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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깨달음: 짜증의 원인은 득실을 따지는 것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수시로 짜증이 나는데 최근 짜증의 배후에는 득실(得失)을 따지는 것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괴로웠으며 손해를 보면 속으로 짜증이 났다. 사실 밑바탕에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한 가지 마음이 있음을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아이가 어릴 때,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종종 짜증이 났다. 단지 아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내 여유 시간을 차지해 자신의 법 공부와 연공에 영향을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가치가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속으로 우울해하고 짜증을 냈으며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이다.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도 그저 아이가 순순히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길 바랄 뿐 진심으로 아이와 놀아주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배후에는 여전히 득실심(得失心 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있었다.

원고 번역에 참여할 때도 번역이 순조로우면 즐거웠지만 교정이며 수정할 작업이 많이 필요할 때는 짜증이 났다. 한편의 문장을 번역하는 데 시간을 적게 들일수록 수지가 맞는다고 여겼고 반대로 한편을 번역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면 마치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역시 아주 강한 득실심이다. 배후에는 또 당(黨) 문화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모두 마찬가지로 한편의 문장을 번역하는 것이라 여겼고 결과가 같으면 성적도 같은데 들인 시간은 같지 않다면서 주판을 두들긴 것이다. 하지만 사실 어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구체적인 상황은 아주 다를 수 있다.

청소할 때도, 나는 일을 시원시원하게 빨리 끝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고,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을 만나면 짜증이 났다. 때로는 짜증이 나서 쨍그랑 소리가 나도록 물건을 부딪치기도 했다. 배후에는 여전히 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있었는데, 시간이 더 걸릴수록 손해를 본다고 여겼다.

동수들과의 교류도 늘 동수의 교류가 자신에게 계발을 주고 수확이 있다고 느낄 때면 기뻐했지만, 동수의 교류가 내 구미에 맞지 않고, 자신이 아무런 수확도 없으면 시간 낭비라고 여겨 기뻐하지 않았고 짜증을 내거나 반감을 품었다. 이런 교류는 자신이 쓴 시간에 대한 보답이 없으니 손해를 봤다고 여긴 것이다.

짜증은 단지 다른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할 때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단번에 짜증이 났는데 시간을 낭비했다고 여겼다. 사실, 이것은 더욱 정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 무거운 표현이다. 자신의 잘못이든 남의 잘못이든 모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 오직 누가 나더러 손해를 끼치기만 하면 하려고 하지 않았고, 곧 감정이 올라왔는데, 이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심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들 실수 속에서 도(道)를 깨닫고, 넘어졌다가 다시 기어 일어나는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겪게 마련이다. 자신이 실수만 해도 짜증이 나는 이것이 바로 매우 무거운 득실심(得失心),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 정의 체현이며, 배후에는 오직 얻으려고만 하고 잃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음이 있다. 정확한 방법은 마땅히 실수 속에서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교훈을 총결하는 것이며 아울러 또 자신이 단번에 좋아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개선에 필요한 시간을 주는 것이다.

어떤 동수들은 아이가 있으면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여겨 결혼 후 아이를 갖지 않고 수련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무슨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관찰해보니, 이런 동수들 중 일부는 몹시 득실을 따졌다. 그들은 또 이런 득실심을 지니고 항목에 들어가는데, 어느 부분에서 시간이 더 걸리기라도 하면, 협력하는데 짜증내고, 원망하며, 자신의 다른 일에 영향을 준다고 여긴다. 반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 동수들은 흔히 인내심이 더 강하고 항목에서 협력하면서 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이는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손해 볼까 두려워하지 않는 좋은 심성(心性)으로 체현된다.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것은 수련이란 마음을 닦는 것으로 심성의 높고 낮음을 보는 것이지 시간이나 ‘성과’를 쌓는 것이 아니니 득실을 따지는 마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최근 진상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의 대사 중에 내 마음을 정확하게 찌른 한 마디가 있었다. 백봉(白鳳)이 조해봉(趙海峰)에게 충고하면서 “네가 늘 계산적이고 늘 얻으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라고 했다.

나는 이 대사를 들으면서 “이건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겼다. 나는 뜻밖에도 무의식중에 득실을 따지는 마음을 전부 수련 속으로 옮겨왔던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단지 사람 속의 이익을 계산하던 것에서 수련중의 이익과 득실을 따지는 것으로 변했을 뿐이다. 수련 중의 ‘이익’은 아주 많은데 자신의 시간이며 희생이며 수확 등을 저울질 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늘 얻으려 하는” 이런 마음은 사실 아주 불선(不善)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이익은 흔히 모두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뭔가를 얻으려 한다면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이익을 차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잃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와 함께 놀아줄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 많은 시간의 이익을 얻겠지만, 사실 이는 아이의 이익을 차지한 것이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아이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한다.

또 내가 청소할 때 급히 서두르며 시간을 많이 쓰지 않는다면 아마 관련된 사람들이 손실을 보거나 환경이 깨끗하게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또 만약 서두르다 물건을 부딪쳐 망가뜨린다면, 그럼 또 다른 생명을 해칠 수 있다.

주변의 어떤 동수는 화를 잘 내고 쉽게 짜증을 내는데, 늘 자기 성격을 고치길 바란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근본적인 원인은 득실심과 관련이 있다. 아마 수련 방면의 득실심과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짜증이 나는지 마땅히 이 방면에서 한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최근의 작은 체험으로 자신의 득실심을 폭로하는 동시에 동수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