주 많았다.
사실 내 외모도 평범하지만, 남이 뚱뚱하거나 또는 늙어 보이면 무시했다. 외모 외에도, 어떤 동수는 너무 자신이 없어 보여 무시했다. 어떤 단계에서는 또 수련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보여서 무시하기도 했다. 어떤 동수는 혼인에 문제가 나타나 무시하기도 했고, 어떤 동수는 성질이 급해서 무시하는 등등. 이런 것들은 대부분 내 마음속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겉으로 표현되진 않았다.
또 겉으로 표현된 것도 있는데 가령 과거에 동수와 이야기하면서 늘 다른 동수들에 대해 담론했고, 다른 이의 약점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당신이 한마디 내가 한마디 하면서 마치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라도 있는 것 같았는데, 남의 객관적인 상황에서부터 수련 상태에 이르기까지 말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벼운 농담 속에서 이미 계[戒 수구(修口)의 계]를 범해 업(業)을 지은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화할 때 남을 비웃으면 덕을 크게 잃는 것임을 알고 기본적으로는 중단했지만 참지 못해 말하고 나서 후회한 적도 있다. 아울러 더욱 많은 것들은 내심으로 무시하는 것인데 일부 바르지 못한 생각이 모두 습관처럼 되었다.
가령, 아주 뚱뚱한 사람을 보거나 뒤뚱뒤뚱한 걸음걸이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쳐다본다. 눈빛 속에 자신도 모르게 남을 무시하는 그런 비웃음이 담겨 있다. 지금은 자신에게 무엇을 보아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심성을 지키고 선념(善念)을 지키며 마음속으로 덕(德)을 쌓고 선(善)을 행해야지 덕을 잃거나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은 병을 치료할 때에 틀림없이 밖으로 배출할 것이나, 기를 훔치는 사람, 그는 배출조차도 하지 않고 온몸에 넣어서 어떤 병기(病氣)든 다 있는데, 신체 속까지 모두 칠흑(漆黑)이다. 그가 늘 德(더)를 손상하기에 그의 겉도 시커먼데, 업력장(業力場)이 크고 德(더)가 많이 손상되어, 안팎이 모두 시커멓다. 기를 훔치는 사람, 그가 만약 자신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 남에게 德(더)를 주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음을 안다면 그는 정말로 하지 않을 것이다.”(《전법륜》)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것은 마음속에 늘 남을 해치려는 그런 악념(惡念)이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안팎을 검은 업력으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날마다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하는 것이다.
동수의 문장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전에 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신이 무엇을 자랑하면 하느님은 곧 그것을 부족하게 하신다.’ 한 마디 더 추가하자면 ‘당신이 무엇을 비웃으면 하느님은 곧 당신이 그런 일을 겪게 하신다.’”
자신이 무엇을 비웃으면 자신이 그런 상황에 봉착하는 현상을 나도 몇 가지 목격했지만 지면에 제한이 있으니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내 기억에 예수는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반드시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아진다”고 말했다.
[역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루가복음 14-11)]
2. 무지(無知)하면 겁이 없다
내가 보기에 남을 무시하는 것은 무지(無知)하기 때문인데, 자신이 현재 지닌 강점과 장점 등을 남을 무시하는 밑천으로 삼는다. 사실 장점이란 이런 복분(福分)은 자신이 과거에 심은 선과(善果)인데, 자신이 선하게 쓰지 않고 남을 무시하는 데 사용한다면 미래에 악과(惡果)를 심는 것과 같아서 신(神)은 당신의 복분을 가져갈 것이다. 장점이란 특정한 사람에게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일시적으로 분배된 것과 같아서, 잘 사용하면 미래의 복분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회수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복분이 너무 많다고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과거를 되돌아보면, 내가 남을 무시했을 때는 정말로 이런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고 무지해서 겁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남의 약점을 비웃을 때는 마치 자신이 지닌 이른바 장점을 영원히 가질 것 같았고 마치 자신은 별것 아닌 사람을 깔볼 자격이 있는 것처럼 여겼다. 배후에 숨겨진 대사는 “당신은 (장점이)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인데 정말로 너무나도 어리석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현대식의 어리석음이 오히려 그들이 우주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한 세대에 있어서는 몹시 두려운 것이다.”(《2007년 뉴욕법회설법》)
인과(因果)의 이치로 생각해 보면, 남의 혼인이 파탄 난 것을 비웃는 사람이 자기 결혼이 잘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남의 아이를 비웃는 사람이 자기 아이가 잘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남의 아픈 곳만 찌르는데, 남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만 전문적으로 찌른다. 마치 이렇게 해야만 시원한 것 같고 정말이지 자신이 더 독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한 동수는 남의 아픈 점을 뒤에서 말하고, 앞에서는 풍자했는데 어떤 방면의 약점이든 놓치지 않았다. 여기까지 쓰면서 막 그 동수의 심지(心地)가 정말 선하지 못하고 어떠어떠하게 나쁘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 자신을 생각해보았다. 사실 나 역시 그럴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별 차이가 없었다. 단지 대부분 마음속에 담아두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전에 내가 결혼이 순조롭지 못했던 동수를 무시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겠지만 마음속으로 그들의 어디가 좋지 않다고 무시했고, 또 그렇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나중에, 나 자신의 결혼이 파탄 날 뻔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때 내 심성이 차(差)해서 말다툼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 심성을 제고하자 상황이 완전히 전변(轉變)되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긴 이유는 내가 남을 비웃은 것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교류문장을 쓰면서 방금 본 어느 광고에서 ‘가장 심층이 청결’하다는 글을 봤는데, 사부님께서 표면에 들뜨지 말고 자신의 깊은 곳을 파보아야 한다고 점화(點化)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동수들 사이에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아주 보편적이며, 거의 누구다 다 약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첫 일념이 남을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지 동정하고 이해하며 잘 대해주는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각종 마난(魔難)이 나타났을 때 어떤 원인 때문에 발생했는지 찾지 못할 때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전에 자신이 남을 무시했기 때문에 비슷한 일을 초래한 것이겠는가?
생생세세 기나긴 윤회 속에서 매 사람마다 아마 각종 다양한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가난하고 천한 이, 부귀한 이, 황제, 거지, 문인, 어리석은 자, 장애인 등등 흥망성쇠와 영예와 치욕이 끊임없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한다고 거드름을 피우며 남을 비웃는 것은 정말로 우매한 것이다.
중국 속담에 “황하가 30년 동쪽으로 흐르면 30년은 서쪽으로 흐른다”는 말이 있다. 즉, 그 무엇이든 그 누구든 영원한 것은 아니니 겸손해야 하며 거만하지 말아야 한다. 신(神)이 내게 주신 장점은 내가 잠시 보관하는 거라 생각하고, 선(善)하게 써야만 복분이 자손 후대로 확장해서 이어갈 수 있다. 거만하고 어리석게 굴어 복분을 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3. 무신론의 해로움
계속해서 생각해보니, 사실 우매함 뒤에는 또 무신론(無神論)의 독해가 있었다. 원래 인생의 운명, 복과 재앙은 신(神)이 배치하신 것으로 자신의 전세(前世), 그 이전 세(世) 등의 인과에 따라 배치된 것이다. 만약 이를 믿는다면 자연히 선을 행하면 복을 쌓고 악을 행하면 재앙을 당하는 이치를 알게 될 것인데 다시 말해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른다. 그러면 말이나 생각에서 자연히 남에게 악을 저지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대담할 정도로 오만해진 이유는 사실 그들이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현재 지닌 모든 것을 다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신이 분배한 것임을 망각하는데, 신이 주신 것은 다시 거둬들일 수도 있음을 모른다. 마치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고, 아무런 후과(後果)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동수들이 비록 속인들에게 진상 편지를 쓸 때 끊임없이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고 말했음에도 사실상 일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무지해서 용감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든 다 멋대로 하는데 도덕적이었던 고인(古人)들처럼 “인간 세상의 비밀스런 말도 하늘은 우레처럼 듣고 어두운 실내에서 마음을 어겨도 신(神)의 눈은 번개처럼 본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정말로 인과의 엄중함과 엄격함 및 인과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음을 믿는다면 마음을 움직일 때 마치 깊은 연못에 서 있거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할 것이다. 어찌 그렇게 대담하게 멋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