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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대법제자

【정견망】

하루 종일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 이때 내가 방금 자신이 한 일을 말하자 남편의 얼굴이 금방 돌변했다. 마치 누군가 남편에게 원한을 충전한 것처럼, 거침없이 내 잘못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분개해서 내가 그의 말을 지적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내가 듣기에 남편의 말은 아주 신랄하고 원망이 가득했다.

나는 이 한 장면[一幕]을 보고 처음에는 마음이 좀 언짢고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 바르지 못한 상태를 바로잡았고 마음이 편해졌으며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표정이 평온해서 언짢은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 한순간 나는 마치 국외자(局外者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졌고, 눈앞에서 발생한 이 장면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졌다. 즉 마치 한 차례 연극처럼 마음이 법에 의해 바로잡히자, 자신이 법(法)에 의해 부각되었고, 가상(假相)이 역할을 잃었으며, 이 연극은 여기서 끝났음을 나는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이 문제를 봄에 그는 총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보나, 사람은 단지 표면상에서 본다.”

(《각지설법 14》〈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설법〉)

이를 통해 나는 ‘인연(因緣)’을 깨달았는데 사람이란 이 표면에서 드러나는 것은 소위 모순과 고민이다. 만약 당신이 이 모순과 고민을 꿰뚫고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본다면, 인간세상이란 이 가상(假相) 배후의 진상(真相)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방금 일어난 일을 다시 보면, 식사 전과 식사 중에는 가족들이 모두 화기애애해서 모순을 유발할 그 어떤 요인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일련의 행동이 우연히 나타난 것일까? 아마 왜 그렇게 했는지 남편 자신도 모를 수 있는데, 사실 이 모순의 배후에는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아마 구세력이 강요한 교란 요소 때문일 텐데, 바로 대법제자의 수련 환경을 어지럽히려는 것이고, 또한 자신이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남편의 표현을 이용해 나더러 용량을 넓혀 자비(慈悲)를 닦아 나오게 하려는 것으로, 앞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뒤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것 역시 인연이라는 이 하나의 선(線)에 이끌린 것이다. 우리 가족은 또 사부님의 대법을 배우는 동수인데, 이는 더욱이 대법의 성연(聖緣)이다. 우리는 대법이 육성한 생명으로 우리 선천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인간 세상의 연분(緣份)이란 그저 속인 상태에 부합하는 한 가지 표현일 뿐이며 진정한 연분은 사부님과의 성연(聖緣)이자 대법과의 기연(機緣)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기의 이 길을 잘 걷기가 말하기는 확실히 아주 쉽지만, 해내기는 확실히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떻게 어렵든지 간에, 당신은 이 일을 위해 왔다. 어떻게 어렵든지 간에, 당신의 생명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성취되었다. 모든 대법제자는 삼계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각지설법 15》〈2018년 워싱턴DC설법〉)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대법제자는 인간 세상이란 이 무대를 빌려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내 중생을 구도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주친 일체를 다 법(法)에 입각해서 수련인의 각도에 서서 대해야 한다. 우리는 생생세세 윤회 속에서 인간 세상이란 이 무대 위에서 온갖 다양한 역할들을 맡아왔다. 이런 역할들을 연기한 것에는 또 구세력이 강요한 변이 물질과 방해요소가 있다. 때문에 비록 무대 공연에서 아마 많은 줄거리가 구세력에 의해 고쳐졌고, 동시에 그것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억지로 더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역사는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 하면서, 대법제자 역시 무명(無明)의 미혹 속에서 구세력에 의해 많은 부면(負面) 요소들이 억지로 더해졌다.

사부님의 정법은 우주중의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고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각지설법 4》,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대법제자는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하는데, 대법제자의 일체는 대법에 귀속되며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기 때문에 그 어떤 생명도 대법제자에 대해 소위 고험(考驗)할 자격이 없다. 구세력은 이미 우리 대법제자의 머릿속에서 ‘청령(清零 깨끗이 지워졌다)’되었다. 우리의 매 하나의 제고는 모두 사부님의 가호 아래, 대법의 가지(加持) 아래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법(法)은 대법제자의 뿌리이자 대법제자 생명의 순정한 정도를 검증하는 것이다. 우주중의 일체 물질 요소는 다 법(法)이 만들었기 때문에 생명의 내원은 법(法)에서 오며 또한 법(法)에 동화되어야 한다. 그럼 사람 이 표층에서 부딪힌 일은 반드시 법으로 가늠하고 법으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그 안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사람의 요소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으며 비로소 초탈해 나올 수 있다.

작은 수련 체득이니 부당한 점이 있으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