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3. 법을 베껴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다
나는 여러 차례 납치, 감금, 노동교양 및 판결을 받았다. 검은 소굴에서 나는 주로 사부님 시사(詩詞)와 경문을 외고 묵묵히 쓰는 것에 의지해 《전법륜》 내용을 한 강 한 강 기억했다. 간수소, 노교소, 감옥에서 나는 늘 각급 검찰과 법원에 끊임없이 호소문을 썼고, 국가주석에서부터 각급 관련 부문 지도자 및 610 등 관련 부서에 이르기까지 또 교도소장과 감옥 담당 검찰관에게 백 통 이상의 진상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나는 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사용해 그들에게 파룬궁은 불가 수련대법(修煉大法)이라고 알려주었고, 대법은 수련인에게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모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으며,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고 알려주었다. 동시에 사악의 거짓말을 폭로했고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이치를 말해주었다.
내가 두 번째 납치되어 감옥에 들어갔을 때, 관교(官敎 교도관)대장이 나를 찾아와서는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게 이력서를 써달라면서 자세히 쓸수록 좋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쓰는 것에 동의했다. 나는 2주 동안 약 2만 자 가량의 〈나의 수련의 길〉을 썼다. 이 글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인용해 파룬궁은 무엇이며, 나는 왜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왜 파룬궁 수련을 견지(堅持)하는지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이 신앙 때문에 여러 차례 박해 받은 경험을 말했다. 또한 중공 사당이 퍼뜨린 파룬궁이 수련자의 무슨 정신을 통제하고 교주를 숭배하며 재산을 축재한다거나 파룬궁을 수련하면 약을 먹지 못하게 한다는 등등 중공이 퍼뜨린 거짓말을 폭로했다.
나중에 그는 다시 나를 찾아와 이야기했다. 그에게 내가 쓴 것을 보았는지 묻자 그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당신이 먼저 글을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며칠 후, 그는 다시 나를 찾아와 말했다.
“당신이 쓴 글을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매우 상세하게 잘 썼습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관점을 아주 인정하며 당신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그 후 그는 더는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그가 파룬궁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되었음을 알았다.
한번은 내가 납치되어 간수소에 갇혔다. 내가 감방 담당 경찰에게 진상을 말한 후, 그는 내가 겪은 것에 대해 아주 동정했고 감옥 안에서 연공하고 재소자들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내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있던 과도소(过渡所 보통 간수소에 들어가면 우선 과도 기간에 소위 ‘감옥 규정’를 배운다)에 다른 감방에서 사장과 싸우다 수감된 불량배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간수소에서 늘 다른 사람과 싸우고, 경찰을 욕하며, 구치소 의사를 괴롭혔는데 거의 날마다 소란을 피웠다. 때문에 여러 차례 족쇄를 차고, 감금되었으며, 경찰에게 얻어맞았다. 경찰은 물론이고 의사도 모두 그를 골칫거리로 여겼다. 이번은 그가 감옥규정을 배우러 간 세 번째였다. 그는 과도소에 들어온 당일 밤에도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이튿날 교도소 경찰이 나를 불러 말했다.
“파룬궁!(모두들 나를 이렇게 불렀다) 당신에게 무슨 방법이 있어서 그가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해도 좋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말해주면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경찰은 특별히 감방장에게 말해서 내가 그에게 연공을 가르칠 때 순시 경찰이 간섭하면 자신이 허락했노라고 말하게 했다.
나는 감옥에 돌아가 그에게 물었다.
“경찰이 내가 당신더러 파룬궁을 가르치는 것에 동의했는데 연마하겠습니까?”
그가 말했다.
“연마하겠습니다.”
이에 나는 사부님의 시를 써서 그에게 주고는 외우게 했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真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
(《홍음》〈위덕〉)
그는 하루가 걸려서 겨우 외웠다. 나는 또 사부님의 〈논어〉, 〈사람 되기〉 등의 경문과 시사를 베껴주었다.
그 이후로 그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감옥에서 늘 좋은 일을 했다. 자발적으로 청소를 했으며 노인들을 위해 빨래를 해주고, 물을 길어다 주었다. 그의 변화는 전체 간수소를 놀라게 했는데 경찰, 의사도 대법의 신기한 위력에 감탄했다.
간수소에서 나는 베껴 쓴 사부님 경문과 시사를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많은 수감자들이 석방되거나 판결을 받고 떠날 때 특별히 노트를 사와서는 나더러 글을 써달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 되기〉와 같은 사부님 시를 써줬고 그들은 소중히 여기겠다고 말했다.
4. 감옥에서 법을 베끼다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이 있노라”(《홍음 2》〈사도은〉)라고 하셨다. 모두들 중공 감옥의 사악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5년, 나는 납치되어 판결을 받고 감옥에 끌려갔다. 첫날부터 관교(官敎)대장이 나를 찾아와 이야기하면서 다리를 꼰 채로 발톱을 깎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당신이 감옥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우리는 당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겠소.”
내가 말했다.
“나는 감옥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깜짝 놀라서는 다리를 풀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뭐 하러 왔습니까?”
“나는 법을 실증하러 왔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합니까?”
“내가 지금 당신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파룬궁 진상인데 진상을 똑똑히 알면 구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 일념(一念) 때문이었는지 나는 후근(後勤 보급부서)중대 창고에 배치되었다. 나를 감시하는 두 포협(包夾 수련자 감시 임무를 맡은 수감자)은 모두 동년배로 파룬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나를 아주 존중해주었다. 내가 한 포협을 도와준 후, 그는 내게 아주 큰 책상을 만들어 주었고 또 자신이 사용하는 문방사보(文房四寶 종이, 붓, 먹, 벼루 4가지를 말함)를 가져다주었다. 다른 포협은 자신이 들여온 라디오를 주었다(원래 파룬궁 수련생들은 라디오를 듣지 못하게 했지만, 아무도 제보하지 않자 교도관도 눈을 감아주었다.) 그때 나는 날마다 희망의 소리, 자유아시아, 미국의 소리 등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고 외부 파룬궁 상황에 대해 알았다.
나는 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글씨 쓰기 연습을 하면서 사부님 경문과 시사를 베껴 썼다. 한번은 관교대장이 나와 대화하면서 감옥의 간고한 생활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수련인들에게 있어 간고한 생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 사부님의 《전법륜》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나의 이런 일념 때문인지 곧 가족 동수가 내게 mp4와 두 권짜리 종합 《신경문》을 가져다주었다. 사부님의 대법을 보았을 때 격동한 심정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데, 이런 환경에서 법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감은[感恩 역주: 감사는 주로 물질적이거나 유형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감은은 정신적인 도움이나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했다. 나는 제자가 진정으로 사람마음을 내려놓으면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위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mp4를 받은 후 매일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음날 법을 외우고 조용히 한번 쓴 후 대조해서 수정한 다음 큰 공책에 베껴 적었다. 당시 나는 완전히 대법에 용해되었다. 비록 수면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원기가 아주 왕성하고 마음이 늘 즐거웠으며 비할 바 없는 행복을 느꼈다. 나는 또 사부님의 《홍음》과 《홍음 2》를 화장지와 연습장에 베껴 썼다. 얼마나 많이 베껴서 동수나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는지 모른다. 내가 두 번째 납치되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내가 베께 쓴 《홍음》과 경문을 동수가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2016년 석방된 아내가 나를 면회하러 왔을 때 말했다.
“사부님께서 새로 〈논어〉 경문을 발표하셨어요.”
나는 듣고 나서, 아무 생각도 없이 말했다.
“편지로 써서 보내요.”
아내는 “받을 수 있을까요?”하고 걱정했다.
나는 “문제없어요.”라고 했다.
이때 옆에서 감청하고 있던 교도관도 아내와의 대화를 가로막지 않았다. 일주일 후 아내로부터 몇 마디 인사말 외에 사부님의 새 〈논어〉를 쓴 편지를 받았다. 중대 교도관이 내게 편지를 건넬 때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아내는 당신에게 정말 잘하네요.”
나는 “말이 필요 없죠, 뜻이 통하는 도반이잖아요. 대장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새 〈논어〉를 얻은 후, 나는 즉시 같은 감방에 있는 동수에게 베껴주었다. 그도 〈논어〉를 베껴 다른 감방 동수들에게 전달했고, 곧 많은 동수들이 사부님의 새로운 〈논어〉를 보게 되었다.
5. 검은 소굴 안 동수들에게 대법을 베껴 부치다
검은 소굴을 겪어 본 동수들은 모두 알다시피 생활의 간고함은 수련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이 아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대법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수감된 동수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다면 그들에게 사부님의 법을 보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박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 지역 간수소, 노교소, 감옥에서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엄격하게 감시하지 않았고, 그때는 그래도 물건을 안으로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수감된 동수들에게 베껴 쓴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내려고 생각했다. 동수들이 서로 협조해서 나와 아내는 신경문을 천에 베껴쓰는 일을 맡았고, 어떤 동수는 필사된 경문을 동수에게 줄 옷에 꿰맨 후 다시 동수 가족에게 부탁해 동수에게 가져다주게 했다. 어떤 가족은 동수에게 경문을 보내는 외에 또 mp3를 가져갈 방법을 궁리했다.
내가 감옥에서 석방될 때, 안에서 대법을 인정하는 수감자들과 그들에게 어떻게 물건을 보내고 또 그들이 이 물건을 다른 대법제자들에게 전달할 것인지 상의했다. 석방 후, 나는 여러 경로를 통해 나와 아내가 베낀 《신경문》과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 동수가 베낀 《홍음》을 검은 소굴 안으로 들여보냈다.
사부님의 《2018년 엔티디와 에포크타임스법회》가 발표된 후 나와 아내는 제때 몇 부를 베껴 검은 소굴로 가져갔다. 중공 바이러스가 발발해 감옥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한 후에야 감옥 동수들에게 베껴 쓴 경문을 보내는 일이 중단되었다.
나는 비록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긴 했지만, 장기간 검은 소굴에 있으면서 체계적으로 법을 공부하지 못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유감을 남겼고 또 많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번에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법을 베끼는 것을 통해 일을 하려는 그런 경솔한 마음을 점차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왜 반복적으로 법 공부를 잘하라 법 공부를 잘하라고 하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무슨 구호가 아니라 반드시 아주 진지하고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떤 교란도 법을 베끼고 법을 공부하려는 내 마음을 흔들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법을 잘 배워야만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고, 대법 일을 잘할 수 있으며,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은(感恩)합니다!
층차가 한정되어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완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1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