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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중의 ‘왜’ (3)

행자(行者)

【정견망】

2. 법 공부와 사고(思考)

(3) “진정(真正)”에 대한 이해

이전의 왕 동수를 돌이켜보면, 그녀는 비록 《전법륜》이란 이 우주대법을 얻었고 십 수 년에서 20년을 배웠지만, 진정하게 법을 얻지 못했다. 그녀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결코 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법 공부 중에서 낡은 관념과 낡은 인식을 개변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는 수련에 대한 많은 잘못된 인식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몇십 년 동안 알지 못했다. 단지 법을 배우고 연공하며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리며, 모든 일(세 가지 일)을 빠뜨리지 않았으니 자신이 바로 진수(真修)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수련생을 모두 제자로 여긴다〉는 절을 배우면서 “왜냐하면 진정한 수련은 우리가 말하는 그 心性(씬씽) 표준이 요구하는 것에 따라 진정하게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전법륜》)를 읽고 나는 왕 동수에게 물어보았다.

나: 왜 사부님께서 이 문장에서 세 차례나 “진정(真正)”을 말씀하셨을까요? 당신은 이 ‘진정’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나요?

왕 동수: 세 번을 연달아 말씀하신 것은 이 ‘진정’이 아주 중요한 것임을 설명합니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구절에서 ‘진정’이란 의미는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되고, 조금이라도 에누리하면 안 되며, 완전하고 완전하게 법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이 바로 ‘진정’입니다. 진정한 수련이란 자신의 심성을 닦는 것입니다.

내가 반문했다: 그럼 진정하지 않은 수련도 있나요?

왕 동수: 나는 전에 진정하게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에서 마음 수련이 중요한 것을 몰랐고 동작 연마가 중요하다고 여겼고 자신의 심성 수련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많은 동수들도 진정한 수련을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모모(某某) 동수가 나를 찾아와, 어떤 일이 있어서 안으로 찾았고 원인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원인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바로 당신이 어디어디에서 잘하지 못했어요!”라고 했습니다. 내가 “당신이 안으로 찾았다는 게 바로 나를 찾아온 원인이네요?”라고 묻자 “그래요, 바로 당신의 문제입니다!”라고 했어요.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오늘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했고 또 책도 보았다고 해서 곧 대법제자인가? 당신은 정진하지 못했고 당신은 진정하게 내가 당신에게 알려준 표준에 따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의 제자일 수 있는가? 당신이 나의 제자인지 아닌지는 내가 당신을 제자라고 승인하는지, 승인하지 않는지에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 자신이, 한 제자의 표준에 도달했는가, 도달하지 못했는가? 당신이 매일 연공하는 것이 체조하는 것과 같으며, 당신이 비록 책을 보았을지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정진하지도 않으며, 또 책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나의 제자일 수 있는가?”(《북미 제1기법회 설법》)

(4) 법 공부 속도에 대한 토론

이렇게 《전법륜》 제1강 공부를 마치는데 매일 2~3시간씩 5일 정도 걸렸으니 정말로 천천히 배웠다. 이 기간에 왕 동수는 이렇게 배우면 너무 느리니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 당신이 전에 빨리 배웠고 빠르면 하루에 두 강을 보았지만 효과가 있었나요? 제대로 이해했나요?

왕 동수: 아이고! 전에 법을 배우지 못해 자신을 지체시켰죠.

나: 법을 잘 배우고 빨리 보는 동수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배우자마자 바로 배우고 몰입하며 교란이 적어서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그는 법을 배우면, 바로 법을 이해하고, 사상이 곧 승화하는데 당신이 이런 정도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왕 동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비교할 수 없어요.

나: 당신은 법을 배우는데 장애가 있어서, 흰 종이에 검은 글자를 앞에 두고도 똑똑히 보지 못합니다. 때로는 한 글자, 한 단어씩 여러 번 읽어도 잘못 읽거나, 틀리게 보거나 제대로 봐도 틀리게 읽습니다.

혹은 한 단락의 법을 다 읽어도 마치 법이 당신의 사상에 들어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불가공과 불교〉를 배우고도 여전히 불교와 불가공은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공능과 공력〉을 배우고도 여전히 공능과 공력을 한데 섞어 혼동하고, 〈관정〉을 배우고 나서도 불가든 도가든 모두 관정을 논한다고 생각하는 등등.

법을 배우기 전 어떤 사람의 생각과 인식이 있었는데, 배운 후에도 낡은 생각과 낡은 관념이 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다시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해서 배워야 합니다! 배운 것이 당신의 사상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배운 것이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더러 책을 보고 이해한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당신은 곧 법에 따라 읽게 되는데, 그럼 읽은 것이 모두 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사상 속에 그런 사람의 인식과 사람의 관념이 아마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남들도 당신 머릿속에 든 생각을 모릅니다. 교류 중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또한 법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법을 배우는 진도가 느린 것은 또한 당신의 현재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일시적일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현재 법을 배우는 이런 장애를 돌파할 수 있다면, 그럼 이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제 얕은 인식이고 법에 대한 천박한 이해에 불과합니다.

왕 동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자기도 최근 며칠간 법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싱가포르법회설법》에서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제자: 어떤 사람이, 사부님께서 하루 반 만에 『전법륜』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 느리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사부: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박수) 내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시간을 다그쳐 책을 보라, 책을 보라 하니, 그는 단번에 그 극단으로 달려갔다. 보고・보고・보고・보고, 목숨 걸고 보니, 매개 글자를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데, 그럼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당신은 법을 배우고 있지 않은가? 법 공부・법 공부, 그 공부를 당신은 어디에 놓았는가? 당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당신마저 모르는데, 어떻게 수련한다는 말인가? 당신은 반드시 당신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당신이 읽은 것이 무슨 글자이고 표면상에 어떤 뜻인지를 당신은 모두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찌 법 공부라 하겠는가? 그러려면 그것을 읽어 뭘 하겠는가? 책을 가져다 이렇게 한번 넘기면 끝나지 않는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

(5) 법 공부에 대한 반성

나와 함께 법을 배우기 전, 여러 동수들이 왕 동수와 교류했지만 모두 그녀가 모순에서 벗어나 진정한 수련인답게 냉정하게 모순을 대처하도록 돕지 못했다.

나와 같이 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 나는 단 한 번도 모순을 언급하지 않았고 오직 법(法)만 배웠다. 그러나 왕 동수는 법 공부를 통해 법을 얻었고 법에 맞지 않는 자신의 관념과 인식을 개변시켰다. 그 후, 그녀는 자각적으로 자신이 깨달은 법리로 자신을 가늠하고 자신을 요구했다.

방관자로서, 나는 그녀가 법속에서 자신을 개변시키는 것을 직접 보았다. 대법이 그녀를 개변시키고 그녀를 용련(熔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류 중에서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더욱 청성해졌고, 하루가 다르게 더욱 이지(理智)적으로 되었다. 마치 ‘진정한 왕 동수’가 막 소생한 것 같았다.

단지 대법을 사상에 담고 법을 인식하고 받아들였을 뿐임에도, 대법은 한 생명을 이렇게나 빨리 개변시켰다. 이는 나조차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왕 동수 자신의 사정 때문에 법 공부 진도는 느렸지만, 매번 법 공부 교류에서 나는 늘 새로운 깨달음과 이해가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했기 때문에 나 자신의 법 공부 효과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았는데 이 역시 애초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때로 동수가 ‘정(情)’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며 ‘정관(情關) 넘기기 힘든’ 것을 보거나 듣는데, 어떤 동수는 심지어 정을 내려놓지 못해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사실, 정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법륜》에 모두 말씀하셨기에 오직 법을 배워서 이해하고 똑바로 배우기만 하면 이 ‘정’을 내려놓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각종 ‘병업관(病業關)’의 사례에서 많은 동수들이 ‘병(病)’에 대한 인식에서 늘 제고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속인의 ‘병’이란 관념이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업력의 전화” 문제에 대해 아직 투철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인식이 명확하지 않다면, 대량의 법 공부를 통해 그것을 바로잡고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착실한 수련 중에서도 확실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이 많은데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사실 아마 법리에 대해 똑똑히 모르기 때문일 텐데 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모른다.

수련의 길에 있는 많은 곤혹(困惑)과 의심, 많은 마난(魔難)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법을 배웠음에도 법을 얻지 못하고 법을 배워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투철하게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일종 의지할 곳 없는 경지에 빠지거나 심지어 수련의 방향을 잘못 걸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아마 이 한 부의 법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법을 공부하는 이 일을 너무 단순하게 보았을 것이다.

이 우주대법은 한 권 책의 형식으로, 문자의 형식으로 우리 눈에 나타난다. 속인 관념의 영향을 받아 우리는 잠재의식 속에서 《전법륜》을 그저 이론을 지도하는 책으로 여기고 이 책과 책 안에 담긴 글자 배후의 강대한 내함과 끝없는 법력(法力)을 소홀히 여기거나 그다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한 부의 대법을 ‘진정’으로 잘 배우는 것이 수련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가? 어떤 위력(威力)을 펼쳐내는가? 우리는 정말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정말 똑똑히 알고 있는가?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법리(法理)는 사람의 일체 우매한 견해, 오류를 타파할 수 있고, 일체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일체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법리를 배우기만 하고, 보기만 하면 당신은 바로 제고 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보고 법 공부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뉴질랜드법회설법》)

“만약 우리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 억(億)에 달하는 사람이 배우고 있는데, 내가 매 한 사람에게 직접 알려줘야 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당신들로 하여금 제고되게 하고 변화됨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체를 모두 이 책 속에 써넣었으며 이 법 속에 넣었다. 단지 이치상으로만 당신이 제고하도록 지도하는 것뿐이 아니라 법의 배후에는 강대한 내포가 있다.”(《유럽법회설법》)

(완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