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清風)
【정견망】
먼저 왕유의 《가사인의 ‘대명궁 아침 조회’에 화답하다(和賈至舍人早朝大明宮之作)》를 감상해보자.
붉은 두건의 계인이 경주 가져와 새벽 시각 알릴 제
상의관이 바야흐로 비취색 구름무늬 갖옷을 황상께 바친다
구중천 궁문 열어 궁전을 활짝 개방하니
만국의 의관 정제한 이들 황상을 배알한다
날 밝아 새벽 햇살 비로소 비쳐오며 승로반 선장이 번쩍이고
향로 연기 어느새 황상을 휘감으며 곤룡이 떠다닌다.
조회 끝나자 그대는 또 오색의 조서를 기초해야 하니
패옥 소리 울리며 봉황지 연못가로 돌아가리라
絳幘雞人報曉籌,尚衣方進翠雲裘。
九天閶闔開宮殿,萬國衣冠拜冕旒。
日色才臨仙掌動,香菸欲傍袞龍浮。
朝罷須裁五色詔,佩聲歸到鳳池頭。
이 시는 당 숙종 건원(乾元) 원년(758년) 봄, 당시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있던 왕유가 시인 가지(賈至), 두보, 잠삼(岑參) 등과 동료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당시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있던 가지가 먼저 《대명궁 아침 조회를 읊어 양성 동료들에게 드린다(早朝大明宮呈兩省僚友)》는 시를 짓자 두보, 왕유, 잠삼이 모두 화답 시를 지었는데 왕유가 쓴 화답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역대 해석은 모두 이 시는 세부 묘사와 생생한 장면 표현을 통해 대명궁 아침 조회의 장엄하고 화려한 분위기와 함께 대당(大唐)의 성세(盛世)와 기백을 표현했다고 본다. 작품의 기교는 의심의 여지 없이 뛰어난데 글자는 화려하면서도 직설적이라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후대 사람들은 또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불렀는데, 그의 적지 않은 시에는 확실히 아주 많은 불교적인 의미와 왕유의 종교 경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의 수련 층차를 나타낸다.
이 시는 왕유의 종교 성향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련이 있다.
“구중천 궁문 열어 궁전을 활짝 개방하니
만국의 의관 정제한 이들 황상을 배알한다”
이 구절은 시 전체에서 가장 널리 칭송되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구천(九天)이란 종교에서 말하는 구중천(九重天)이고, 창합(閶闔)은 천상의 궁궐 문이다. 굽이굽이 열리는데 그윽하면서 아주 웅장하다. 여기서는 단지 속인 공간인 궁궐 문이 열리는 게 아니라, 다른 공간의 진실한 광경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 세상의 광경은 부동한 층차의 하늘과 대응한다. 다만 왕유 자신은 이 점을 똑똑히 알지 못했을 수 있다. 어떤 이는 당조의 성세(盛世)와 기상을 이 두 구절만큼 제대로 표현한 글은 없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역시 왕유의 근기와 수련 층차가 그만큼 좋다는 뜻인데, 즉 수도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서기 7세기에서 9세기까지 2~300년 전 세계 문명의 최고점은 장안(長安)에 있었고, 대명궁(大明宮)은 이 웅장한 제도(帝都 제국의 수도)의 핵심이었다.
대명궁의 웅장한 규모와 장려(壯麗)한 건축은 당대(唐代) 건축예술의 최고 수준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당조(唐朝)의 번영과 전성을 상징하는데 동방 문명에서 가장 환상적인 기억이었다. 이 역시 천상의 궁궐과 대응한 것으로 비록 대단히 웅장하긴 하지만 천상의 궁궐에 비하면 그래도 거리가 아주 멀다.
당대(唐代)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사람들의 도덕 수준이 전반적으로 아주 높았다. 속인 중에서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이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고, 황제의 도덕 수준이 높아야 다른 나라들이 신복(臣服 신하를 칭하며 복종)할 수 있었다. 또 당대의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창세주께서 직접 황제로 전세(轉世)하셨다는 점이다.
“만국의 의관 정제한 이들 황상을 배알한다”는 단지 사람 속의 장면만이 아니라 다른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만국(萬國)을 흔히 과장법으로 설명하지만 사실은 만국이 아니라 십만(十萬) 백만(百萬)에 그치겠는가? 단지 우리 이 공간에 표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보면 대단히 웅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천상에서 내려온 것으로 자신의 천국 세계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천자를 배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의 명백한 일면은 대법이 이곳에서 널리 전해질 것임을 알았고 그들은 사실 이런 방식을 사용해 창세주 및 대법과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생명의 영원함에 대한 희망이 생겼기 때문에 지극히 공경했다. 이런 종류의 공경은 생명 깊은 곳에서 내원한 것으로 속인식의 표면적인 굴복이 아니다.
지금은 대법이 정식으로 널리 전해지고 있으니, 그때 맺은 성연(聖緣)도 꽃을 피워 열매를 맺었으니 우리 모두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7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