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제2장 진실한 인류 문명사
제1장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진화론(進化論)은 진리가 아님을 드러내는 징후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단세포 생물에서 고등 동물로 진화하고 급기야 인류까지 이르렀다는 이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한 인류 문명사(文明史)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수십 년 동안 고고학 및 다른 분야에서 일부 발견들이 우리에게 산발적인 단서를 제공해준다. 우리 우선 아프리카의 사전(史前) 원자로에서 시작해 이런 발견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1. 사전(史前) 원자로
프랑스의 한 공장에서 1972년 아프리카 가봉 공화국의 오클로(Oklo)라는 곳에서 우라늄 광석을 수입해 사용했다. 그들은 이 수입된 우라늄 광석이 이미 누군가 사용했던 것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우라늄 광석에서 우라늄 235 동위원소 함유량이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우라늄 광석에서 일반적인 우라늄 235의 함량은 0.72%이며 달이나 운석에서도 항상 0.72%이었지만 오클로의 많은 우라늄 광석은 0.3% 미만인데 이는 기존 원자로의 핵폐기물과 거의 동일하다.
프랑스 정부에서 이 사실을 발표하자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오클로 연구를 위해 몰려들었다. 이 연구 결과는 1975년 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한 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원자로는 6개 지역에서 약 500톤의 우라늄 광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력은 100kW로 추정된다. 이 원자로는 온전하게 보존되고 합리적인 구조이며 50만 년 동안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가동되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 산 전체가 핵 원료임을 발견했는데 이 ‘천연’ 원자로는 사실 수수께끼였다. 실제로 핵반응에 필요한 원료는 모두 아주 적은데, 예를 들어 원자폭탄은 비행기로 운반할 수 있지만 그 안에 포함된 실제 핵 원료는 극히 적다. 원자로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구조는 원료가 아래에 놓여 있는 우물처럼 생겼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나 원자로는 컴퓨터 제어 시스템과 냉각 시스템이 있는 매우 거대한 시스템이다. 마치 아주 작은 연료에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비와 사람들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오클로처럼 큰 광산이 50만 년 동안 가동되었다면, 대체 어떤 기술이 그것을 안전하게 작동시킬 수 있었을까? 이것은 이해하기 몹시 어려운 문제다. 지형적으로 당시 광산 근처에 물의 흔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연구 기사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물은 탄소봉처럼 중성자를 흡수하므로 물이 이 광산으로 침투해 안전한 작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도 답이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원자폭탄은 핵 원료를 많이 쓰지 않고도 폭발시킬 수 있는데 이 광산 안에서 아주 작은 일부라도 물이 고르지 않게 스며들면 큰 폭발이 일어나 광산이 아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술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문헌들의 제목은 거의 다 “천연 원자로”인데 내용은 대부분 반응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원자로가 “왜 천연적인가?” “어디서부터 그것이 천연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간과한 것은 현대 과학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매우 큰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따르면 20억 년 전에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의 암묵적인 지도하에, 이 원자로에도 자연히 “천연”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이렇게 정밀한 설계에 지금의 원자로보다 기능이 더 좋고 안전한데 어떻게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실제로 많은 대담한 과학자들은 이를 사전문명(史前文明)이 남긴 유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20억 년 전 오늘날 우리가 오클로라 부르는 곳에 지금 인류 문명을 훨씬 뛰어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존재한 것이다.
2. 대(大)피라미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으뜸으로 꼽히는 이집트의 대피라미드를 바라보면 저절로 경외감이 올라온다. 이 평범해 보이는 사각뿔 안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의 정화가 담겨 있다.
⓵ 피라미드 건축에 담긴 미스터리:
기자 대 피라미드는 230만 개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균 무게는 2.5톤이고 최대 250톤에 달한다. 사용된 바위는 매끄럽고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바위 사이는 아주 얇은 칼날도 꽂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맞물려 있고, 인접한 바위들은 모두 금속으로 용접되어 있다. 이런 기술은 오늘날에도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득한 고대에 이 거대한 바위들은 어떻게 채굴, 절단, 운송되었으며 어떻게 배치되고 어떻게 쌓아올렸을까? 이집트 피라미드의 궁전 석관(石棺)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쿠푸 피라미드 앞의 스핑크스는 몇 층 높이의 거대한 바위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화학자 요제프 다비드 뒤비스는 화학과 미시적인 각도에서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이 인공적으로 타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는 화학 실험 결과에 근거해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은 석회와 조개껍질을 인공적으로 부어 응고시켜 만든 것이며, 그 방법은 오늘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혼합물은 응고가 잘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천연 돌과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또한 그는 돌에서 약 1인치 길이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는데, 가장 유력한 설명은 노동자들이 타설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머리카락을 빠뜨려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돌과 돌 사이는 접착제를 사용해 정확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얇은 칼날도 삽입할 수 없다. 최신 건축공법으로도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높은 정확도와 복잡한 내부 구조를 가진 피라미드를 완전히 모방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⓶ 피라미드 부패 방지의 미스터리:
쿠푸 피라미드에는 탑의 3분의 1 높이에 ‘왕의 방’이란 홀에 쓰레기통이 하나 있다. ‘왕의 방’의 온도는 상당히 높지만 그 안에 쌓여 있는 유기물질인 고양이나 개 같은 작은 동물의 사체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았고 오히려 탈수되어 미라가 되었다.
⓷ 피라미드 관련 자료의 미스터리:
(1) 한 변의 평균 길이 230m인 받침대 위에 피라미드의 네 변의 오차는 겨우 20cm로 1‰ 미만이다. 바닥의 네 직각 중 남동쪽 각은 89도 56분 27초, 북동쪽 각은 90도 3분 2초, 남서쪽 각은 90도 0분 33초인 반면 북서쪽 각은 89도 49분 58초로 오차가 최대 4분을 넘지 않으며, 네 방위와 정확한 동서남북 방위의 오차는 1분 15초와 5분 30초에 불과하다. 이는 현대 일상적인 건축물의 각도 차이가 1~2도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드문 것이다. 정확한 직각 기술은 현대 건축에서도 큰 난제에 해당하는데 고대 건축 대가들은 이 문제를 손쉽게 처리한 것이다. 5.29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바닥면에서 동남각과 서북각의 고도 차이는 겨우 1.27cm에 불과해서 오차율이 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
(2) 피라미드의 독특한 모양은 매서운 사막의 바람을 피라미드 경사면이나 모서리를 따라 상승시킨다. 피라미드에서 바람을 받는 표면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작아지고 탑 꼭대기에 도달하면 0에 가까워져서 바람의 파괴력을 최소화한다.
(3) 피라미드 안정의 미스터리. 피라미드가 위치한 면은 마침 자력선(磁力線)의 중심에 해당하는데 자력선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고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피라미드가 감당하는 진폭이 아주 약해 지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피라미드의 높이와 바닥 둘레의 비율은 정확히 0.5π다. 또 많은 피라미드들은 51도 52분이라는 특별한 앙각(仰角)을 사용한다.
(4) 기자의 3대 피라미드의 배열은 오리온자리에 있는 세 개의 허리 띠 별의 배열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기원전 10,500년으로 돌아가면 하늘에서 자오선을 가로지르는 오리온자리 세 허리 띠 별의 배열이 지상에 있는 기자의 3대 피라미드와 동일하며 하늘의 은하수는 지상 나일 강과 정확히 대응한다. 하늘과 땅이 서로 대응하는 이 관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5) 바닥면 중앙을 세로로 이등분한 선을 연장해서 얻은 지구 경선은 지구의 대륙과 바다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며 피라미드는 정확히 지구 각 대륙의 중력 중심에 위치한다.
(6) 쿠푸 피라미드 바닥면 정사각형 대각선을 연장하면 삼각주를 포함한 나일 강 하구에 해당한다. 또 정사각형의 세로 이등분선은 나일 강 삼각주를 동일하게 분할한다.
(7) 지구 양극의 축 위치는 날마다 변하는데 25,827년 주기로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데 피라미드 대각선의 합이 정확히 25,826.6이다.
피라미드에는 유사한 불가사의들이 아주 많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나열하지 않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도의 천문학, 기하학, 역법 지식이 응집된 이 거대한 건물들의 방대한 공사규모를 고려할 때 이는 결코 화전을 하던 문명 초기 상태 이집트에서 노예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전시기 원자로와 피라미드 외에도 아프리카 대륙에는 일찍이 휘황한 문명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1930년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그리올 팀이 서아프리카 도곤(Dogon)의 원시 부락에 깊숙이 들어가 많은 독특한 신화와 전설들을 수집했다. 그들은 뜻밖의 발견을 했는데 가령 천문학자들이 백년간 논쟁해왔던 시리우스의 색깔이 변화하는 미스터리가 뜻밖에도 도곤 사람들의 신화와 전설에서 답을 찾았다.
시리우스는 지구에서 약 8.7광년 떨어져 있으며 밤하늘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 중 하나다. 많은 고대 천문학 책에 시리우스는 짙은 붉은색이라고 하지만 현대인들의 눈에 비친 시리우스는 흰색이다. 그렇다면 왜 시리우스의 색이 변했을까? 이 수수께끼는 과학자들을 깊이 매료시켰다.
도곤 사람들은 프랑스 과학자들에게 시리우스는 큰 별과 작은 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은 별은 검은색이고 밀도는 아주 크지만 보이지 않는 동반성이며 큰 별을 타원 궤도로 회전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또한 작은 별의 운동 주기가 50년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 대대로 시리우스는 하늘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무거운 별이고 지구에는 없는 발광하는 금속 물질이 있다고 전해왔다. 또 한 차례 사고로 인해 시리우스가 갑자기 폭발해 강한 빛을 내다가 점차 어두워졌다고 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이 어두운 동반성을 볼 수 없지만 도곤 노인들은 지팡이를 사용해 지상에서 두 별의 경로와 각종 도형을 그릴 수 있었다.
시리우스 동반성은 독일의 천문학자 베셀이 1834년에 제안한 가설이다. 그는 시리우스 운동의 작은 흔들림이 동반성의 중력 때문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크가 그것을 처음 관측한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의 일이다. 동반성은 백색왜성으로 시리우스를 50년 주기로 회전하는데 크기는 작아서 지름이 지구와 거의 동일하며 빛은 태양의 1/360이지만 질량은 태양과 거의 동일하고 밀도가 커서 작은 찻잔 크기의 물질의 무게가 12톤에 달한다.
도곤 사람들의 시리우스에 대한 지식은 상세하고 정확하며 시리우스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동반성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도곤 사람들은 이 별(시리우스 B)을 ‘곡성(穀星)’이라 불렀는데, 아마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일 것이다. 도곤 족에 따르면 곡성은 현재 알려진 가장 무거운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철보다 더 무겁다. 이는 도곤 사람들이 시리우스 B의 밀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곤 사람들은 또한 시리우스 계통에 대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은 도곤 사람들이 시리우스 B가 시리우스 A를 중심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운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도곤 사람들이 전설에 근거해 그려낸 시리우스 A와 ‘곡성’의 궤도는 현대 천문학자들이 그린 그림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도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조상들은 시리우스 B에 대한 지식을 ‘노모’라는 신(神)이 전수해주었다고 한다. 도곤 사람들은 아직도 한 장의 그림을 보존하고 있는데 그 위에는 그들이 믿는 ‘신(神)’이 불길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의 부족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도곤 사람들의 천문학 전통은 시리우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 목성과 토성을 그린 그림에서 목성에 4개의 달이 있고 토성에 고리가 있다고 표현했다.
3. 수정 두개골과 신비한 마야 문명
수정 두개골은 1927년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 마야 신전에서 발견되었으며 대략 마야문명 시기의 물건으로 추정된다. 높은 순도의 투명한 수정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인간의 두개골 모양과 차이가 없다. 이 수정 두개골은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즉 완전한 수정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수정의 경도는 약 7도로 일반적인 칼을 사용하면 자국이 남지 않을 수 없다. 또 레이저를 콧구멍에 비추면 두개골 전체가 빛을 낸다. 이에 과학자들은 두개골 내부에 복잡한 렌즈의 반사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신비한 마야 열풍은 2001년 10월 말 상해(上海)에 불어왔고, 3개월 동안 상해 박물관에 100점의 마야 문명의 정화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1839년 미국인 존 스티븐스가 온두라스의 열대 정글에서 마야문명 유적을 처음 발견한 이래 각국 고고학자들의 연구가 깊어지면서 마야문명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전시된 유물들은 마야 인들이 창조한 눈부신 기록들을 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1) 최초로 ‘0’을 사용: 마야 인들은 적어도 기원전 4세기에 ‘0’이라는 숫자 개념을 습득했다.중국보다 800~1000년 앞서 ‘0’을 발명하고 사용한 최초의 민족으로 숫자를 쓰는 방법도 독특했다.
(2) 고대의 가장 정확한 달력: 마야 인이 측정한 지구의 한 해는 365.2420일로 이는 현대인들이 측정한 하루와 겨우 0.0002일의 오차가 난다. 즉 5000년이 지나야 겨우 하루의 오차가 난다. 이들이 계산한 금성의 한 해는 584일로 현대 천문학과 비교해보면 50년에 겨우 7초의 오차에 불과하다.
(3)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상형문자: 마야 상형문자의 발전 수준은 중국 상형문자와 매우 유사하지만 기호 조합은 한자보다 훨씬 복잡해서 지금까지 그것들을 모두 해석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마야 문자는 적어도 기원전 3세기에 이미 등장했으며 800개의 기호와 도형으로 구성된 상형문자로 어휘량이 3만 개에 달한다.
마야 신전에는 이런 유물들 외에도 중국의 태극도와 흡사한 문양이 하나 더 있다. 마야 문명은 또 유명한 ‘팔렝케’ 석관(石棺) 부조가 있는데, 기묘한 머리 장식을 한 젊은이가 당시 마야인들과는 전혀 다른 옷을 입었다. 유사한 사진에 대한 우리의 지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생생한 우주인의 차림이다. 이 사람이 마치 1인용 로켓을 운전하고 있는 것 같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2/7/1/2596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