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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山門)과 미륵불

신우(新宇)

【정견망】

중국 전통 사찰에서 경내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부처님이 미륵불(彌勒佛)인데, 미륵불이 팔방에서 온 손님들을 웃으며 맞이 한다. 미륵은 사찰 문 앞에서 손님을 맞는데, 전통 예절에 따르면 손님을 맞으러 나오는 사람이 바로 그곳의 주인이다. 이는 미륵불이 이 집의 주인이자, 절의 주인임을 암시한다. 미륵은 또 미래불이니 미래의 주인이란 뜻이 있다. 그렇다면 전통 사찰 배치에서 미륵이 산문을 주재하는 것[역주: 주재한다의 원문은 좌진(坐鎮)으로 앉아서 지키거나 지휘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산문(山門)은 사찰 정면의 누문(樓門 역주: 2층 이상 층집으로 된 문)으로 사찰의 대문 또는 정문에 해당한다. 산문은 또 사찰의 대명사로도 사용되는데 과거에 사찰은 대부분 산림(山林)에 있었기 때문에 ‘산문’이라 불렀다. 흔히 사찰은 시끄러운 속세를 피하기 위해 산속에 지었다고 해서 산 이름을 따거나 산문을 설치했다. 그러다 후대에는 평지나 성안에 지은 사찰까지 산문이라 불렀다.

산문에는 일반적으로 세 개의 문이 있어서 또 ‘삼문(三門)’이라고도 한다. 이는 ‘삼해탈문(三解脫門)’을 상징하는데 바로 ‘공문(空門)’, ‘무상문(無相門)’, ‘무작문(無作門)’을 상징한다. 오늘날 사찰에는 문이 하나만 있어도 그냥 삼문이라 부른다.

미륵불

산문을 말하면 바로 사찰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담긴 뜻은 사찰은 바로 하나의 산(山)과 같으며 사찰(산문)에 들어가는 것은 등산(登山)과 같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통 문화에서 등산을 수련에 비유하곤 했다. 그렇다면 미륵불이 산문을 주재하는 이유는 미륵이 한 사찰의 주인이자 한 산의 주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미륵이 산문을 주재하는 것에는 또 한 층의 함의가 있는데 바로 미륵이 장차 중국에서 세상에 내려와 법(法)을 전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왜냐하면 중국은 지리와 문화적인 의미에서 산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중국이 중국 영토를 가리킬 때 강산(江山)이라고도 하고 만리산하(萬里山河)라고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강산은 중국 영토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직을 대표하고 중국 민중을 대표한다. 강산을 나눠서 보자면 강하(江河)와 산(山)이다. 강하가 문명을 잉태했다면 강의 근원이 바로 산이다.

중국의 모든 산 또는 산맥의 근원은 곤륜산(崑崙山)이다. 곤륜산은 예로부터 ‘만산의 조상[萬山之祖]’이라 불릴 만큼 중원 지역 산들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또 ‘모든 물의 근원[萬水之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모친하(母親河 어머니의 강)라 불리는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은 중화 문명의 근원으로 여겨지는데, 황하와 장강의 발원지가 바로 곤륜산이다. 곤륜산은 중국을 대표한다. 그래서 중국은 산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중국이 표현된 산은 다른 각도에서도 표현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의 토템은 용(龍)이다. 곤륜산은 또 용산(龍山)이라 불린다. 중국에서는 용맥(龍脈)을 중시하는데, 풍수에서 용맥이란 산맥을 말한다. 용맥은 흔히 조대(朝代)의 성쇠와 교체를 결정하는데 중국의 많은 산맥에 수많은 용맥이 분포되어 있다. 곤륜산은 바로 ‘용맥의 조상[龍脈之祖]’이다. 전통 풍수에서 곤륜산은 중국 3대 용맥의 근원이 되는데 바로 북간룡(北幹龍), 중간룡(中幹龍), 남간룡(南幹龍)이다.

중국 천자를 황제라 하는데, 황제는 또 진룡(真龍)으로 여겨진다. 황제가 붕어한 후 묻힌 곳을 능[陵 과거에는 무덤에도 등급이 있어서 황제의 무덤은 능, 귀족의 무덤음 총(塚), 백성의 무덤은 분(墳)이라 했다]이라 한다. 능이란 바로 산을 가리키며 붕어에 담긴 뜻은 ‘산이 무너지는 것’이다.

중국은 가운데[中] 위치하기에 중(中)을 중시한다. 곤륜산맥은 진령(秦嶺) 회하(淮河)와 같은 선상에 위치하는데 이 수평선은 마치 수탉 모양의 중국 판도(版圖)에서 중앙에 위치해 중국을 동서로 갈라서 남북으로 나눈다. 마치 중화 대지의 척추와 같다. 곤륜산맥과 진령 회하 선에서 진령은 진조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곤륜'(진령산맥은 현재 곤륜산맥의 지맥으로 간주)이라 불렸다. 곤륜산맥과 진령, 회하 선은 길이가 약 5,000km에 달하는데 다시 말해 ‘만리산하[역주: 만 리는 4천 킬로미터이니 실제로는 만 리가 넘지만 만 리로 본다]’다. 이 곤륜산 맥락이 중국의 중앙 산맥이다.

중국은 영토의 약 70%가 산으로 산이 중국 영토의 주체(主體)가 된다. 중국 수많은 산들의 대표가 오악(五嶽)인데 중국이란 명칭은 천하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국이라 불린다. 중국은 또 중심의 나라란 뜻이 있다. 중국의 오랜 철학관에 따르면 고인(古人)은 중앙에 자리 잡고 다스리며 중앙을 선택해 도읍을 건설하고 중앙에 극(極)을 세우는 것을 중시했다. 오악은 수많은 산들의 대표이자 또한 중국 강역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중국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어떤 측면에서 말하자면 오악이 바로 중국이다.

곤륜산맥 진령 회하 선(인터넷 지도)

중국은 중(中)을 중시하는데 오악은 중국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국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오악 중 중악(中嶽) 숭산(崇山)은 오악 중에서도 오악을 대표한다. 즉 숭산이 오악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오악은 중국을 의미하는데 숭산이 오악을 대표하니 숭산이 바로 중국을 대표한다. 사실 현재 중국이란 말이 최초로 알려진 것은 바로 숭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인은 중앙에 거주하며 다스림(居中而治)를 중시하고 중앙을 선택해 도읍을 건설했다.

서주(西周) 시기 주공(周公)은 땅의 중심을 찾았는데 당시 측정한 ‘천지의 중앙(天地中)’이 바로 숭산 기슭의 양성(陽城 오늘날의 고성告成)이었다. 때문에 숭산 근처에 위치한 낙읍(洛邑 낙양)에 ‘천하의 중심’이란 지위를 부여하고 낙읍에 성주(成周)를 세웠다. 성주가 바로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중국(中國)’이다. 천하의 중심과 천지의 중심은 개인적인 이해로 비슷한 의미인데 천지의 중심이 좀 더 지리적인 개념에 치우친다면 천하의 중심은 정치 문화적인 개념에 치우쳐 있다. 숭산은 바로 ‘천지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다시 말해 중국이란 단어는 천지의 중심에서 기원한 것이다.

숭산이 중국을 대표한다면 숭산의 숭(嵩)이란 글자의 본래 뜻은 산 위에 산이 있는 것이다. 또 숭자를 분해하면 고산(高山)이 된다. 즉, 고산이 중국을 대표하고, 중국의 표현은 하나의 산 즉 높은 산이다. 이 고산은 곤륜산을 가리킬 수도 있고 중국 토지의 망망한 산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말하는 것은 곤륜산(중원의 모든 산은 다 곤륜산에서 기원한다)이다. 숭의 발음은 또 ‘중(中)’에 가까워서 숭산의 발음은 ‘중산(中山)’과 유사하다.

천지의 중심에 위치한 숭산은 현대 문명에서는 산체(山體)가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에 ‘만산의 조상’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곤륜산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만산의 조상’이라 불리며, 동시에 곤륜산은 일부 고대 서적(가령 《우본기》, 《수경(水經) 하수(河水)》,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 등)에서도 천지의 중심이라 불렸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중국의 표현은 산인데 바로 곤륜산이다.

이외에도 중국을 말하면 진정한 중국이란 국가 개념과 형식은 중원에서 왕조가 끝난 후에야 나타났다. 즉 청왕조(淸王朝)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중국’이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중화민국은 주지하다시피 손문(孫文)이 세운 나라다. 손문이라고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손중산(孫中山)이라 하면 잘 알 것이다.

원래 손문이 정식 이름(또는 다른 이름)이고, 손중산은 망명 시절 일본의 한 여관에 숙박하면서 임시로 지은 일본 이름 ‘나카야마 초(中山樵)’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렇게 중국의 ‘손(孫)’이라는 성과 일본의 ‘나카야마(中山)’라는 성이 결합해 우연히 생긴 이름이 바로 손중산이다. 중국의 중산(中山) 시는 손문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원래 이름은 향산(香山)이었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중산시는 또 ‘중국에서 유일하게 위인의 이름을 딴 도시’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이렇게 보자면 이는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역사 또는 하늘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는 손중산에게 중국을 건국하도록 배치했고 여기에 표현된 것은 중국(천하의 중심)이 중산(中山 천지의 중심)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중국이란 단어가 처음 발견된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은 산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산은 근본적으로 곤륜산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곤륜산은 역대 왕조의 고서(古書) 자료에 근거해 끊임없이 탐사한 결과다. 즉, 역사가 이곳을 선택한 것은 고대 곤륜산의 대응이었다. 그래서 중국 전통 사찰 배치에서 미륵이 산문을 주재하는 것에 담긴 뜻은 미륵이 장차 중국에서 법을 전한다는 뜻이다. 곤륜산 위에는 신도(神都 역주: 신들의 수도)가 있는데 여기에 담긴 뜻은 미륵이 중생을 천국으로 이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산의 주인으로서 미륵은 중국 모든 역사 문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주제를 보여 주는데 바로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수련을 등산에 비유하는 것은 중국 지형으로 보아도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의 지형은 3개의 거대한 계단 형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는데 곤륜산이 정상에 해당한다. 만약 연해의 대륙붕까지 합하다면 총 4개의 계단이 있다. 즉, 중국 지형은 산으로 구성된 계단인데, 바로 천계(天界)로 통하는 사다리가 된다. 시작은 바다[고해(苦海)]이고 계단의 끝은 산꼭대기인 곤륜산[천계(天界)]다. 때문에 중국 전통문화에서 수련을 등산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3개의 큰 계단으로 구성된 중국 지형(출처: 인터넷)

기왕에 미륵이 산문을 주재하는 것이 미륵이 중국에서 법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광활한 중국 영토에 대한 다른 게시는 없을까? 오악은 흔히 중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오악을 중국으로 볼 수 있다. 방금 말했다시피 중국은 산으로 표현되는데 모종의 층차에서 보자면 오악이다. 아울러 오악의 방위는 중국의 중앙에 있고 오악 전체는 십자가 모양의 평면 좌표를 이룬다.

우선 오악의 지리 좌표를 보자.

화산(華山)은 동경 109°57′-110°05’와 북위 34°25′-34°00′ 사이에 있다.
숭산은 북위 34°23′31″-34°35′53″, 동경 112°56′07″-113°11′32″이다.
항산(恒山)은 북위 39°23′~39°44′, 동경 113°36′~113°57′ 사이다.
형산(衡山)의 주체 부분은 북위 27°4′-27°20’과 동경 112°34′-112°44′ 사이에 있다.
태산(泰山)의 좌표는 북위 36°16′, 동경 117°6’이다.

항산, 숭산, 형산은 기본적으로 동경 113도 일직선에 위치하고 화산과 숭산은 기본적으로 북위 34도에서 같은 위도 상에 있다. 그럼 왜 항산, 숭산, 형산은 같은 직선상에 있지만 화산, 숭산, 태산은 같은 직선상에 있지 않을까? 사실 항산, 숭산, 형산을 남북으로 잇는 세로선과 화산, 숭산이 이어진 동서 방향의 가로선은 2차원 평면의 십자 좌표로 딱 합쳐진다. 또 숭산과 태산의 연결선은 동북(東北) 방향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오악은 전체적으로 동북 방향을 가리키는 방위좌표를 구성한다. 즉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시는 것이 중국 동북 지방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오악진형도(五嶽真形圖)와 오악좌표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표현은 산인데 근본적으로 말하면 곤륜산이다. 중국 중앙의 곤륜산맥-진령-회하 일직선 상에서 곤륜산은 곤륜의 6월 설경이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진령은 곤륜이라고도 불리며 주봉은 태백산(太白山)이다. 태백산도 6월 설경이 유명하다. 이를 가리켜 태백적설유월천(太白積雪六月天)이라 한다. 즉, 곤륜산은 진령과 대응하며 진령은 일정한 층차에서 곤륜산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태백적설유월천은 어디에 있을까? 진령의 주봉인 태백산은 보계(寶鷄)시 미현(眉縣)에 있다. 보계시 미현은 닭의 눈썹 부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현재 공교롭게도 중국 영토가 수탉 모양이고 수탉의 눈썹은 동북에 있다.

즉 오악과 곤륜산에서 볼 때 모두 동북 방향을 가리킨다. 이는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시는 것이 오늘날 중국 동북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미륵이 산문을 주재하는 것은 미륵이 중국에서 법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거시적인 각도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봐도 일치한다. 현재 알려진 최초의 ‘중국’은 낙양에 있는데 다시 말해, 옛날 성주인 낙읍이다. 수당(隋唐)대 낙양성의 중축선(中軸線)이 바로 낙양의 중축선이다. 수당대 낙양성 중축선에는 지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칠천(七天) 건물’이 분포되어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천궐[天闕 즉 이궐伊闕], 천문가(天門街), 천진[천진교天津橋], 천추(天樞), 천문[응천문應天門], 통천궁(通天宮), [명당(明堂)], 천당(天堂) 순으로 이어진다. 이 축선은 남쪽 끝인 이궐에서 마지막 천국까지 사람이 신(神)이 되는 길을 표현한다. 기점인 이궐은 또 용문(龍門)이라고도 한다. 용문에는 용문석굴(龍門石窟)이 있는데, 용문석굴은 주불(主佛)이 만불(萬佛)을 이끄는 불국(佛國) 세계를 표현한다. 용문은 또 잉어가 용문을 뛰어오르면 용이 되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이 축선은 불법(佛法)이 사람을 이끌어 신(神)이 되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고 용문과 천국 사이에 있는 것이 정정문(定鼎門)인데, 정정문이란 명칭은 이곳에서 구정(九鼎)을 정했기 때문이다. 구정은 구주(九州)를 상징한다. 즉 정정문에는 이곳이 바로 중원(中原)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축선은 중원에서 불법(佛法)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을 표현한다. 낙양시를 상징하는 꽃이 모란꽃인데 모란꽃의 의미는 천하의 중심[모(牡)자에서 토(土)는 중앙 토를 대표하고 우(牛 소)는 간지에서 축(丑)이되고 방위로는 동북 방향을 의미한다]의 동북 방향의 수련방법을 뜻한다. 즉 불법이 중국 동북에서 처음 전해진다는 뜻이다.

동시에 곤륜산 유월설에는 또 한 가지 함의가 있는데 유월설은 중국 문화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을 대표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할 때 아주 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거짓말과 흑색선전의 박해를 받음을 비유한 것이다.

태백적설유월천은 닭 모양의 중국 판도에서 눈썹 부위가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뜻한다. 역사의 오늘 중국 동북 장춘(長春)에서 불법이 널리 전해져 나왔는데 장춘시가 바로 중국이란 수탉의 눈썹에 해당한다. 이때 널리 전해진 불법이 바로 파룬따파(法輪大法)로 파룬불법(法輪佛法) 또는 파룬궁(法輪功)이라고도 한다.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장쩌민은 중공 정권을 이용해 파룬궁에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박해하고 사교(邪敎)라 모함했다. 파룬궁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정법(正法)임을 밝히고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사건’과 같은 거짓말을 폭로하자 중공은 또 파룬궁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며 ‘정치를 한다’는 등의 조작된 선전으로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부추겨 파룬궁을 증오하게 하면서 박해를 유지해 왔다. 중국인의 애국심을 이용해 사람들의 이성적인 사고를 가로막은 것이다.

한편, 산문전(山門殿) 또는 천왕전(天王殿)에는 미륵불 좌우에 사대천왕(四大天王)이나 형합이장(哼哈二將), 또는 사대천왕과 형합이장을 같이 두는 경우가 많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은 미륵불 양쪽에 사대천왕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대천왕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네 분의 호법천신(護法天神)으로 각기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 지국천왕(持國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이다.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실 때 거짓말로 날조된 박해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법을 수호하는 이들 사대천왕의 이름에도 상응하는 암시가 있다. 광목과 다문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아야 선과 악, 참과 거짓을 똑똑히 구별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단편적인 말만 듣고 단편적인 것만 보면 미륵불을 비방하는 그런 흑색선전과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이 보고 많이 들어 식견과 지혜를 넓혀야지만 옳고 그름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이 이지(理智)적이고 청성(淸醒)해야 함을 알려주는데, 중국인들은 역사 문화가 아주 깊고 두터우며 애국심이 강하지만 일부 역사 문화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애국심을 이용한 증오 선동에 이용당하지 말아야 하며 애국심과 증오가 자신의 이지를 가로막지 않도록 해야 합한다. 중공의 당 문화는 늘 중공이 바로 중국이고 애당이 바로 애국이라는 개념을 주입해 중국인들의 사상을 헷갈리게 하고 기만하며 이용해 왔다. 진정한 애국은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땅의 역사 문화 및 이 땅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 특정한 정부나 당 조직 또는 당 지도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미륵의 양옆에 있는 사대천왕과 형합이장에는 또 이런 함의가 담겨 있다. 사찰은 불교에 속하지만 형합이장은 오히려 도가(道家)에 속한다. 아울러 신마(神魔)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나오는 인물이다. 또 사대천왕은 본래 불교에서 말하는 네 분의 호법천신이지만, 중국 사찰에 있는 사대천왕상은 오히려 《봉신연의》에 나오는 사대천왕의 모습이다.(《봉신연의》가 나온 명대 이후)즉 도가 사대천왕의 형상이지만 명칭은 여전히 불가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륵불 옆에 선 호법신들이 도가(道家)의 봉신방(封神榜)에 치우친 걸까?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담긴 의미는 바로 미륵이 전하시는 법은 불도양가(佛道兩家)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역사는 마치 한 편의 연극과 같아서 극본에 따라 설계된 연극이며, 연극의 주제는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는 것이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할 때 곧 신마(神魔)의 대전이 재현되는 봉신(封神)의 때가 된다. 따라서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실 때 장쩌민과 중공의 날조된 모함과 박해를 받는다. 이는 이번 신마대전이 인간의 상태에서 표현된 것으로 거의 일체가 다 인간 세상의 정상적인 표현이다. 사람이 이번 정사(正邪) 전쟁과 신마대전(神魔大戰)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로 가느냐는 사람이 어떻게 변별하느냐에 달렸다.

미륵불 뒤에는 또 위태보살(韋馱菩薩)이 있는데, 위태보살을 모신 문 앞 상단에 걸린 현판은 ‘삼주감응(三洲感應)’이다.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불교에서는 원래 사대부주(四大部洲)를 말하는데 이곳에서는 왜 단지 3개의 주만 감응하는가? 원래 위타보살은 북구로주(北俱盧洲) 출신으로 사대부주 중에서 북구로주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 그곳 백성들은 옷이나 음식 걱정은 없지만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 반면 다른 삼주(三州) 사람들은 불법의 가르침을 믿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오직 삼주만 감응한다.

위타보살은 심지어 자기 고향 사람들조차 보호하지 않지만 다른 삼주에서 불법을 믿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이는 또한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서 늘 선한 사람 편에 선다(天道無親,常與善人)”는 중국의 옛말과 부합한다.[역주: 이 구절은 현행본 《도덕경》 79장에 나온다.]

위태보살의 ‘삼주감응’은 여기서 사람들에게 불법을 믿어야지만 불법 구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론

중(中)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인(仁 어짊 또는 사랑)이 있다는 뜻이다. 인이 있는 곳이란 바로 신령(神靈)이 있는 곳이다. 고대 중국(中國)이란 단어에 담긴 함의는 바로 인(仁)이 있는 나라를 말하며, 하늘을 받들고 땅을 이어받아 신령(神靈)의 비호(庇護)와 정통권력을 갖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역사를 만드는 가운데 중국은 특수한 곳으로 중국은 처음부터 신령이 있는 나라이자 신령이 보호하는 나라(중공의 무신론 교육은 사람이 신을 배반하게 한다)로 다져졌다. 동시에 중국은 처음부터 성주(成周)의 내함을 다졌는데 성주란 바로 최후 시각이다. 이런 기초 다짐은 최후 시각에 신(神)이 오시길 기다리기 위한 의미는 아니었을까?

[역주: 성주(成周)를 직역하면 주(周)를 완성한다는 뜻인데 주(周)는 순환하고 반복하는 주기란 뜻이 담겨 있다. 즉 한 주기를 완성해서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본다면 성주가 이번 시기 역사 문명의 최후 시각을 뜻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미륵불은 특별하다. 불교에서는 삼세불(三世佛)을 말하는데 즉 과거불(연등), 현재불(석가), 미래불이다. 미륵불은 미래를 대표하는 미래불이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사람은 세속에서 더 나은 삶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심지어 소위 분투(奮鬪)하는데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바로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륵불은 바로 사람들이 기다렸던 그 미래가 아닌가? 세상 사람들이 줄곧 바라며 기다렸던 분이 아닐까? 무신론을 주장하는 중공은 최후 시각 사람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