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사부님의 신경문과 명혜 편집부의 글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수련의 엄숙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아첨과 자심생마(自心生魔)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특히 최근 한 동수가 박해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첨과 아주 큰 관련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했다. 또 내가 직접 겪은 일을 연상시켰고 또 이를 통해 아첨의 해악을 똑똑히 볼 수 있게 했다.
2014년, 나는 30명 이상의 동료들과 함께 상부의 배치에 따라 자매 중학교로 전근되었다.
새로운 학교는 매년 ‘고효율 과목 시범 수업’ 행사를 개최해 하루 종일 매 과목마다 한 명의 교사가 나서 강의를 했다. 새로 온 교사 중에서 내가 시범수업에 참여하도록 지명되었다.
나는 당시 이전에 맡았던 과목을 강의하는 대신, 수업 진도에 따라서 강의했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 준비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날 모두들 내가 수업을 너무 잘했다면서, 말도 시원시원하면서, 군더더기 말이 하나도 없었다는 등등 많은 칭찬을 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내 수업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후 새 학교에서 모두들 입을 모아 내 능력을 칭찬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아첨하는 말을 했다.
이런 말들이 내 귀에도 전해 들어왔다. 원래 나는 자신이 강의 실력이 우수하다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아첨과 치켜세움 속에서 점점 더 자신의 수준이 높다고 느꼈고, 나중에는 그날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 여겼다. 나는 원래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없었고, 아직 나이가 젊었고 업무 방면에서 더 깊이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후로는 비약적인 발전이 없었다.(물론 2015년 연말, 강택민 고소 때문에 박해를 받아 수업 일선에서 물러나 계속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
이 일을 통해 아첨의 해악이 대단히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아첨을 받으면 자신의 행동이 남보다 낫고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그럼 곧 다음과 같은 후과가 나타날 수 있다.
1. 제자리걸음을 하기 쉽다.
2. 겸허, 신중, 경외심을 잃게 한다.
3. 자아가 팽창해서 아첨으로 오만하고 거만해지기 쉽다.
4. 점차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5.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승복하지 않고 속으로 질투하는 등등.
비록 이 일이 내 업무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나 자신은 아첨을 받고 난 후 확실히 심리적인 변화를 느꼈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아첨을 받는다면 그 후과는 더욱 엄중하다. 우리 현지의 한 노(老)동수가 갑자기 박해받아 세상을 떠났는데, 우리에게 아주 심각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남들이 아첨하는 사람들은 종종 어느 한 방면에서 비교적 일을 잘한다. 예를 들어 진상을 똑똑히 말해서 많은 사람을 구하거나, 사악의 박해에 직면에 정념(正念)이 강하거나, 늘 밖에 나가 진상을 알려도 다른 동수는 문제가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동수 등등. 한 사람이 아첨하고 두 사람이 아첨하면 사부님 말씀처럼 “사람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가 아주 어렵다.”(《전법륜》) 아첨을 받는 동수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동수에 대한 해악이 아주 크다. 이 동수는 서서히 자신이 대단하며 남보다 다 낫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의 시작이다.
자심생마 한 사람의 심리는 흔히 아주 조금씩 변화하지만, 실질적인 결과는 마찬가지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 마(魔)가 그를 교란하며 말한다. “당신은 리훙쯔(李洪志)보다도 높으며 당신은 리훙쯔(李洪志)보다 얼마 얼마나 더 높다.”(《전법륜》) 이렇게 들뜬 심리 작용 때문에 그는 단지 자신이 잘 하는 그 일면만 보고 자신이 각 방면에서 다 괜찮은 것처럼 여기고 점차 자신의 결점과 부족함을 보지 않게 된다.
어떤 사람이 그의 집착심을 지적할 때 그는 체면과 명예를 구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이런 집착심을 감추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꼭 일부러 감추는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그는 정말로 자신의 부족을 볼 수 없는데 자만심이 그로 하여금 자아를 잃게 하고, 심지(心智 마음의 지혜)도 잃게 만든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잘 닦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집착심을 감추고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이럴 때 사악에게 구실을 잡히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때 자심생마 한 사람은 오히려 사부님이나 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정념(正念)이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마성(魔性)에 미혹되어, 흐리멍덩해져서 정념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난(魔難)이 산을 밀고 바다를 뒤집어 업을 듯이 닥칠 때면 동수는 정념이 올라오지 않으니 박해를 부정하고 박해를 해체하지 못한다. 사부님의 자비,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 아래 그래도 기회를 주시며 시간은 연장될 것이다. 하지만 연장된 시간이 길어지면, 동수는 또 박해를 부정하지 못하고, 이 때 쉽사리 사부님을 원망하는 염두가 나타난다. 마난에 처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많은 일을 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했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한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왜 나를 관할하지 않으시는가?”
이렇게 되면 사악은 또 이를 구실로 잡아 박해하는데, 최후에 어떤 이는 박해로 세상을 떠난다. 자심생마 한 사람이 결국 박해로 세상을 떠난 궁극적인 원인을 찾아보면 바로 사람들의 아첨으로 조성된 것이다.
교훈은 심각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지역에는 여전히 자신이 아주 대단하고 아주 잘 했으며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는 동수들이 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이런 동수들은 한 가지 일을 망각했는데 그것은 당신의 모든 성적과 능력은 다 사부님과 대법에서 내원했다는 점이다. 만약 사부님과 대법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 한가지가 있는데 아첨과 찬양을 마주할 때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었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정진요지》〈수련자는 자연히 그중에 있다〉)
한 대법제자로서, 언제라도 사부님을 망각하거나 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난이 닥치는 것이 아무리 흉악할지라도 오직 마음속에 사부님과 법이 있기만 하면 내 생각에 수련인의 정념을 지켜내면 사부님께서 곧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경사경법(敬師敬法)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이 대단하다는 염두가 있기만 하면 그럼 곧 사악이 당신을 망치려 생각하는 시작일 것이다.
현 단계에서의 인식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0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