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4. 고대 인도의 핵폭발 폐허와 서사시에 나오는 핵무기 전쟁
고대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는 판두와 쿠루 두 종족의 왕위 쟁탈을 위한 전쟁 이야기로 《라마야나》와 함께 인도의 양대(兩大) 서사시로 꼽히는데 기원전 1500년 경 책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역사 사실은 책으로 만들어지기 최소 2천년 앞선 것으로 즉 지금부터 약 5000여 년 전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인도 갠지스 강 상류에 사는 코라바인과 판다바인, 프리히니인과 안하카인 등이 겪은 두 차례의 치열한 전쟁을 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서사시에 묘사된 두 차례 전쟁을 보면 그것은 바로 핵전쟁이었다.
책에서는 첫번째 전쟁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용감한 아슈와타마가 비마나(일종의 비행기) 안에 앉아 물속에 내려앉아 아그네야스트라(일종의 미사일과 비슷한 무기)를 발사하자, 적진 상공에서 쏟아지는 집중적인 빛의 화살을 쏟아냈는데 마치 한 차례 폭우처럼 적들을 포위했고 위력이 무궁했다. 순식간에 판다바 상공에 짙은 그림자가 빠르게 형성돼 하늘이 어두워졌고 어둠 속에서 모든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았고 거센 광풍이 불더니 ‘휙휙’ 솟구쳐 먼지와 자갈이 일어났고 새들이 미친 듯이 울어댔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 마치 태양이 공중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이 무기가 내보낸 엄청난 작열(灼熱)로 땅이 흔들렸고, 광대한 지역에서 동물들이 불에 타 시체가 변형되었고 강물이 끓어올랐고 물고기와 새우 등이 모두 타 죽었다. 로켓이 폭발할 때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적군 병사들을 타다 남은 장작처럼 태워 죽였다.”
두 번째 전쟁의 묘사는 더욱 모골이 송연해진다.
“구얼카는 신속하게 비마나를 타고 적 진영 3개 도시에 날아가는 폭탄 하나를 발사했다. 이 폭탄은 마차 우주 전체의 힘을 가진 듯했고 그 밝은 정도는 만개의 태양과 같았으며 불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것이 엄청난 장관이었다…. 시신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탔고 머리카락과 손톱은 떨어져 나갔으며 도자기는 터졌고 새들도 고온에 까맣게 탔다. 전사들은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 들어가 자신과 무기를 깨끗이 씻었다.”
이 두 차례 사전(史前) 핵전쟁에 대한 묘사는 현대인들에게 놀라움과 의심을 품게 했다. 이런 의문을 품은 현대 고고학자들이 앞서 전쟁이 발생한 갠지스 강 상류에서 초토화된 폐허를 다수 발견했다. 이 폐허 속에는 아주 거대한 암석이 함께 붙어 있었는데 이는 바위들이 일찍이 아주 고온에서 녹았음을 설명한다. 알다시피 암석을 녹이려면 온도가 최소 1,800도에 달해야 한다. 일반적인 화재나 불로 이런 온도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원자탄과 같은 핵폭발만이 이런 고온에 도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도의 더칸 원시림에서는 불에 탄 폐허가 여럿 발견되었다. 폐허의 성벽은 이미 유리화되어 표면이 유리처럼 매끄러웠고, 건물 내 석재 가구의 표층도 유리화되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암석이 순식간에 고온에 녹아내린 뒤 식은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인도 외에도 고대 바빌로니아, 사하라 사막, 몽골 고비 사막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리화된 폐허가 발견됐다. 폐허의 ‘유리석’은 오늘날 핵실험장의 ‘유리석’과 같은데, 사전(史前) 핵전쟁 외에는 이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즉 일부 사전(史前) 인류의 문명이 핵전쟁으로 훼멸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료(史料)의 기록과 부합하는 이런 고고학 발견을 통해 우리는 5천여 년 전 인류가 인도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발전시켰고 핵에너지에 대해서도 아주 익숙했지만 마지막에 권력투쟁 과정에 핵에너지를 남용해 핵전쟁을 발동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것과 비교하면 아프리카 오클로에서 발견된 20억 년 전 원자로는 당시 인류가 평화적인 용도로 핵을 사용한 셈이다. 동시에 천연 지형을 이용해 핵폐기물을 저장했는데 이런 고도의 물질문명은 분명히 고도의 정신문명 하에 발전되었을 것이다. 50만년을 운전했다는 것은 50만 년 간의 평화와 번영을 대표한다. 그렇지 않고 서사시에서 묘사한 것처럼 핵무기로 서로를 공격했다면 아마 50년도 못되어 훼멸되었을 것이다. 현대 인류의 핵기술은 불과 몇 십 년에 불과하지만 핵폐기물만 해도 논쟁이 끊이지 않으니 다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5. 달은 누가 만들었나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달이 항상 같은 면으로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즉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달은 항상 같은 면이고 달의 그림자는 항상 같은 종류다. 왜 그럴까? 관찰과 분석을 통해 달이 자전을 하는데 하필이면 달의 자전 주기가 지구와 정확히 같은 것을 발견했다.
또한 지구에서 볼 때 달은 태양과 크기가 비슷한데 이는 개기일식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천문학자들은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지구와 달의 거리의 395배이고 태양의 지름이 달의 395배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는 달이 정확히 태양과 같은 크기임을 발견했다.
위에서 언급한 달의 궤도운동과 크기의 우연한(?) 일치 외에도 달은 속이 비어 있고 표층의 암석 아래에 매우 단단한 금속 껍질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불가사의하다.
달의 중심이 비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달 착륙선이 달 표면에 버려졌을 때 72km 떨어진 곳에 설치된 지진계에서 진동을 측정한 적이 있는데 15분 이상 진동했다. 우리가 가령 속이 빈 쇠공(鐵球)를 세게 두드린다면 윙윙거리며 계속 진동한다. 반대로 속이 꽉 찬 쇠공을 두드리면 진동이 잠시만 유지되고 오래지 않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다. 이 지속적인 진동 현상은 과학자들에게 처음으로 달의 속이 비어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이 외에도 중간이 차 있는 단단한 물체가 충격을 받을 때 두 가지 파동을 측정할 수 있는데 하나는 종파이고 다른 하나는 표면파다. 반면 속이 빈 물체는 표면파만 측정할 수 있다. 달에 설치된 지진계는 오랜 기록에도 불구하고 종파는 기록되지 않고 모두 표면파만 기록되었다. 이 현상은 과학자들에게 달의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시켜 주었다.
아폴로 우주선이 채취한 달 암석 샘플과 달 표면의 자기장을 직접 측정한 결과 달 주위의 자기장은 지구 자기장 세기의 1/1000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달에는 자기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달 내부에는 지구와 같은 내핵이 없고 속이 비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달의 평균 밀도는 3.33g/cm³로 지구 밀도인 5.5g/cm³와 약 절반의 차이가 난다. 해럴드 유리 박사 등 과학자들은 달의 ‘중심’이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국 왕립천문학회의 달 연구 권위자인 윌킨스 박사는 《우리의 달》이라는 책에서 달에는 약 1,400만 입방마일에 달하는 구멍이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 MIT의 솔로몬 박사는 달의 중력을 연구했는데, 그는 달 내부가 비어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달》이라는 국제학술잡지에서 그는 “달 궤도운행기의 관측을 통해 달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특히 중력에 그렇다. 다시 말해 달의 내부는 비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여러분이 달을 바라볼 때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말하는 그림자 영역이다. 우주 비행사가 전동 드릴을 들고 그곳에 구멍을 뚫으려고 했을 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여전히 조금밖에 들어갈 수 없음을 발견했다. 별의 표면은 모두 토양과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파고들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지역의 지표면 성분을 자세히 분석해 보니 대부분 매우 단단한 금속 성분으로 우주선을 건조하는 데 사용되는 티타늄 금속이었다. 그러므로 달의 전체적인 구조는 속이 빈 금속 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달에는 분화구가 아주 많지만, 이상하게도 이 구멍들은 모두 상당히 얕다. 달 표면에서 가장 깊은 가가린 분화구(Gagarin Crater)는 지름이 거의 300km에 이르지만 깊이는 겨우 6.4km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 구덩이를 만든 운석이 만약 지구와 충돌했다면 최소 1,200킬로미터의 깊이의 큰 구덩이가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달에는 이렇게 얕은 분화구만 만들 수 있을까? 유일하고 가능한 설명은 달의 껍질이 매우 단단하다는 것이다. 즉 앞서 발견한 달 표면의 딱딱한 금속 성분이 이런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최근 달에 더욱 신비로운 베일을 씌우는 발견들이 있었다.
달의 토양은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퀸즐랜드 과학기술대학의 토양학자 마렉 지빅(Marek Zbik) 박사는 달 토양에 있는 유리 거품(Glass bubbles, 운석이 달에 충돌할 때 주변의 모래가 녹아서 유리처럼 되는 것) 속에 나노 입자가 포함된 것을 발견했다. 나노 입자는 달 토양의 독특한 특성을 잘 설명할 수 있지만 이런 희귀한 나노 입자의 출처는 줄곧 수수께끼였다.
지빅 박사는 시료를 파괴하지 않고 광(光)현미경으로 나노입자의 3D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싱크로트론 나노크로마토그래피(synchrotron-based nanotomography)란 신기술을 적용했다. 그는 유리 거품 내부에 가스나 수증기가 포함되는 지구와 달리 이형(異形) 유리 같은 입자로 구성된 구체 전체가 다공성 네트워크로 덮여 있음을 발견했다. 전통적인 물리 법칙과 달리 나노 입자의 운동은 양자 물리학 이론과 일치한다. 아마도 이런 나노 입자들이 유리 거품에서 방출된 후 다른 토양 성분과 혼합되어 달 토양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달 토양은 정전기를 띠기 때문에 표면에서 이동하고 회전할 수 있다. 이것은 화학 활성이 매우 풍부하고 열전도율이 낮아서 160도면 달 표면에 존재할 수 있지만 영하 40도가 되면 달 표면 아래 2m에 도달한다. 그것은 또한 매우 점성이 크고 깨지기 쉬운데 이런 특성으로 인해 달 토양은 금속과 유리에 의해 마모된다.
이렇게 달 토양은 특수한 나노 입자로 인해 독특한 단열 및 반사 특성을 가지며 정전기를 띠고 화학 활성이 매우 풍부해 달 표면에서 ‘회전’할 수 있다. 그리고 점성이 풍부해서 이리저리 날리지 않고 오히려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특수한 토양은 일종의 전자 증폭기이자 달을 보호하는 완충제인데 어쩌면 달 위에 보관한 상품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달의 각종 수수께끼를 겨냥해 한 가지 대담한 가설이 제안되었다. 즉, 달은 겉모양을 개조해 중간을 텅 비게 만든 인공 기계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달이 우리에게 남긴 기이한 현상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대담하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달이 확실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달은 정밀 기계와 마찬가지로 태양과 같은 시야각을 가지고 있으며 매일 같은 면으로 지구를 마주하고 있어 밤에 태양을 대신할 때 사용되며 반사력이 강한 표면으로 지구를 비춰준다. 또 표면은 오랜 시간 동안 고밀도의 운석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높은 경도의 합금 껍질 층으로 되어 있으며 아직까지도 온전하다. 만약 천연적인 별이라면, 이렇게 많은 인공적인 특징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제 우리는 달이 늘 매끄러운 면으로 지구를 마주하고 있고 거친 면은 지구를 등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달이 야간에 지구인들을 비춰주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만약 달이 외계인이 지구를 감시하는 우주선이라면, 그들은 이렇게 큰 우주선을 만들 필요가 없고 또 조명 기능을 가질 필요도 없다. 반대로 달을 은닉할수록 좋지 않을까?)
자연과 유사한 별을 만들고 표면의 반사 능력(특수적으로 강한 반사 능력을 가진 나노 물질)을 사용하여 지구를 조명한다는 아이디어는 환경 보호 이념에도 부합한다. 왜냐하면 대량의 오염을 유발하는 전기를 생산할 필요가 없고 지구 전체의 거의 어두운 면을 한 번에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주 불가사의한 생각이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오늘날 우리의 과학기술이 이 정도까지 발전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만약 사전 시기 지구 위에 정말로 고도로 발달한 인류가 존재했다면, 그들이 달을 띄워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지 않았겠는가?
6. 찬란했던 문명들은 지금 어디에
앞서 열거한 사전(史前)시기 인류가 휘황찬란한 문명을 가졌던 사례들은 오늘날 고고학계의 많은 발견 중 단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고고학자 크레이머와 톰슨이 쓴 《고고학 금지구역(Forbidden Archeology)》이란 책에는 500개의 증거, 수만 년, 수백만 년, 심지어 수억 년 전 인류 문명의 유적을 나열하고 있는데 많은 것들이 아주 높은 과학기술 및 예술 수준을 지니고 있다.
20세기 말에는 《세계 위대한 고고학 기록 보고서》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고고학자들에 의해 편집 출판되었다. 이 총서에서는 《수정 두개골의 수수께끼》, 《폐허의 진실》, 《뭇 신들의 궁전》 등 13개 분책과 그림을 통해 세계 고고학의 중대한 발견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웅장하고 고도로 발달한 사전(史前)문명 유적을 마주하고,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그렇게 화려했던 이들 인류 문명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왜 이런 과학기술들을 남기지 못했고, 오히려 흔적 없이 사라져서 다만 폐허만 남겼을까? 또 우리 지금 과학의 발전노선은 지난 문명시기의 노선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까? 이 노선이 정확한 것일까?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만한 문제들이다.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전에 우리 먼저 인류 조상들의 공동기억인 대홍수에 대해 살펴보자.
이집트, 바빌로니아, 히브리, 그리스, 인도, 남미 인디언, 에스키모인, 호주인, 남태평양제도의 원주민 및 동남아시아 여러 민족들은 모두 유사한 원고(遠古)시기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즉, 인류의 타락이 천신(天神)의 노여움을 불러일으켰고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켰으며 홍수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 지금 인류의 선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130개 이상의 인디언 부족 중 모든 부족들이 대홍수를 주제로 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같은 기억은 멋대로 날조된 신화일 리 없다. 그렇다면 이들 홍수 신화들이 사실 모두 동일한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전 세계에 걸쳐 비슷한 기록이 있을 수 있는가? 이번 차례 인류문명의 원시시기에 인류는 대단히 낙후되어 오늘날의 전화와 무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을과 마을 간의 연락도 모두 사람의 힘으로 왕복해야 하는데 하물며 대륙을 넘나드는 통신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장거리 통신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당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유사한 신화와 전설을 갖게 되었을까?
세계적으로 훼멸적인 대홍수가 정말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가 바그다드와 페르시아 만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사막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결과 기원전 3천 년 전 수메르 문명의 우르(Ur) 유적과 왕족의 무덤을 발견했다. 이 무덤 아래에서 울리 팀은 무려 2미터가 넘는 깨끗한 점토로 된 침적층을 발견했는데 이 침적층 위가 바로 우르 왕족의 무덤이었다. 이 속에서 투구, 악기, 칼 및 각종 공예품과 점토서판(書板)에 새긴 역사기록 등 각종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점토를 분석한 결과 이 점토층은 홍수로 침적된 후에 쌓인 충적토임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인류가 점토판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전 이 지역에 일찍이 한 차례 거대한 홍수가 있었고 이 홍수는 전체 수메르문명을 훼멸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울리는 자신의 발견이 메소포타미아의 오랜 전설 및 성경에 기록된 대홍수가 일찍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임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두 척의 미국 해양 탐사선이 멕시코 만 해저를 시추하여 해저에서 1억 년 이상의 지질학적 기간을 가진 몇 개의 가늘고 긴 퇴적 진흙 코어를 파내 이 기간에 바닷물의 염분 함량과 지구 기후 변화를 추정했다. 지질학자들이 퇴적된 진흙 코어를 연구할 때 약 10,000년 전의 퇴적층에 많은 수의 유공충 딱정벌레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유공충이 살았던 시대에 멕시코 만 해수의 염도는 매우 낮았다(유공충은 작은 단세포 플랑크톤으로 껍질의 산소 동위원소 함량 비율을 통해 그것이 살아 있을 당시 바닷물의 염도를 알 수 있다). 이 상황은 당시 매우 많은 양의 담수가 멕시코 만으로 유입되어 대양의 해수를 희석시켰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 담수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과학자들은 이 갑작스레 늘어난 대량의 담수가 사전시기의 그 대홍수라고 보았다.
현대 인류가 대륙에서 찾아낸 대홍수의 흔적과 증명은 그리 많지 않음을 부인하긴 어려운데 이렇게 된 원인은 주로 다음 2가지다.
첫째는 대홍수가 지속된 시간이 길지 않았다. 비록 각 민족들의 신화기록이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대홍수는 불과 한 달 정도 지속되었다가 물러났고 홍수가 시작되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약 120일이 걸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은 인류에 대해 말하자면 한 차례 훼멸시키기에는 충분했지만 지구 지질에 대해 말하자면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 부족했다.
둘째는 대홍수는 이미 지금부터 수천 년 전에 지나갔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원래 뚜렷하지 않았던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질학자, 고고학자 및 고생물학자들이 한 무더기 증거 자료를 당신 앞에 내놓길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기록과 일부 지질학과 고고학 증거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즉 상고(上古) 시대에 인류는 실제로 훼멸적인 홍수의 재난을 겪었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다양한 민족들이 훼멸적인 대홍수이 재난이 지나가고 곳곳의 사람들이 문명을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큰 재난을 당한 후 살아남은 소수 인류 조상들은 인류가 훼멸되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당시 상황을 각골명심하도록 기록했을 것이다.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후손들이 교훈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문자 언어 기록으로 전해진 것을 보면 이는 틀림없이 쓰라린 기억과 교훈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 조상들이 남긴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각 민족에 전해지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대홍수가 발생한 공통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인류의 도덕이 패괴(敗壞)되어 마땅히 지녀야 할 선량한 본성을 잃은 것이다. 때문에 신(神)은 대홍수를 내려 보내 인류를 소멸시키고 오직 극소수의 선량한 사람들만이 살아남게 했다. 수메르 인들의 물의 신이나 노아의 방주 전설에서 여호와 등은 직접 재난 발생을 경고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구도 받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당시 신을 믿고 신의 요구에 따라 행동했던 소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전 시기 인류문명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후손들에게 남겨진 것은 오히려 발달된 과학기술이 아니라 전설과 신화 및 도덕의 교훈이다! 사실 고통스러운 교훈을 통해 인류의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늘이 내린 재앙을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음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때문에 남겨진 많은 민족들에게 있어 그들의 선조들이 후대에 남기고자 했던 가장 큰 교훈은, 인류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반드시 도덕을 중시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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