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함(真涵)
【정견망】
소도호가 그 한 차례 윤회를 말하고 싶지 않아하기에 나는 잠시 집안일을 하면서, 그것이 읍소하지 않아도 그것의 비참한 윤회에 대해 쓰기로 결정했다. 《만물은 영이 있다: 찻주전자와의 대화 (3)》를 쓰고 곧 펜을 들어 (4)편을 썼는데, 소도호는 늘 울기만 해서 차 저장항아리에 대해 쓰고 중간에 또 다른 몇 편의 글을 썼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 이 소도호는 역사적으로 춘추전국 시기 기정(祁貞)이라는 이름의 제(齊)나라의 미모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남편 문성(文成)은 군대 관리였고 기정이 처음 물건을 군영에 보낼 때 남편의 상관 초륵(肖勒)의 눈에 띄게 되었다. 초륵은 기정의 미모를 보고 나쁜 마음이 생겨 먼저 문성에게 외지로 편지를 보내라고 시키고 또 중간에 사람을 시켜 그를 죽였다. 나중에 부하를 긍휼히 여기는 척하며 기정에게 접근했고 도와주며 감격하는 마음을 얻었다. 마침내 그는 기정을 가졌다. 기정은 세 살짜리 아들 문창(文昌)이 있었는데 기정이 초륵에게 몸을 맡긴 것이 기원전 476년이었다.
초륵의 큰 부인 제민(齊敏)은 아주 나쁜 여인이었다. 남편이 기정을 총해하자 그녀는 매우 질투했다. 그녀는 점차 일의 내막을 알게 되었고 남편의 마음을 얻고 기정 모자를 해치려 했다. 그녀는 기정에게 문성이 죽은 이유를 알려주었고 또 하인을 시켜 그녀를 향한 관심을 표시하며 주인의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기정은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고 싶어 했다. 하인은 그녀를 돕겠다고 했다. 그 결과 도망가려는 그날에 초륵에게 발견되었다. 물론, 그건 제민의 배치였다. 소륵은 기정이 하인과 사통해 달아나려 한다고 하며 자기를 배반했다고 여겨 분노한 나머지 기정을 때렸고 또 실수로 아이도 죽였다. 그는 하인에게 아이를 마른 우물에 던져 넣고 기정을 감옥에 가두었다. 기정은 밤중에 제민이 보낸 사람에 의해 독약을 먹고 죽었다.
이는 한 미모의 여인에게 가해진 음모와 위계(危計)로 온 가족이 차례로 죽임을 당한 비참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당사자가 회고하길 꺼리는 것도 당연했다.
이틀 뒤 아침 소도호가 말했다.
“주인님 정말 싫어요. 제가 해야 할 말을 하시네요. 사실 저는 또 한 번 비참한 경험이 있었답니다.”
내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해보렴. 예쁜 찻주전자 언니가 너를 달래줄 거야!”
소도호가 말했다.
“물론, 그녀가 말하면 정말 받아들일 수 있고 들으면 편해요.”
내가 말했다.
“이번엔 찻주전자 언니가 네 마음을 열어주었으니 네가 마음을 닫으면 안 돼!”
소도호가 말했다.
“하지만 전 원래 너무 우울해요. 다들 저를 신경 쓰고 달래주시니 저도 변해볼게요.”
내가 말했다.
“계속해서 네 윤회를 말해줄래?”
소도호가 말했다.
“당연하죠. 저는 그때 한 번 해침을 당해 비명횡사했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전생(轉生)할 수 있었어요. 저는 저를 죽인 사람에게 매우 원한을 가졌고 보복하기로 맹세했어요. 저승에서도 제 복수를 허락했어요. 복수하는 시간은 진조(秦朝)로 정해졌어요. 진시황이 장성을 수리할 때 저는 감독이었어요. 나는 두 사람을 보았는데 몹시 눈에 거슬렸죠. 그들이 바로 저를 해쳐 죽인 부부였어요. 저는 그 두 사람을 회초리로 모질게 때렸고 기회만 나면 그들을 감시했으며 회초리로 괴롭혔어요. 어쨌든 그들이 죽자 숨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내가 말했다.
“이번엔 원수를 갚았구나. 네 남편을 해쳐 죽인 살인범과 그 나쁜 하인 역시 악보를 받아야 지!”
소도호가 말했다.
“그건 그래요. 하늘이 어찌 그들을 용서했겠어요. 그 하인은 밥 짓는 사람으로 전생했고, 저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늘 트집을 잡았고 사람들도 그녀를 업신여겼어요. 그녀는 답답한데다 또 병까지 나서 곧 죽었답니다. 문성을 죽인 그 사람은 명계(冥界)에서 문성이 복수하도록 안배했어요.”
내가 말했다.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고 하지. 시공(時空)이 겁수(劫數)를 충분히 모았으니 신(神)이 네게 복수할 기연을 주셨구나. 인과응보는 절대 헛소리가 아니지!”
소도호가 말했다.
“한 무제 때 저는 궁중의 예쁜 울타리였어요. 저는 다른 많은 울타리 난간들과 함께 궁궐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어요. 황제, 진아교, 위자부, 동방삭 등 많고 많은 사람들이었죠. 또 100여 년 동안 서 있으며 제왕, 비빈, 신하, 내감, 궁녀가 오가는 것을 보았죠. 제가 본 사람들은 모두 과객 같았어요. 서한 말에 망가져 전생했고 동한(東漢)에 이르러 낙양의 궁궐에수 예쁜 상감 기와가 되어 처마에 있었어요. 저는 광무제 유수, 음려화(陰麗華), 곽성통(郭聖通)을 보았어요. 유수는 매우 바빴고 음려화는 아주 아름다웠고 곽성통은 교활했어요. 나중에 광풍이 불어서 나는 바람에 휘말려 떨어졌고 곧 부서졌죠.”
내가 말했다.
“너는 참 많은 사람들을 봤구나! 한 무제나 광무제(光武帝)는 모두 위대한 제왕이란다. 그 시대에는 풍운인물(風雲人物)이 적지 않았지! 기왓장으로서 너는 높은 곳에서 멀리까지 볼 수 있었겠구나.”
소도호가 말했다.
“하지만 높은 곳도 위험이 있어요! 떨어져 죽으면 몹시 아프답니다! 그 후 저는 순백색의 털복숭이 강아지로 변했는데 매우 귀여운 강아지였죠. 등(鄧)씨 집안이었는데 이 가문에서 등수(鄧綏)라는 황후가 한분 나왔죠.”
내가 말했다.
“이 황후는 매우 유명하단다! 그녀의 친정 가문도 빛났지! 조부인 등우(鄧禹)는 남양(南陽)의 호족으로 광무제 유수를 따라 기병하여 한실(漢室)을 위해 큰 공을 세웠지. 《후한서》에 따르면 광무제가 장군 등우에 대해 ‘장막 속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했다.’고 했지. 한 명제(明帝)는 남관 운대각에 개국공신 28명 장군들의 초상을 그리게 했는데 이를 운대 28장(將)이라 하는데 바로 등우가 운대 28장의 으뜸이었지. 등우는 사람이 겸허하고 온화해서 그가 이끄는 군대의 군기는 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단다. 등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백만 군중 중에서 단 한 사람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하늘의 도는 갚음을 좋아하니 나의 후세에 필히 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소도호가 말했다.
“등수의 부친인 등훈(鄧訓)도 아주 대단했어요.”
내가 말했다.
“황상(皇上)이 등훈에게 조운(漕運)에 필요한 운하 개통을 감독케 했다. 이전에는 지방관원이 백성들을 시켜 물길 중 험한 곳을 개통하게 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죽었지. 하지만 등훈이 책임을 맡은 후 꼼꼼하게 측정하고 고찰해 성공하기 어려운 공정이라 판단해 황제에게 이 공사를 멈추고 당나귀 수레를 개조하여 물자 수송에 사용하기를 제안했단다. 이렇게 하여 억만 관의 비용을 절약했을 뿐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지. 정말이지 덕을 쌓고 선행을 하는 대사였다. 옛말에 선(善)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고 했다. 천명의 목숨을 살린 사람은 후세에 두터운 덕을 쌓아 가족이 반드시 복을 받게 마련이지. 이는 하늘의 이치란다.”
소도호가 말했다.
“등가(鄧家)의 노마님도 덕을 쌓고 선을 행하면 복(福)이 길게 이어지고, 자손에게 복이 미친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말했다.
“좋은 운명은 모두 덕행(德行)에 달렸고 나쁜 운명은 모두 악행에 달려 있지. 등가의 자손들은 대를 이어 내려가며 발전되어 갔다. 지금 중공 기득권 2세들처럼 2대가 되면 엉망이 되어 직접 관직이나 재물이 끝나는 것과는 다르지.”
소도호가 말했다.
“주인님 말씀에 일리가 있어요. 등훈의 딸 등수는 대단했어요. 그녀는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하늘에 도달했어요.”
내가 말했다.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등수가 꿈에 자기가 ‘하늘’을 만졌다. 천체(天體)는 무한하고 광활하며 색깔이 짙푸르고 울창했으며 하늘이 일부 종류석 같은 것으로 형성되자 등수는 위로 그것을 빨았다. 등수가 신기한 꿈을 꾸자 식구들이 꿈 해몽가를 찾아가니 그가 ‘요임금이 한때 꿈에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고, 상탕(商湯)은 하늘을 만지고 혀로 핥았는데 이는 성왕(聖王)이 될 전조이자 길조(吉兆)이며 대단히 길합니다’라고 말했다. 식구들은 또 관상가를 불러 등수를 보게 하니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성탕의 골상(骨相)으로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등수의 가족들은 듣자마자 분명히 알았다. ‘이 꿈은 등수가 존귀한 지위에 오를 조짐이구나. 여자로서 존귀한 지위는 황후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소도호가 말했다.
“저도 이 일을 들었어요. 그때 저는 하녀의 품에 안겨 점쟁이가 꿈을 해석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녀의 가족은 매우 흥분했지만 또 모두 입을 다물고 외부에 함부로 발설하지 않았죠.”
내가 말했다.
“등수와 여러 가문의 여자들이 뽑혀 함께 입궁했는데 《후한서》에 이런 기록이 있단다. ‘등수의 용모가 아름답고 여러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등수는 곧 화제(和帝 유조)의 총애를 받았고 귀인(貴人)에 봉해졌지. 그러자 음(陰)황후가 몹시 질투했지. 등수는 음 황후에게 공손하고 조심하며 행동은 법도에 맞게 했으며 옷차림도 소박했지. 황후와 함께 황제를 알현할 때는 늘 서 있었고 감히 앉지 않았단다. 황후와 함께 걸을 때 항상 몸을 굽히고 잔걸음으로 걸어 겸손을 표시했지. 화제가 후궁에 대해 물으면 등수는 먼저 말하지 않았지. 화제가 감격해서 이렇게 말했단다. ‘귀인이 겸허하고 마음을 써서 몸을 낮추고 덕(德)을 닦는 수고로움이 대체로 이와 같구나!’”
소도호가 말했다.
“저는 그녀의 가족 역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등씨 집안에 가훈이 있는데 바로 온화하고 겸손하고 함부로 잘난 척하지 않고 부지런히 덕행을 닦아 가문을 빛나게 한다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음황후가 등수를 질투하자 친정에서 등귀인을 저주한 것을 황상이 알게 되어 황후가 폐출되었지. 후궁에 주인이 없으니 대신들은 황상에게 황후를 속히 세울 것을 주청하자 화제는 ‘오로지 등귀인만이 후궁에서 덕이 가장 뛰어나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지. 등수는 세 차례 겸손하게 사양한 후 황후에 세워졌으니 그녀에 대한 화제의 신임과 총애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지.”
소도호가 말했다.
“당시 등씨 가문은 기쁜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말 가문의 영광이었어요. 저는 작은 개였지만 많은 일을 알아요. 저는 등수가 황후가 된 다음해에 죽었는데 20년을 살았어요!”
내가 말했다.
“정말 장수했구나.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됐어?”
소도호가 말했다.
“나중에 수조(隋朝) 때 관풍행전(觀風行殿)의 창문이 되었는데 꽃무늬가 정교하고 아름다웠어요.”
내가 말했다.
“그건 수양제 시기의 일이지. 유명한 장인 이춘(李春)이 나타났지. 수양제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먹고 입고 사는데 천하의 재산을 다 소모했지. 그 관풍행전은 정말 멋있게 지었어. 광활한 곳에 예쁜 궁궐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었지!”
소도호가 말했다.
“그래요, 매우 애써서 만든 궁궐이죠. 애석하게 나중에 전쟁 중에 불에 타버렸죠.”
내가 말했다.
“그렇지, 이춘이 지은 건축물 중에 겨우 조주교(趙州橋) 하나만 남았지. 이 조주교는 대단해. 기록에 있는 조주성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조주교는 여전히 우뚝 서 있잖아. 자료에 따르면 조주교는 10차의 수해, 8차의 전란과 여러 지진에도 무사하니 건축사의 기적이야. 고대의 건축가는 지혜가 있고 양심이 있었던 거 같아. 지금의 쓰레기 같은 부실 공사로 관료들만 배불리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트리는 그런 자들과는 다르지.”
소도호가 말했다.
“저는 또 전생했어요. 궁전 안으로 전생했는데 궁궐 정원의 화분이 되었고 국화를 심었어요. 나는 이 수목들이 매우 부러웠고 나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죠.”
내가 말했다.
“전생을 관리하는 신이 분명 네 마음의 목소리를 들었겠구나.”
소도호가 말했다.
“그래요. 저는 매화나무가 되었고 매원(梅園)에 옮겨져 매비를 보았던 거죠.”
내가 말했다.
“네 이야기와 이전 글 한편이 연결되는구나, 그런데 이거 순서가 바뀌었구나. 하지만 너는 또 한 번 비참한 경험이 있었지. 한조(漢朝)의 강아지에서 수조 창문까지 대략 500년간이잖아. 차이가 너무 멀어.”
소도호의 얼굴이 또 굳어졌다.
내가 말했다.
“네가 말하기 싫으면 여기서 멈추자. 강요하지 않으마.”
소도호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매우 아름다운 여자로 전생한 적이 있어요. 어느 장수에게 시집갔는데 남편은 어린 첩을 사랑하여 나는 화가 났고 원한을 품고 우울하게 죽었어요.”
내가 말했다.
“남북조 시기구나? 남조(南朝)였니 아니면 북조(北朝)였니?”
소도호가 말했다.
“북조요. 북제(北齊)의 한 장수였는데 난릉왕(蘭陵王) 휘하의 장수였어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들이마셨다.
“난릉왕은 북제의 전신(戰神)으로 용맹하고 싸움에 능했지. 이는 신기한 인물이자 유명한 미남자인데 작전을 할 때는 면구(面具 일종의 마스크)를 만들어 썼지. 애석하게도 황상에게 사사(賜死) 당했고 스스로 나라를 망쳤지.”
소도호가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난릉왕 용모가 짝할 사람이 없고 공(功)이 높아 황상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여겼죠. 그 500년 동안 저는 또 백옥(白玉) 비녀로 전생하며, 풍 태후의 머리에 꽂혀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 원굉(袁宏)의 할머니를 말하지? 이건 북제 전의 일이야.”
소도호가 말했다.
“그래요. 풍 태후는 아주 아름다웠어요. 또 정치 수단이 좋아서 북위의 정국을 다시 안정시켰죠.”
내가 말했다.
“그녀는 북위 민족의 한화(漢化)를 추진했고 효문제가 그녀의 영향을 받아 개혁을 진행했지. 천도하고 제도를 고치고 진일보로 한족(漢族)의 성으로 개조하고 한복을 입고 한족과 혼인을 통해 척발(拓跋)씨를 원(元)씨로 바꾸었는데 자기는 척발굉에서 원굉으로 바꿨지. 내가 보니 네가 접촉한 사람이나 일은 모두 내 주목을 끌게 하는구나.”
소도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세(世)에 원한을 품은 부인이 되어 우울하여 죽은 후 내가 다시 사람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발원했는데, 그 소원이 실현되어 다시 물건으로 전생했어요. 남조 궁중에서는 촛등이 되었고 진후주(陳後主)와 비빈들과의 환락을 보았는데 몹시 사치스럽고 낭비했어요.”
내가 말했다.
“촛등은 생명 과정은 너무 짧잖아!”
소도호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원망하지 않아요!”
나는 마침내 이 소도호의 윤회를 다 썼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소도호의 윤회를 서술했지만 평범하지는 않다. 나는 독자들이 이속에서 유익한 내용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육도윤회에서 어떤 생명이든지 윤회 생명의 운행 과정 중에 겪은 경험이 다 아주 풍부하다는 점이다. 소도호로 말하면 생명 중에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런 얽힌 지난 일은 버리지 못한 마음의 매듭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는 결국 지나갔으니, 반드시 미래를 향해 보아야 한다. 한 사람으로서 만약 비슷한 맺힘(콤플렉스)이 있다면, 자신을 더욱 고쳐야 한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원망을 품지 말고 감사할 줄 알고 낙관적이며 남에게 너그럽고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과거의 속박에 묶여 살지 않는 것 역시 일종의 지혜이자 활달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