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一點)
【정견망】
사부님 설법은 현대과학과 결합해 말씀하시는데 현대과학도 사실 일종의 문화로, 다시 말해 사람들이 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출현한 것이다. 현대과학의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라 오직 한 가닥 좁은 선으로만 우주를 이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호한(浩瀚)함, 중생의 무량무계(無量無計) 및 정법 수련의 엄숙함에 대해 작으나마 뚜렷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천체물리학은 사람들이 별과 은하에 대해 초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가령, 사람들은 지구 반경이 6000킬로미터가 넘는 것을 안다. 만약 사람이 반경을 0.5미터의 구(球)라 가정한다면 지구(행성)의 반지름은 사람의 1000만 배가 넘는다. 또 태양계(항성)의 반경은 약 45억~90억km로 지구 반경의 100만 배 정도 된다. 은하계(은하)의 반지름은 대략 5만 광년으로 이는 태양계 반경의 약 7000만 배 정도 된다. 더 나아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50억 광년 정도 되는데 이는 은하 크기의 약 10만 배에 달한다.
[역주: 이상은 저자의 의견으로 현대과학으로 추정한 우주의 크기는 학자마다 편차가 있다. 네이버 검색에 따르면 현재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반경은 약 465억 광년으로 우리 은하보다 100만배 가량 크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모래는 대략 인체 반경의 1만분의 1 정도다. 즉, 사람과 먼지는 반경이 약 1만 배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소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은하계는 먼지보다 더 작고, 은하계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계는 먼지보다 더 작으며, 태양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구는 먼지보다 더 작고,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먼지보다 더 작다.
수련인은 사람에서부터 시작해 층차가 높아짐에 따라 다른 공간의 신체가 밖으로 확장되어 점점 더 커지는데 에너지・신통・지혜 역시 따라서 증가한다. 수련인의 몸이 지구를 초월할 정도로 크거나 심지어 털 하나가 지구보다 더 클 수 있다. 여래를 몇 배나 초과할 때도 소우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우주 층차를 돌파했을 때, 돌이켜 사람을 본다면 정말이지 먼지 속의 먼지만도 못하다. 소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정말로 무량(無量)한 공덕(功德)이다.
물론 대법제자 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우주체계에서 왔고 또 우리 이 중심 우주체계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층차의 제고는 자기 우주체계를 바로잡는 것과 대응한다.
소우주 밖에는 또 비슷한 소우주(小宇宙)들이 있는데 서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서 은하간의 거리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마치 은하 사이의 거리가 항성 사이의 거리를 훨씬 넘는 것과 같다. 일정 범위 내에 3천 개의 이런 소우주가 있고, 바깥쪽에 또 외각(外殼)이 있어서 제2층 우주를 구성한다. 더더욱 큰 시공(時空) 거리의 일정한 범위 내에 또 3천 개의 제2층 우주가 모여서 제3층 우주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서, 매 하나의 제3층 우주 크기의 구체(球體 입자)에는 약 3000*3000개(9백만 개)의 제1층 소우주와 같은 우주가 포함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3천 개의 제3층 우주가 모여서 한 층차 높은 제4층 우주를 구성한다면, 제4층 우주 한 구체(입자)에는 3000*3000*3000(270억 개)의 소우주가 들어 있다.
매 한 층 우주 사이의 층차 차이는 모두 극히 거대한 것이다. 매 한 층차에는 모두 엄격한 법(法)의 표준이 있으며 층차가 높아질수록 표준도 높아진다. 범위가 클수록 동시에 더욱 미시적이다. 정법(正法) 중에서 대법제자가 진정으로 세 가지 일을 잘 할 때, 공덕과 심성이 층층을 돌파하는데 자신을 잘 닦는 것이 기본이다. 왜냐하면 층차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신체의 용량이 그 한 층의 중생을 포용하기에 많이 부족하고, 정념의 에너지도 그 한 층의 사악한 요소(구세력)를 제거하기에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령 대법제자가 제4층 우주에서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창세주(創世主)와의 서약 역시 제4층 우주 범위의 대부분 중생을 구도하는 것일 텐데 실제로 정법이 끝날 때까지 단지 제3층 우주까지 수련했다면, 그럼 그가 구도하는 중생은 아마 서약에서 완성해야 할 3천분의 1에 불과할 것이다(사실은 훨씬 더 부족한데 왜냐하면 더 고층일수록 단지 거시적인 범위가 더 클 뿐 아니라 미시적으로도 더욱 미시적이기 때문이다). 서약에서 구원하기로 약속했던 절대다수 중생들은 다 훼멸되는데 다시 말해 서약의 절대다수(99.9% 이상)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대법제자는 어떻게든 시간을 잘 배치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많이 배우며, 법을 잘 이해해서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으며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해야만 한다. 깨달음이 있고, 소득이 있으면, 층차가 끊임없이 제고되어, 발정념할 때 힘이 더욱 커질 수 있으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때도 적은 힘으로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事半功倍].
‘사반공배(事半功倍)’라고 하지만 사실 비유일 뿐이다. 층차의 거대한 차이는 또한 시공의 거대한 차이이기도 하다. 인간 세상의 한 시진(時辰)은 인간세상과 가장 가까운 각자(覺者)가 존재하는 보다 큰 공간의 1년에 해당한다. 즉 이곳에서 한 시간 가부좌 하는 것이 저쪽의 반년에 해당한다. 전제(前提)는 수련자가 그 경지에 도달해야만 그 시공과 연결될 수 있다. 층차가 높을수록 범위가 더욱 크지만 시간은 오히려 더욱 빠르다.
가령 사람과 가장 가까운 각자(覺者)가 존재하는 큰 공간이 은하계에 대응한다면, 수련자가 만약 소우주 층차까지 수련했다면, 그럼 이쪽의 한 시간은 더욱 큰 공간에서는 아마 몇천 년, 만 년이 넘을 것이다. 만약 수련자가 제2층 우주까지 수련했다면 이곳의 한 시간이 그쪽에서는 억 년이 넘을 것이다.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층차가 계속 제고되면 사람을 구하는 효율도 만 배 억 배 제고될 수 있다.(이것은 우주의 구조와 대응한다). 물론 표면 세간은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은 구우주 요소에 의해 격리되어 미혹을 타파할 수 없고, 수련이 잘된 부분은 즉시 분리되기 때문에 표면에 반영되는 것은 단지 아주 작은 구별에 불과할 것이다. 즉, 교란이 좀 줄어들고 효율이 좀 높아진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상당히 높은 대궁(大穹)에서 왔다. 그렇게 높은 경지와 창세주와 서명한 서약을 실현하자면 여전히 우리가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데 특히 자신을 수련하는 방면에 더욱 공력을 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시 《홍음 2》〈법이 일체를 바로잡다〉를 적어 여러분들과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법이 일체를 바로잡다
삼계를 뚫고 나가니
공(空)과 무(無)는 우주를 드러내네
법이 건곤을 바로잡은 지 오래 되어
잠깐 쉬려는데 악이 또 일어나는구나
사대(四大)는 이미 풍화되었고
낡은 법은 해체되고 있도다
천체(天體) 무한히 크나
환체(寰體) 또한 극히 크도다
대궁은 이미 멀리 갔으니
주인의 자리 더욱 눈부시고 아름답네
천성(天性)은 호기가 커
소모해도 없어지지 않네
뜻은 금강지라
대법이치로 통일되는도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