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曉明)
【정견망】
한번은, 몸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난 어느 동수를 방문하러 갔는데, 그녀의 남편 역시 동수다. 또 내가 잘 아는 다른 두 동수도 함께 그녀를 방문했다. 우리는 잠시 교류하고 헤어졌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동시에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시커멓게 나를 향해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두통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나는 곧바로 발정념을 하는 동시에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저 네 동수에 대한 정이 너무 무거운 것이 떠올랐는데 우리는 10년 이상 교제해왔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공간장(空間場) 안의 사악이 점차 물러나며 갈수록 더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내가 또 잠시 발정념을 하자 두통은 곧 완전히 사라졌다.
이 일로 나는 동수 사이의 인정(人情)에 주의하게 되었다. 다년간 수련하고 협력하면서 동수들 사이에 빈번하게 왕래하다보니 아주 쉽게 인정을 증가시켜 대법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사악이 빈틈을 파고들게 했다. 정이란 삼계 내의 물질로 우주의 쓰레기이며,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무거운 물질을 짊어지는 것이다. 정이 있으면 곧 서로 아래로 끌어내려 수련의 어려움과 마난(魔難)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정에는 또 따스한 마음의 일면이 있고 사람에게 일정한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주 유용하다고 느끼게 만드는데다, 쉽사리 선량(善良)과 혼동되기 때문에 미혹성이 대단히 크다.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주의해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나는 자신의 경험과 주변 동수들의 표현을 돌아보면서 동수들 사이에 몇 가지 인정 표현이 비교적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1. 은정(恩情)-감사하는 정
중공(中共)의 박해로 수많은 동수들이 곤경에 빠졌는데, 어떤 동수들은 아낌없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마난에 처한 동수가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 이것은 종종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동수가 사악의 박해를 받아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났을 때 근처 동수가 사심(私心) 없이 도와주는 등은 모두 사람 마음을 감격하게 한다. 어떤 동수는 자기 가족보다 더 친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은혜를 입고도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며 작은 은혜를 입었어도 크게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은혜와 의리를 중시하는 일면이 있다. 때문에, 이런 ‘큰 은혜와 큰 덕’에 대해 어떤 동수들은 늘 생각하면서 잊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는데 언제든 보답하려 하며 은혜로 인해 정이 생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은정(恩情)이다.
한 동수는 위난(危難)에 처해 타지에 와서 다른 동수 집에 잠시 머물렀다. 그 동수는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여러 해 동안 이 동수는 줄곧 이렇게 구해준 은혜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아주 무거운 은정을 지니고 일을 하면서도 늘 보답하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남의 집 아이를 자기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했다.
이런 도움에는 아마 역사적인 약속이 있을 수 있는데 또는 어느 한 세(世)의 인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법 중에서 일체는 다 사존의 배치임을 알기에 누구도 하늘의 공을 탐할 수는 없다. 사실 이것 역시 대법의 원용(圓容)한 체현이며 정법 속에서 정체적인 협력인데, 이를 단순히 동수 개인의 행위로 간주한다면 신사신법(信師信法)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기왕에 인정에 기초하지 않아야 한다면 또 인정을 목적으로 하지도 말아야 하며, 더욱이 인정으로 보답할 순 없는데 대가를 감당한 동수가 자신의 위덕(威德)을 쌓은 것이다.
2. 숭배하고 감격하는 정
대륙에서는 노년 동수들이나 학력이 낮은 동수들 또는 조건이 여의치 않은 동수들 및 능력이 있고 조건은 되지만 오히려 자료를 만들지 못하는 동수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약 그들에게 대법 자료와 기술을 제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데 아무리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이런 것들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가 고장 나면 수리 부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속인을 부를 순 없는데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동수 중에서 기술이 있고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고 어떤 지역에서는 그야말로 희귀하다. 때문에 일부 동수들은 자신에게 얻기 힘든 소중한 지원을 해주는 이런 동수에 대해 숭배하는 정과 감격의 정이 생겨났다. 자료점 동수와 기술 동수에 대한 표현은 대부분 숭배, 아첨, 의지, 감격, 선물 증정 등이다.
우리는 동수의 노고와 희생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이는 정법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대법 자원을 바르게 사용하는데 마땅한 작용을 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그 동수들이 바라는 것이지, 그 개인적인 감당에 대한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정법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휘하고 있으며, 모두 자신의 서약을 이행하면서 자신의 위덕을 수립하고 있다.
3. 환난(患難)의 정 또는 우정
일부 작은 집단의 동수들은 수년간 어려운 상황에서 단체 법 공부, 대법 실증, 동수를 구원하고 진상을 알리는 등의 일을 견지하면서 줄곧 함께 해왔다. 온갖 시련을 겪다보니 서로 신뢰하고, 서로 돕고, 서로 협력하는데 점차 친숙해졌고 아주 깊은 감정을 형성했다.
또 일부 동수들은 과거 사악의 검은 소굴 속에서 함께 박해 당했고, 함께 박해에 반대했으며, 함께 고통을 겪었고, 서로 격려하고 구조하면서 고락을 함께하다보니, 마치 친형제처럼 되었다. 비록 그 환경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가족처럼 지내는데 이런 환난의 정 역시 실제로 존재한다.
어떤 동수는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동기간처럼 어울리는데 또 울타리 안과 밖을 구별한다. 세 가지 일과 관계가 있든 없든 모두 그 안에서 뒤섞는데 모두들 좋다고 여기면서 즐거워한다. 그 누구도 인정이 만들어낸 따스한 집을 깨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냉혹한 현실을 차단할 수 있고, 또 정체를 형성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동수들은 일정한 시간마다 작은 모임을 갖는데,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말로는 교류라고 하지만 수다를 떨다보면 반나절이다. 사실 특별히 상의하거나 해결할 중요한 일도 없고, 주로 감정을 지키며 동수들 사이에 따뜻하고 화기애애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것이다.
4. 연민의 정
대법제자는 진실하고 선량하며 동정심이 많아서 다른 동수의 생활이 어렵거나 또는 사악의 박해를 받는 것을 보면 연민을 느끼기 쉽다.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것을 보기 힘들어 하는데 그저 가련하다고 동정하며 선물을 주려는 이것 역시 일종의 정으로 바로 연민의 정이다.
한 여자 동수는 이혼하고 사회에서 할 일이 없자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평소 동수들에게 일부 기술적인 지원을 해줬는데 모두들 그녀를 불쌍히 여겼고 또 그녀가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자 그녀에게 돈과 각종 물자를 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동수에게 탐심(貪心), 이익심이 생겼고 심지어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그녀는 줄곧 핑계를 대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점차 동수들 사이에서 그녀에 대해 많은 비난의 말이 나왔고 결국 서로 보지 않게 되었으며 심성도 떨어져 내려갔다.
사실 마난(魔難)이란 모두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또한 모두 같은 이치인 것도 아니다. 어떤 마난에는 특정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사악의 박해를 배제하면, 마난은 한편으로는 업을 없애는 것이자 다른 한편 심성을 제고하고 경계를 승화하는 사다리가 된다. 이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일부 응급 상황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 외에는 단순하게 선물하거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심성 제고 및 법리 인식에서 착수하는것이 좋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각자들이 보건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든지 그는 겪는 고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다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생각이다.”[1]
사부님께서는 또 “착한 일만 한다 해도 역시 유위”[2]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때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꼭 좋은 일이 아니다.
5. 동수정
인간에게는 가족 정, 우정, 애정이 있고, 대법제자들 사이에는 또 동수정(同修情)이 하나 생겨나왔는데, 오직 동수이기만 하면 교집합이 있든 없든 곧 정이 있다. 어떤 동수 가족은 자기 집의 대법제자는 “누구를 만나도 다 가족이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여기서 누구란 속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수가 알든 모르든, 그 어떤 대법제자를 만나도 아주 친밀하다는 뜻이다.
어떤 동수는 대법제자는 다 한 가족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 속에는 ‘정’의 의미가 짙게 배어 있고 가족정의 성분이 섞여 있다. 아마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 속에 있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 어떤 사물이든 다 남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마치 이렇게 표현하면 더 생생하고 적절하며 우리의 친밀함을 더 잘 드러내는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속인화 될 우려가 있다.
가족관계라면 많은 경계가 모호해진다. 한 가족이면 안팎을 가리지 않는데, 서로 요구하거나 서로 감당해도 흔히 갚을 필요가 없고 또 절제가 없고 무리해도 집에서는 다 당연하게 여기며 또 당당하게 생각한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또 독립성이 부족하기에 정으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법 원칙은 우리 대법제자들 사이가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대법제자 정체(整體)는 이미 속인 가족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다. 겉으로 보면 간단한 한 마디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아주 많은 내함(內涵)과 정보를 지니고 있어 사람에 대해서도 많든 적든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동수는 누가 곤란한 것을 보기만 하면 곧 달려가서 도와준다. 오늘은 이 집, 모레는 저 집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스스로 즐거워하는데 자신의 법 공부도 보장할 수 없고 진상을 알리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정당하고 당연히 할 일이라고 여기는데 “동수의 일이 바로 자신의 일”이라고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허둥대면서 동수정의 표현이 아주 무거운 것 같다.
어떤 동수들은 동수정 때문에 동수의 속인 이익이 손상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과 표준으로 상대방을 강요한다. 남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모두 속인의 사유와 수단이다. 하지만 법에서 가늠하지 않고, 동수에 대해 오도(誤導) 작용을 일으킴에도 자신은 모르는데, 동수에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또 이지적이지 못하다.
정을 많이 말하면 이치를 말하는 게 줄어들고, 감성이 너무 강하면 사람의 이성을 억제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지만, 하는 일은 오히려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심지어 대법을 심각하게 파괴하며 대법제자들에게 손해를 입힌다. 하지만 ‘동수’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에, 동수정이 중한 사람들은 법으로 사람이나 문제를 가늠하지 않기 쉽고 옳고 그름, 정(正)과 사(邪)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동수이고 내 사람”이란 구실로 맹신하며 맹목적으로 보호해 사념(邪念)과 악행(惡行)을 조장하는데 결과적으로 기로에 잘못 들어간 것이다.
6. 인정에도 장단점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1]
동수 사이에도 정 때문에 사이가 좋은 이도 있고 사이가 나쁜 이도 있으며, 얕잡아 보거나, 못마땅하거나, 좋아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으며,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화를 내거나, 불만을 품거나, 멋대로 하거나, 비난하고, 혐오하고, 공격하고, 쟁투하며, 시기하고, 비교하고, 패거리를 만드는 등이 있다. 정 때문에 갈라지고 정 때문에 악(惡)이 생겨나며 정 때문에 미워하는 등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대법제자 사이에 모순과 간격을 만들고 정체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수많은 좋지 않은 상황들이 나타나게 한다.
인정(人情) 때문에 어떤 동수들은 동수라면 당연히 자신에 대해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각종 부면(負面)적인 정서가 올라오는데 만약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사악에 의해 이런 부면 정서가 강화되고 확대되어 동수 사이에 모순을 조성한다. 동수의 일부 방면이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을 때도 부면적인 정서가 나온다. 사실 남이 어떻게 하든 그와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모두 인정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일종의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7. 여러 종류의 인정이 뒤섞인 것
많은 동수들이 서로를 아주 잘 아는데 어떤 부분은 자신의 관념과 필요에 부합하고 또 어떤 부분은 자신의 관념과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동시에 다양한 감정이 표현되거나 전환되기도 한다.
어느 법 공부 소조는 동수들이 같이 법을 공부하고 협력해서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중 어떤 동수가 자료를 만들었지만 몇 년 동안 소모품을 사거나 기계를 수리하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도맡아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나이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서로를 지지하고, 협력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고, 불평하지 않고, 모두 즐거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녀가 다른 동수에게 기계를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몇 가지 표면적인 이유 때문에 모두들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자 그녀는 기어이 수리를 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고 큰 모순이 생겼다.
그동안 줄곧 늘 그녀를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모두들 자신을 지지하고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물며 다년간 이런 관계였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동수정, 의존, 몰이해, 평형을 이루지 못함, 화내기, 멋대로 굴기, 감정 상함, 원한(怨恨) 등이 전부 폭로되어 나왔다. 다른 동수들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에 가로막혀 원망하고, 비난하고, 싫어하는 등의 정서가 나왔다.
결국, 기계는 비록 다른 경로를 통해 수리되었지만, 그 동수는 이후 소조에 가서 법을 공부하지 않게 되었고, 얼마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겨우 이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비록 사악이 배후에서 음모를 꾸미고 박해하긴 했지만, 동수 사이의 인정이야말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
사람을 미혹시키는 정의 베일을 벗겨내면 사실 우리는 그 실체를 이미 똑똑히 간파했는데, 정이란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이며, 더럽고, 협애하고, 차별적이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위선적인 얼굴을 갖고 있지만 저속하고, 취약하며 쉽게 변하며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정(情)이란 삼계 내의 신(神)으로 생명과 의지가 있는 것이다. 오직 작은 기회만 있어도 그것은 자동적으로 작동해 일체 가능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고 오히려 사람을 통제해 이지와 신성(神性)을 잃게 만든다. 실질적으로 사성(邪性)의 것이다.
사람이 정을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없어선 안 되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사람이 연약하고 공허하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정으로 지탱하고 충실 시킬 필요가 있으며 정을 통해 이익과 좋은 점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신과 물질을 만족시키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제자는 세간(世間)을 벗어나고 세속 관념을 초월하기에 동수를 정으로 대함은 속인의 이치로 떨어지는 것이다. 인정을 제거하지 않으면 곧 누락이 있는 것으로 사악은 그 틈을 파고들어 모순과 박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인정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1]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인정을 모두 제거하고 자비로 대하며 보다 높은 경계를 닦아 내는 것만이 대법제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의 환경이 더욱 순정하고 더욱 용합될 수 있으며 대법제자 정체가 보다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홍음》<무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8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