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여기서 내가 어떻게 집착심을 찾았는지 한번 써보고자 한다.
가령 질투심을 예로 들어보자. 우선 질투심은 늘 어느 방면과 어느 곳에서 표현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나보다 나으면 질투하고, 어떤 사람이 나보다 이익을 많이 얻으면 질투하고, 어떤 사람이 나보다 명성이 높으면 질투하고, 어떤 사람이 나보다 층차가 높으면 질투하고, 인식한 이치가 나보다 높고 나보다 좋아도 질투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비교(比)”다. 늘 남과 비교하는 것이 질투를 조성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더 이상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가? 비교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하면 질투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사고가 명확해졌으면 이어서 하면 되는데 해낼 수 있다면 된 것이다. 깊은 사고로 파고 들어가 본질에 접근해 이 집착심을 완전히 제거하면 개인적으로 수련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비교적 직접적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다시 생각해보면 곧 “비교하는” 마음 역시 자신이 완전히 옳기를 바라고 스스로 잘난 체 할 수 있기를 바람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바로 사심(私心)이며 근원이 사(私)다. 하지만 사는 대체 무엇을 포괄하는가? 줄곧 본질을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왜 단번에 가장 근원적인 것을 생각해야 하는가? 단번에 완전히 해결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하면 일이 줄어들고 일이 끝난 것이 아닌가? 한입을 먹는다고 해서 뚱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과시심이 있는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뉴질랜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 중의 수련은 한 층 한 층씩 사람의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치 그 양파처럼 한 껍질 한 껍질 그것을 벗겨버리는데, 최후에 모두 벗겨서 없어졌을 때가 바로 본질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과거의 수련인은 집착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당신들은, 거의 모든 집착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한 층 한 층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켜, 갈수록 더 약해지게 하고 갈수록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르기 전에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 무리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각지설법 13》〈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한걸음씩, 그런 착실하지 못한 생각들을 제거하야 하는데, 줄곧 어떻게 해야만 무사(無私)할 수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발걸음은 한 걸음씩 점차적으로 실현한다. 첫 시작에는 제거해야 할 것이 마치 큰 바다와 같음을 발견하는데, 자신이 실제적으로 생각해 집착심의 보다 깊은 근원을 제거한 후 다시 착실하고 착실하게 그것을 제거하면 해낼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큰 바다는 사라지는데 어떻게 사라졌는지 의식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법에 따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하고 또 해내면 어느 날 문득 큰 바다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익지심(利益之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무엇이 이익인가? 자신에게 좋은 점이 있는 것으로 자신이 좋은 물건을 얻거나 좋은 견해를 얻거나 좋은 명성을 얻는 것으로 자신에게 속하는 물건이지만 남에게 주기 싫다고 여기는 등등이다. 여기서 공통점은 무엇인가? 얻고, 점유하고, 이기적이며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즉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로 이익지심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당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바로 제거한 것이 아닌가?
무엇이든 다 감당하고 또 감당하려고 생각한다면 내심 깊은 곳에서 스스로 감당하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오직 감당하려 한다면 마음이 변하고 행동 역시 변할 것이다. 그럼 일체가 다 개변될 것이다. 스스로 법에 따라서 하며 정상적으로 사람 속에서 생활하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정도로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감당할 수 있고 행동에서도 해낼 수 있지만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에 따른다.
일체를 다 법에서 생각하고, 일체를 법에 따라 하며, 자신의 관념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사부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보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자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집착심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과정이 바로 일종의 실천과정이 아닌가? 당신이 생각해냈다면 곧 내려놓는 것으로 또한 줄곧 깊은 곳까지 생각해 자신이 진정으로 어떻게 해야만 이 집착심을 전부 내려놓을 수 있다고 여기는 데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의 과정이 바로 실천하고 해내는 과정이 아닌가? 또한 당신이 진정으로 집착심을 제거할 결심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의 작은 견해이니 일체는 다 법(法)에 따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옳은 것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라 하고 법을 잘 이해하자.
여러분들과 서로 교류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