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신경문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를 읽고 느낀 바가 있는데 누가 사부님의 가족인가? 전 세계인들은 모두 일찍이 사부님과 생생세세(生生世世) 가족인 적이 있는데 누가 누구보다 더 친한가? 모두 사부님께서 동시에 지옥에서 건져 올리셨는데 누가 누구보다 더 나은가?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질투심, 원한심(怨恨心), 구하는 마음, 탐심(貪心), 야성, 만족을 모르는 마음이 그렇게 강렬한가? 이것이 바로 매 생명이 인간 세상에 떨어져 내려온 근본원인인데, 안으로 수련하지 않고 도리어 이런 더러운 마음이 팽창하고 더 팽창했다. 말겁 최후 시기에 사부님께서는 각종 기연(機緣)의 형식을 이용해 우리로 하여금 도(道)를 깨닫고 수련하게 하셨으며 우리더러 진정으로 초심(初心)을 되찾고, 자신을 되찾아, 대법에 동화해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가도록 하셨다.
각자(各自)의 가정, 각자의 길, 각자의 인연은 각자 매듭을 지어야 한다. 누가 이 일체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 누가 또 그 속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능력이 없다. 그 어떤 생명이든 단지 자신이 수련할 몫만 있을 뿐이다. 자신을 수련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 온 목적이며, 자신을 다시 만들어야만 비로소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누가 또 최후에 일을 교란한다면 그가 바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전반 정법(正法)의 체계적인 배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하물며 속인마저도 바른 에너지의 홍대한 추세(趨勢)가 인간 세상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수련인이 도리어 이것저것을 따지면서 사람의 정(情)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원만하고, 어떻게 삼계 밖의 성결(聖潔)한 나라로 갈 수 있겠는가?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지금 인류의 일원(一員)으로서 특히 대법제자의 일원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부를 기만(欺)하는 것! 또 하나는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것! 왜냐하면 이것은 생명이 남거나 제거되는 근본적인 경계이기 때문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안 된다.”(《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
우리는 모두 인류의 일원이니 서로 존중하고 서로 구도하며 서로 배우는데 선량(善良)이 생명의 본질이다. 그 어떤 사람이든 무슨 사람의 신분을 자처할 수 없으며 공명(功名)을 성취한다는 것은 속인의 말이자 아마도 허영이란 재앙의 뿌리일 것이다. 더욱이 대법제자의 신분으로 높은 곳에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을 얕잡아보거나 더욱 심한 자는 엄중하게 다른 수련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중생이 구도 받는 것을 교란해서는 안 된다.
대법이 인간 세상에서 널리 전해진 지 이미 30년이 넘었음에도 수련인이 만약 아직도 정말로 자아(自我) 수련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다면 그럼 곧 진수(真修)가 아니다. 자신을 다시 만들려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을 수 없고 자연히 삼계(三界)를 뛰쳐나갈 수 없다. 단지 삼계를 뛰쳐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거대한 업채(業債)를 빚지게 된다.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면 그럼 생명을 담보로 한 일이 장차 실현될 것이다. 이는 자비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주의 법리(法理)가 일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매 한 생명에 대해 모두 공평한 것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진수하지 못하면 명리(名利)와 색욕(色慾)이 속인과 같아지며 추구하는 모든 것이 다 속인과 마찬가지로 되는데 그럼 세인이 구도 받는 것과 대법에 대한 태도를 교란할 수 있다. 이는 대단히 엄숙한 일이다.
사부님을 기만[欺師]하면 죄업(罪業)이 끝이 없다. 기(欺)라는 글자의 함의는 “其欠(그 빚)”이라 할 수 있다. 남에게 빚지고, 남을 괴롭히고, 남을 속이고, 남에게 사기치고, 남을 모욕하고 남을 기만하는데 기(欺)는 모두 남에게 빚지는 것으로 모두 덕(德)을 잃는 것이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며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을 갚아야 하는데 이는 하늘의 법이자 하늘의 이치다.
“양심을 속이는[欺心]” 것이 바로 “사부님을 속이는[欺師]” 것이다. 사실 진정으로 해치는 것은 남이 아니며 남이 손해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닌데 자신에 대한 상처가 가장 크다. 이는 자신을 죽이는 것인데, 자신이 큰 손해를 보는데 업채(業債)가 너무 크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서 남을 속인다고 여기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의식하지 못했든 사부님을 속이는 것은 바로 하늘의 법을 모독하는 것으로 수련을 아이들 장난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만든 재앙은 살 수 없다[自作孽不可活]는 도리인데 하늘과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개인의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부디 시정해주기 바란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