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明月)
【정견망】
13. 만년 작품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飲)》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飲)–구일 용산에서 마시다》
중양절(구월 구일)에 용산에서 마시노니
노란국화 쫓겨난 신하를 비웃네.
술에 취해 바람에 모자 날리고
춤추노라니 저 달이 사람을 붙드네.
九日龍山飲(구일용산음)
黃花笑逐臣(황화소축신)
醉看風落帽(취간풍락모)
舞愛月留人(무애월류인)
이백의 연표(年表)에 따르면 이 시는 보응(寶應) 원년인 762년 작품이다. 당시 시인의 나이는 61세로 휴양을 위해 당도(當塗)에 머물고 있었다. 쫓겨난 신하는 이백을 가리키는데 안사의 난 기간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간절한 마음에 영왕(永王 역주: 현종의 아들이자 숙종의 동생)의 막료가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반란죄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야 했다.
바람에 날리는 모자란 용산(龍山)에 있는 유명한 낙모대(落帽台) 유적과 관련이 있다.
동진(東晉) 시기 대장군 환온(桓溫)이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에 막료들을 거느리고 용산에 올랐다. 산에 올라 술을 마시고 국화꽃을 감상하면서 중양절 음식을 먹는데 참군(參軍) 맹가(孟嘉)도 현장에 있었다. 갑자기 좌중에 한바탕 바람이 불어오더니 맹가의 모자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환온이 손성(孫盛)을 시켜 글로 맹가를 희롱하게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맹가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석에서 답문을 지었는데 좌중에서 그의 민첩한 재주와 비범한 기질에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후세에 ‘용산에서 모자를 떨어뜨린(落帽龍山)’ 이야기는 호탕하면서도 우아한 풍모를 뜻하게 된다.
감상: 9월 9일 중양절에 이백이 용산(호북성 강릉현 서북쪽)에서 술을 마시는데 국화가 도처에 활짝 피었다. 시인이 어디를 가든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이 미소를 지었다. 술에 취해 바람에 모자가 날린 유적을 보자 옛사람을 생각하며 쓸쓸함을 느꼈다. 밝은 달 아래 흠뻑 마시고 달 속 선녀가 춤추는 모습을 감상한다. 그야말로 “만물은 모두 영(靈)이 있다.”
마지막 구절 ‘춤추노라니 저 달이 사람을 붙드네(舞愛月留人)’는 독자들에게 《월하독작(月下獨酌)》에 나오는 “잔 들어 명월을 청해오고 그림자 마주하니 셋이 되었구나.[舉杯邀明月 對影成三人]”라는 유명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달은 아무 생명도 없는 정지된 물체가 아니라 감정이 있고 흥취가 있는 살아 있는 생명이자 고결(高潔)한 벗이다.
전체 시의 마지막을 “달이 사람을 붙드네(月留人)”로 끝맺은 것은 마치 시인과 월궁 선녀 사이에 생생한 한 폭의 그림을 남긴 것 같다. 시인은 탈속한 밝은 달과 높은 바람[月明風高]의 경계에 미련을 갖고 헤어지려 하지 않고 월궁의 선녀 역시 시인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너울너울 춤을 추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뜻을 표현한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2/3/7/2505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