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청대 의사들의 기사회생술

안단(安單)

【정견망】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은 현대 서양 의학이 환자가 심장 박동을 멈춘 후 속수무책이라고 느낄 때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가족이 아무리 애원해도 능력에 한계가 있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양의가 더이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려 시도하기란 실로 어렵다.

그러나 고대 중의(中醫)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심장 박동이 멈추고 숨이 끊어진다고 해서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다. 모두 ‘생사에는 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기사회생술도 있고, 회춘의 묘수도 있다. 마땅히 죽지 말아야 할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의원을 만나는 것 역시 이미 암암리에 결정된 배치일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청대(淸代) 명의는 단지 잠시 죽은 사람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이런 신묘한 술법은 양의가 수술기구와 의료장비를 총동원한다 해도 장악할 수 없는 것이다.

1. 난산으로 죽은 부인을 침 하나로 살린 웅경홀

강서 안의현(安義縣)에 웅경홀(熊慶笏 자는 숙릉叔陵)이란 의사가 있었다. 그는 벼슬아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웅계모(熊啟謨)는 건륭(乾隆) 25년 진사가 되었고 그 후 다시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되었다. 웅경홀은 젊었을 때 현(縣)의 수재였으나 현에서 몇 년을 공부한 후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뜻을 세웠다. 그래서 과거를 포기하고 의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성이 총명하고 이해력이 매우 높아서 오래지 않아 뛰어난 의술을 터득하였다. 그는 사람을 진찰할 때 오장육부에 잠복해 있는 병소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으며, 병을 고치는데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숨이 끊어지고 질식하거나 기절한 환자를 만나도 신속하게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죽은 지 반나절이나 된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가 보고는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탕약 한 그릇을 끓여 그 여인의 목구멍으로 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깨어났다.

또 한 부인이 난산으로 기절하여 쓰러져 있었는데 지나가다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았다. 그 산모의 가족에게 “걱정하지 마시오, 아직 구할 수 있소. 뱃속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을 잡고 있어서 나올 수 없소.”라고 말하고 즉시 침을 놓자, 잠시 후 아이가 나왔고 산모도 깨어났다.

그때 어떤 김(金)씨 성을 가진 순무(巡撫)가 지병을 앓아 많은 의원을 찾았지만 낫지 않았다. 그는 웅경홀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청했다. 나중에 웅경홀이 그에게 탕약을 며칠 먹여 오랜 고질병을 치료해 주었다. 이렇게 뛰어난 의술에 순무는 감탄을 금치 못했고, 웅경홀을 태의원(太醫院 황실 의원)에 진출하도록 추천하려 했지만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여러 해 동안 웅경홀은 세간에서 의원 일을 하면서 의서를 정리했다. 그는 자신의 진료 기록 일부와 진료 경험을 《편작맥서扁鵲脈書》와 《난경집주難經輯注》에 기록했는데 지금까지 줄곧 전해지고 있다.

2. 구리거울로 세 살 아이를 살린 유도경

가경(嘉慶 1796~1820) 연간 같은 강서 안의현에 또 유도경(劉道景, 자는 앙산仰山, 호는 심재心齋)이라는 의학을 공부하는 수재가 나왔다. 그는 현에서 공부할 때 자신이 일반 백성들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껴 과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백성을 구제하려는 마음으로 도처를 찾아 다니며 스승을 모시고 의술을 배웠다. 곧 한 유명한 스승에게 들어갔다. 수년간의 연구와 축적 끝에 그는 원근에서 유명한 소아과 의원이 되었고, 명성을 듣고 그를 찾고 약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웃 현에 세 살배기 아이가 있었는데 갑자기 중병에 걸려 곧 죽을 것 같았다. 그의 가족이 서둘러 유도경을 모셔 왔다. 그런데 그가 들어오자마자 그 가족이 아이의 시신을 수습하고 입관하는 것을 보았다. 유도경이 다가가서 관 안을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아이를 빨리 꺼내시오, 아직 구할 수 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해했고 아이의 부모는 눈물을 훔치며 반신반의하며 그에게 죽은 사람을 살릴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유도경이 대답했다.

“이는 열이 막힌 증상이 극에 달한 것으로 아직 체내에 정기가 끊이지 않고 남아 있으니 방법이 적당하면 그래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부부에게 구리거울을 구해오라고 하여 아이의 배꼽을 덮게 했다. 잠시 후 다시 꺼냈다. 손에 쥐자 구리 거울이 이미 뜨거워져 있었다. 그것이 식을 때를 기다려 유도경은 다시 아이의 배꼽에 덮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한 후 아이의 숨이 돌아왔다. 열 몇 번을 더 하자 아이는 앙앙 울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탕약을 처방해주었다. 아이가 며칠을 복용한 후 병이 완전히 나았다.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유도경이 이렇게 기사회생시킨 일이 많아 모두들 그를 ‘유신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가 쓴 《유과정화(幼科精華)》는 줄곧 후세에 전해졌고 그의 자손들이 의업을 계승했다.

3. 뜸으로 죽은 사람을 살린 왕작집

왕작집(王作楫)은 자가 정파(定波), 호는 고우(古愚)로 강서 의령주(義寧州) 봉향(奉鄕)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소질이 있어 열아홉 살에 국자감(國子監 중국 고대에 수도에 설립한 최고의 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일찍이 능력이 있으면 조정에 들어가 벼슬을 하고 기회가 없으면 세상을 구제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자신의 재능과 학문을 황폐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가할 때 그는 황제(黃帝) 때부터 있던 《영추》 《신농본초》 및 편작의 《난경》 등 최초의 의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점차 책 속의 현오(玄奧)한 이치를 깨달아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李) 씨 성의 어느 집에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병으로 죽었다. 왕작집이 그 집 앞을 지나다가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들어갔다.

그는 아이를 보고 나서 가족에게 말했다.

“이것은 풍폐(風閉)증입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제가 있는 힘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안마한 뒤 뜸을 떴는데 잠시 후 아이가 살아났다.

왕작집에게는 먼 친척이 있었는데 이미 병사한 지 수일이 되었다. 그는 친척집에 조문하러 갔다가 그 사람의 관으로 다가가 가슴에 머리를 바짝 갖다 대자 가슴에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사람이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고, 잠시 기가 막힌 증세를 보였을 뿐이라고 단정했다. 그가 뜸으로 그 사람의 등을 훈증하자 잠시 후 깨어났다. 후에 그 사람은 왕작집이 처방한 탕약을 먹고 며칠 만에 완쾌되었다.

초기의 의서를 읽고 이해한 후부터 그는 오행과 술수(術數)를 연구하기 시작하여도 여유 있게 일을 했다. 그가 후세에 남긴 것에는 《급구험방急救驗方》, 《보산요서(保產要書)》등의 의서 뿐 아니라 《양택대성陽宅大成》 등 풍수 서적도 포함돼 있다.

4. 황토물로 죽어가던 사람을 살린 허섭

허섭(許燮)은 자가 양길陽吉, 호는 이제理齊로 복건 민청현(閩清縣) 사람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잊지 않았다. 그는 학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나지만, 벼슬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글을 아주 잘 쓰고, 시와 사, 가부(詩詞歌賦)에도 능했지만, 과거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재주를 모두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썼고, 오로지 의술에 도움이 되려고 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많은 사람을 살렸다. 그는 뛰어난 의술과 고상한 덕행으로 현지인들의 큰 존경을 받았고 모두들 그에게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그는 가마를 타고 부귀한 집의 환자를 진찰하러 갔다. 뜻밖에 중간에 가다 비가 많이 와서 가마꾼들과 함께 어느 민가로 피했다. 그러다가 비는 마침내 그쳤지만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더 이상 길을 재촉할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그의 집에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마을 사람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단지 집에 중환자가 있어서 언제든지 세상을 떠날 수 있으니 손님을 돌볼 마음도, 여력도 없다는 이유였다.

가마꾼 중 누군가가 이 말을 듣고 얼른 말했다.

“이 분이 민청현의 허 의원이십니다. 그의 의술은 기사회생할 수 있으니, 그에게 환자를 보게 하세요!” 그 사람은 희색이 만면해 허섭을 방으로 청했다. 그는 환자를 진찰한 후 사람들에게 황토물 한 그릇을 준비하게 하여 환자가 복용하게 하였다. 몇 시진이 지난 후 그 사람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튿날이 되자 완쾌되었다.

이런 신기한 의술이 일시에 십리에 퍼지자, 듣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고, 사람들은 모두 허섭에게 감탄했다. 그 뒤로 의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참고자료:
동치 10년 《안의현지安義縣志》16권《잡지雜志·일사佚事》
동치 10년 《안의현지·인물人物》
동치 10년 《의령주지義寧州志·인물지人物志》
민국 10년 《민청현지閔清縣志·방기전方技傳》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