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몇 달 동안 몸이 늘 불편하고 나른하며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어서 아침 연공을 할 수 없었다. 말하기가 싫었고 몸이 허약해졌다. 줄곧 원인을 찾지 못했다.
한 친척 동수가 말했다.
“소조(小組 역주: 법 공부 소조)를 찾아가서 한번 교류해 보세요. 아마 교류 중에 마음의 매듭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대답했다.
“내가 이런 모양이라 동수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좋아지고 나서 다시 말해요.”
예전에 나는 동수들과 자주 교류했고, 마음속으로 정체(整體) 환경의 화기애애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발생한 한 가지 일이 나를 개변시켰다. 한 번은, 동수와 교류할 때, 그녀의 단점을 내가 아주 심하게 말했고 심지어 방할(棒喝)에 이르렀다. 당시 나는 충분히 얘기했다고 여겼고 그녀가 마땅히 감동을 받아 잘못을 고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떠난 후, 그녀는 몹시 상심했고, 내 말에 크게 반감을 품어 기어코 대법제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나는 깜짝 놀랐고 자신이 수구(修口)에서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았다. 자책과 동시에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사과했으며, 이후 최대한 동수들과 접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수구(修口)가 이렇게 차하고 입을 단속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많은 구업(口業)을 지었겠는가?
이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동수들을 만나지 않았다. 우연히 동수를 봐도 속으로 즉시 “됐어 누구도 만나지 않을래.”라는 일념이 나왔다.
오늘 한 동수가 타지에서 돌아와서 마르고 수척해진 내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잖아요?”
내 생각을 들어보고는 그녀가 말했다.
“이것은 체면을 따지는 마음[面子心 역주: 원래 면자(面子)는 얼굴이란 뜻인데 체면이나 외모 의리・정분 등의 뜻도 있다. 우리말에 ‘체면 의식’이 있지만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일단 ‘체면을 따지는 마음’으로 번역한다]이잖아요? 빨리 없애버려요!”
“체면을 따지는 마음이라?”
나는 속으로 진동했고 단번에 알아챘는데 마치 꿈속에 빠진 사람을 일깨운 것 같았다. 나는 체면을 차리는 마음이 구세력을 불러와 내 신체를 박해했음을 알았는데 그 어떤 사람마음이든 모두 그것들이 박해할 구실이 될 수 있다.
내가 동수들을 보려하지 않자 구세력은 나더러 더욱 동수를 만나지 못하게 했는데 이 마음이 어느 정도 심해졌을 때 신체에 병이 나타난 것이다. 뿌리는 여기에 있었다. 게다가 소조 법 공부 교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형식이니 나의 이런 행동은 사부님의 요구를 엄중하게 위반한 것이 아닌가? 엄중한 자아 표현이 나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대법에서 벗어나게 했음에도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니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 체면을 따지는 마음을 표면적으로 보자면 동수를 보면 동수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자신이 상처받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와 자존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바로 사(私)였다. 동수의 단점을 “지적해” 내 수련에 번거로움을 더해줄까 두려워 자신을 시비(是非)에서 멀리 봉폐시킨 것이다.
동시에, 나는 또 내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며 인터넷 문장에는 무엇이든 다 있기에 동수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여겼다. 체면을 따지는 마음을 깊이 파보니, 배후에는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이 있었다. 예를 들면 결점이 있는 동수에 대한 반감, 선(善)의 부족,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보고, 겸손하지 않으며, 자만하고, 자아를 고수하고, 사(私)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구우주 생명의 특징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을 때, 머리 위에 있던 그 회색 구름이 빠르게 걷히는 느낌이 들었고, 몸이 순간적으로 가뿐해져서 가족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전에 나는 오랫동안 가족들과 웃고 떠든 적이 없으며 늘 우울했었다. 사부님께서는 “물질과 정신은 같은 일성(一性)”(《미국중부법회설법》)이라고 하셨다. 정신적인 족쇄가 사라지니 몸이 자연히 가뿐해졌다.
나는 신체에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을 때 큰 데서 착안하지 말아야 하며 흔히 볼 수 있는 일부 작은 일들이 신체를 좋지 않게 만든 상태의 뿌리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나는 우리 지역의 몇몇 동수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세 가지 일에 아주 정진했지만 나중에 몸에 병업(病業) 상태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지만, 아마 이 동수들도 나처럼 체면을 따지는 마음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남이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할까 두려워했다. 나중에 몸이 더욱 나빠져서 어떤 이는 병원에 입원했고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났다. 수련이란 엄숙한 것으로 사람 마음이 크든 작든 반드시 경각심을 갖고 빨리 없애지 않으면 큰 누락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작고 얕은 체험으로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