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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구도를 교란하는” 사상과 언행을 똑똑히 인식하자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신경문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인류의 일원(一員)으로서 특히 대법제자의 일원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부를 기만(欺)하는 것! 또 하나는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것! 왜냐하면 이것은 생명이 남거나 제거되는 근본적인 경계이기 때문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안 된다.”

나는 반성을 통해 과거 내게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많은 사유와 언행이 있었음을 인식했다. 대부분 무의식중에 교란 작용을 일으켰다. 이에 아래와 같이 폭로하니, 동수들이 이를 경계로 삼길 바란다.

질투심으로 인한 교란

과거 어느 항목에서 내가 한 항목의 일이 많고 또 빨라서 동수들의 칭찬을 받았다. 당시 나는 자신의 항목을 보면 자랑스러웠고, 다른 사람의 항목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질투심인데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고, 남들은 모두 좋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항목이 여전히 사람을 구할 힘이 있겠는가? 이는 사상(思想)에서 중생구도를 교란한 것과 같지 않은가? 비록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진 않았지만 사상 역시 물질이라 다른 공간에서 어떤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비슷한 상황들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삼퇴(三退)를 권한 수량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압력을 느끼며, 남의 아이가 우리 아이보다 더 정진한다는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 어쨌든, 매사에 남이 앞서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동수의 성적에 늘 일종 대립하는 심태다.

이러한 심태는 사실 사상 속에서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것이다. 남들이 삼퇴를 많이 권고하는 것 역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남의 아이의 표현이 좋은 것 역시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과거 사상에 대해 몹시 부끄럽고 또 참회하는데 질투심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내가 알게 된 것은 마음속으로 남이 일을 많이 하고 일을 잘하기를 바라며, 자신보다 더 잘하기를 바라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이 중생구도에 순응하고 중생구도를 교란하지 않는 것이다.

쟁투심으로 인한 교란

나는 전에 한 항목에서 협조인의 일부 방법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반복적으로 소통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이 때문에 심각한 쟁투심과 불만이 생겼고, 같은 견해를 가진 동수들과 개인적으로 협조인에게 어떻게 당 문화가 있고, 어떻게 의견을 듣지 않는지 등등을 불평했다.

나중에 이런 심태와 행동 역시 항목을 방해하고 협조인의 정력을 내부 모순 속에서 소모 시켜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임을 깨달았다. 당시 가족도 내가 이 항목에 참여하게 된 애초 목적은 힘을 좀 보태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교란한 것과 같다.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 11》 〈대법제자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일부 수련생들은 서로 협력함이 매우 부족하다. 그냥 조금 부족한 게 아니라 심지어 일을 무너뜨린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어떤 마음이었든지 대법제자의 항목이고 혹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당신이 일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일으켰다면 당신은 곧 마의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당신이 ‘나도 대법제자이다, 나 역시 아주 많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구세력은 당신이 한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또 《각지설법 13》〈2015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박해가 매우 엄중한데 많은 사람이 아직 대법의 항목 중에서 서로 간에 협조를 잘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일을 당신들의 쟁론 중에서 망쳐버렸으며, 많은 일이 모두 당신들의 아주 강한 그런 이기려고 애쓰는 마음이 사악의 인소(因素)에 이용당하여 망쳐졌다.”

나는 교란하지 않고, 망치지 않고,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하는 정확한 심태는 바로 협력이며 논쟁하거나 자신을 강조하지 않아야 하며 설사 자신의 이치가 옳다고 여기더라도 역시 협조인에게 복종해야 하며 쟁투하거나 옳고 그름을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쟁투심의 배후는 여전히 복종하거나 협조하지 않고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사실 자신의 감수와 정서를 중시하고 항목과 사람 구함을 경시한 것이다. 큰 국면을 중시하지 않고, 무의식중에 교란 작용을 하면서도 자신은 모른다.

남을 무시해서 생긴 교란

내게는 남을 무시하는 마음도 심각한데, 지금 이런 마음의 해악이 아주 큰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나는 줄곧 어떤 동수는 사람 마음이 무겁고, 어떤 동수는 쟁투하길 좋아하고, 어떤 동수는 허영심이 있고, 어떤 동수는 너무 도도하다는 등등을 생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동수들을 저촉했는데 만약 그들이 일을 한 성과가 있으면, 나는 곧 일하는 것은 수련을 대신할 수 없으니 별것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마난(魔難)을 만나면 나는 이는 바로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 후과(後果)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진작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며 그런 후 냉담하게 방관하거나 심지어 재앙을 즐기는 심태까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그것들이 이러한 짓을 한 것은 바로 그것들이 개인수련을 법을 실증하는 것보다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전의 정법에서 대법제자들의 중생구도가 시급한 이때에 그것들이 이런 짓을 하는데, 그것은 파괴가 아닌가? 한 대법제자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도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신의 이런 마음은 곧 구세력이 배치한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무시하는 동수들에 대해 나는 그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볼지언정 그들을 인정하거나 그들의 성적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일찍이 한 동수와 교류하면서, 서로 일부 동수들이 심각한 마난을 당한 일을 말했다. 누구는 과거에 어떻게 사람 마음이 무거워서 누구를 밀어버렸고, 누구를 억압했는데 나중에 병업의 상황이 어떻게 참혹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당시 모두 이것이 사람 마음이 심한 후과이자 보응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그들더러 애초 그렇게 많은 동수들에게 상처를 주라고 했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당초 이런 사유는 완전히 구세력과 궤를 같이하고 사부님의 자비와는 정반대되는 것임을 발견했다. 구세력은 사람 마음을 보기만 하면 곧 난(難)을 설치해 닦게 하는데 즉 당신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절대화되고 극단적인 사유로 사람 마음이 있는 이들을 다 도태시키지 못해 한스러워하고 중생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구세력은 악독하며 수법도 잔인한데 선해(善解)하지 않고 자비하지 못하며 수련인이 그들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에 대해 불선(不善)을 그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유에서 뛰쳐나와 동수에 대해 자비로워야 하며 사람 마음과 관념을 갖고 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정서와 취향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상에서 동수를 교란하지 않을 수 있고, 동수가 하는 중생 구도의 일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심(私心)으로 인한 교란

나는 또 일체 집착심은 모두 중생 구도를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뿌리는 사심(私心)이다. 이 사심은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데 사심은 본질적으로 자기에게만 관심을 갖고 중생을 돌보지 않는다. 중생을 구도하려면 그럼 사심을 제거해 자비심과 선심(善心)이 나오게 해야 하는데 최종적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계에 도달해야 한다.

속인이 진상을 받아 들이게 하기 위해 나는 의도적으로 선(善)을 표현하고 높은 자태를 표현하려 했지만 흔히 오래가진 못했다. 모두 임시적이고 목적심을 지닌 것이라, 장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나의 진실한 심성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속인들과 어울릴 때 사심 때문에 각종 집착심, 예를 들면 쟁투하거나, 남을 무시하는 등등으로 곧 사람과 간격이 생기게 한다. 이런 간격은 사실 또 상대방이 진정으로 대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교란한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집착심은 사실 작은 문제가 아니며 중생 구도의 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면 심태가 자비롭고 선량한 동수들은 그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거나 또는 대법과 진상을 몹시 인정하지만, 사람 마음이 깊은 동수들은 여전히 오랫동안 가정 모순에 빠져있어 자연히 주위 사람들이 대법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는 수련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늘 선념(善念)을 가져야 함을 깨달았다. 최근, 내가 목적심을 품지 않고 남을 선하게 대했을 때,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나 또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마주해, 아주 사소한 일에 직면해, 나는 조급함과 귀찮음, 득실을 따지는 마음 등을 극복하고, 최대한의 선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비록 이 공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진심으로 선(善)을 향한 시작이고, 과거처럼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선을 표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심태의 전변이 내 공간장의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맺음말

법에서 이해하기에 구세력은 바로 사심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제자를 질투하고, 제자들에게 난(難)을 설치하고, 박해하면서도 여전히 돕고 있다고 여긴다. 나는 또 구세력의 죄가 아주 크다고 보는데 주요한 한 가지는 그것의 배치가 중생구도를 교란해 무수한 중생이 구도 받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구세력이 설치한 함정 속에 사유가 빠지게 해선 안 된다. 이 함정에서 뛰쳐나오려면 대법으로 자신의 사유를 바로잡아야 한다. 사람 마음과 염두가 떠오를 때면, 만약 이런 염두를 따라가면 무의식중에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집착,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관념은 모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약간 나누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