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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심과 초심: 왕창령의 《부용루에서 신점을 보내며》를 읽고

청풍(清風)

【정견망】

찬비가 쏟아지는 밤 오(吳) 땅에 들어와
새벽에 그대 배웅하니 초(楚)의 산이 외로워라
낙양 벗들이 내 소식 묻거들랑
옥병에 든 한 조각 빙심(氷心)이라 전해주시게

寒雨連江夜入吳
平明送客楚山孤
洛陽親友如相問
一片冰心在玉壺

왕창령의 이 송별시는 역대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아 왔는데 단순히 벗과 작별하는 정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시인의 빙심(氷心 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과 초심(初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첫 두 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추운 겨울 밤 큰 비가 내려 강물과 하나로 합쳐지고, 오(吳) 땅 일대가 흐릿하다. 이튿날 새벽 벗과 작별하는데 시인이 혼자 초산(楚山 옛날 초나라 쪽에 위치한 산)을 바라보니 고독한 감정이 절로 생겨난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장소나 떠나가는 친구의 상황, 작별 방법 등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마치 생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운이 무궁무진하다.

“낙양 벗들이 내 소식 묻거들랑
옥병에 든 한 조각 빙심(氷心)이라 전해주시게”

낙양의 친지들이 만약 나에 대해 물어보면, 내 마음은 여전히 옥병 속의 깨끗한 얼음처럼 순수하며 공명이록(功名利祿) 등 세속의 때에 물들지 않았노라고 전해달라는 뜻이다. 여기서 얼음은 맑고 투명한 것으로, ‘얼음’이 ‘옥병’에 녹아 들어가 있으니 겉으로 봐도 맑고 순결하며 수정처럼 투명하다. 이렇게 안과 밖이 일치하니 보는 이에게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면서 ‘표리여일(表裏如一 안과 밖이 동일)’한 품격을 보여준다.

문장은 그 사람과 같다고 했다. 시인은 평생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시종 세상 부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품격을 지켰다. 때문에 이런 불후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높은 각도에서 보자면 시인의 근기(根基)가 대단히 좋았기 때문에 세간의 명리나 득실을 담담히 볼 수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진(真)’의 품격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옥병에 든 한 조각 빙심”이란 표현은 그야말로 신필(神筆)인데 시인의 생명경계를 아주 정확히 표현하는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본 진실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속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일종의 교묘한 비유가 아니다.

동시에 이는 또 일종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초심(初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홍루몽》에서 “본래 근본은 순결하게 왔다가 순결하게 간다”는 것의 진정한 함의와 왕창령이 여기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 비슷하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연상하게 하는데, 수련의 문에 들어선 때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심을 정화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떤 사람은 줄곧 정진하지만 어떤 이는 나태해졌고 어떤 이는 곤혹에 빠졌고 어떤 이는 미망에 빠졌으며 어떤 이는 포기했다.

만약 어느 날 천신(天神)이 우리 영혼에게 “당신은 수련을 어떻게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부디 우리가 모두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옥병에 든 한 조각 빙심과 같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