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객(過客)
【정견망】
지금 사람들은 중의에 축유(祝由)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른다. 축유과가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사람들이 기존에 알던 중의학과 거의 관련이 없어 봉건 미신으로 간주되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축유란 약초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사용해도 아주 적게 사용하며 대신 주문이나 부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축(祝)’이란 바로 주문을 말하며, ‘유(由)’란 병의 원인을 가리킨다. 즉 ‘축유’라는 개념은 아주 광범위한데 금법(禁法), 주법(呪法), 축법(祝法), 부법(符法) 등 매우 광범위하며 원대(元代) 태의원(太醫院)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13번째 과로 인정되었다.
중의(中醫)의 정화적인 부분은 현재 계승되지 않고 이미 실전(失傳)되었다. 그것의 진정한 핵심 부분은 사실 수련(修煉)인바, 고대 대의학자들은 모두 수련인이었다. 중의학 이론에서 경전에 해당하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바로 수련을 말한다. 당대(唐代) 명의 손사막(孫思邈)도 자신의 의서에 한 세트 완전한 수련 방법을 남겼는데 연정화기(煉精化氣 정을 연마해 기로 화함) 연기화신(煉氣化神 기를 연마해 신으로 화함) 등이다. 다만 그의 층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업력을 보지 못했고 업력이 생기는 원인 및 보다 높은 이치를 볼 수 없었다. 만약 층차가 좀 더 높아서 인과를 똑똑히 알았다면 그는 아마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수련은 속인보다 높은 것으로 기를 연마하든 공을 연마하든 중의의 층차는 양의를 뛰어넘는다. 양의는 단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변화시킬 뿐이지만 중의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기’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중의는 바로 수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고대에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모두 중의에 귀속시켰다.
농촌 출신의 많은 사람들은 축유술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접촉한 적이 있을 텐데, 동남아시아에는 더 널리 보급되어 있다. 바로 즉 무의(巫醫 병을 치료하는 무당)와 신한(神漢 남자 무당)이다. 일반적으로 노란 종이를 태우고 주문을 외우고 신(神)을 청해 몸에 올라가게 하는 등의 형식으로 병을 치료한다. 소위 ‘귀신을 부리는 것’이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진정한 수련은 자신의 능력에 의지해 하는 것으로 외력에 의지해 완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란 종이를 태워 누구에게 주는 것인가? 바로 귀신에게 준다. 보통 그런 귀신은 층차가 다 아주 낮은데 그들은 다른 공간에 있어서 인류 공간처럼 이렇게 미혹되지 않기에 이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고 약간의 인과를 볼 수 있다. 때문에 무당이나 박수들이 그들을 섬김으로써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들에게 돈을 주면 그들은 곧 일을 하는데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노란 종이는 인간 세상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태우고 나면 이 공간의 물질이 사라지고 다른 공간의 물질이 곧 석방되어 나온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껍질이고 껍질이 없으면 그것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에 대해 말하자면 인류 공간의 물질은 아주 진귀한 것이지만 이 가장 표면의 껍질이 존재하면 그들이 얻을 수 없고 이용할 방법이 없다.
부처님께 절하고 향을 피우는 것도 포함하는데, 향을 피운 후 그것을 고층 공간으로 가져가면 고급 생명이 이를 이용해 무언가를 연화(演化)해낼 수 있다. 인류 공간의 물질이 이곳에서 가치가 없다고만 보지 말아야 하는데, 그 공간까지 가져가기란 대단히 어렵다. 종이를 태우고 향을 피울 때는 위패나 마음속에 묵념하는 대상에 향을 피워야 하며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곳에 도달하게 할 수 없다.
이쪽 물건을 태우면서 마음속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을 생각하면 나머지는 저쪽의 귀신에게 달렸다. 저쪽에서 봤다면, 그 역시 당신에게 공짜로 물건을 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귀신은 일부 능력 범위 안에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도와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다른 공간에서 병이 있는 곳에 대해 일부 치료를 해줄 수 있다. 사람이 열이 나면, 다른 공간에서는 신체에 불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는 그곳에서 직접 불을 끌 수 있다. 또 사람이 아프고 가려워하면 다른 공간에서 일부 벌레들이 물어뜯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가 그것들을 청리해줄 수 있다. 그들의 능력이 큰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 공간에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고, 손을 들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심층(深層)의 진상은 그도 볼 수 없고 그의 층차는 사람보다 오히려 낮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의 한 층차에서의 일에 불과하다. 한 차례 처리를 거친 후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거나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업력(業力)을 움직일 순 없는데 그것은 보다 깊은 층차의 것이다. 수련인이 일단 업력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삼계를 벗어난 것으로 삼계 내의 생명은 업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볼 수 없다. 때문에 업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유과란 이런 병 치료는 단지 겉(標)만 치료할 뿐 근본(本)은 치료하지 못한다. 인류의 모든 병 치료 방법이 다 마찬가지인데 사람의 병은 종종 근치(根治)가 어렵고 재발이 아주 흔하다. 즉 진정으로 잘 치료되지 않았고 단지 뒤로 밀어놓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속인 사회는 표면만 보지 않는가? 표면이 바뀌면 그는 곧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신(神)이 몸에 올라붙기를 청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신은 정말 고층차의 그런 신이 아니다. 흔히 저령(低靈)이 많은데 사람들은 감히 귀신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그들도 신이라고 존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청해와 사람 몸에 올라가 사람의 몸을 이용해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축유술의 병 치료 방법은 일부 수법(手法 손 동작)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종종 기공(氣功) 치료와 혼동된다. 필자도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얼떨결에 기공사가 되어 남의 병을 치료해 준 적이 있는데,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면 어느 정도 업을 없앨 수 있다. 어떻게 업을 없앨 수 있는가? 내가 발견한 것은 내가 치료했던 병이 모두 내 몸에 올라붙었다. 즉 환자는 업력이 없어졌지만 내가 그를 대신해서 감당한 것이다. 그가 어떻게 힘들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힘들다.
다행히 나는 나중에 대법을 수련했기에 그런 업력을 내가 감당할 수 있었고 다 공덕(功德)으로 전화(轉化)시킬 수 있었지만, 이렇게 하려면 아주 큰 기연(機緣)과 감당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업력이 크면 오성(悟性)이 차해져서 감당하지 못하면 수련하지 못한다. 때문에 수련인은 절대 기공의 방식으로 남의 병을 치료해줘서는 안 된다. 그렇게 큰 업력이 눌리면 사람은 감당할 수 없으며 근기마저 훼멸된다. 업력은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으며 반드시 누군가 대신 감당해야만 사라진다. 진정한 수련에서는 사부가 제자가 수련할 수 있도록 업력을 줄여주지만, 그 업력은 모두 사부가 감당하는 것이다. 사부가 제자를 이끌기란 상상하는 것처럼 쉽지 않으며 일반인은 아예 이끌 수 없는데 감당해야 할 업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이치를 보았기에 사람의 모든 고난은 다 업력으로 인한 것이라 병 치료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대신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준다. 업력이란 이런 물질은 오직 삼계 내에만 존재한다. 즉 불가는 사람더러 수련하게 해서 이 고해(苦海)에서 뛰쳐나가 이 업력이 형성된 근원을 완전히 해결하라는 것이다. 흔히들 중의는 근본을 치료한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단지 양의에 비교해서 말한 것일 뿐 중의 역시 근본을 치료할 수는 없다. 진정하게 근본을 치료하는 것은 바로 사람에게 수련하게 하는 것으로 이것을 가리켜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普渡衆生]고 한다.
인간 세상에서 사람의 직업은 직업일 뿐이며, 그것은 바로 이 층 공간의 존재이다. 인식이 높다고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면 안 되는데 인류 사회에는 바로 의사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수련인은 병이 없는 것으로 나는 20년 이상 정법(正法)을 수련하면서 한 알의 약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수련이야말로 최고의 건강법임을 설명한다.
현재 식품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도처에 가짜가 판을 치고 오염이 널려 있어, 무엇을 먹어도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이 역시 집착이다. 큰 난이 닥치면 피할 곳이 없으니 근심할 필요가 없다. 설령 특별히 공급된 음식을 먹어도 소용이 없는데 분자나 원자 수준의 오염을 사람은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도구는 다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만약 분자마저 오염되었다면 분자로 만든 필터가 분자를 걸러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유전자 변형 식품을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유전자 변형 식품은 동물 사료에 많이 사용된다. 그럼 당신은 동물의 고기를 아예 먹지 않을 수 있는가?
인류의 문제는 아주 많지만 이런 문제들은 오직 수련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수련에서 닦는 것은 다른 공간의 신체라서 이쪽의 오염이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람의 본원은 모두 대단히 높아서 삼계 내의 오염은 전혀 그를 건드릴 수 없다. 그는 마치 티끌 하나 없는 아름다운 옥과 같은데 먼지가 묻었다고 해서 그 먼지가 그는 아니다. 수련은 바로 이런 먼지를 청리하고 당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