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高遠)
【정견망】
누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일까? 많은 이들이 아마 자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고모나 이모 등을 언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에게 잘 해주고 각종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잘하는데 늘 자녀에게 좋은 것을 남겨주려 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풍속이 좋지 않고, 도덕 수준이 아주 낮아서 형제자매 간에도 경제적 분쟁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된다. 한 친구가 전에 “오늘날 이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부모님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모든, 친구든, 많은 가족이든 그들도 세간의 미혹 속에 있기에, 그들이 내게 줄 수 있는 좋은 것 역시 제한적이며, 인생의 많은 곤혹에 대해 대답해줄 수는 없다.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는 기독교를 믿고 자식들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길 바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이 봉건 미신이라 여겨 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하셨다. 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자매들에게 다양한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우리의 언담거지(言談擧止 말과 행동)를 바로잡아주시는 등 아주 잘해주셨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두려워 신불(神佛),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심이 있었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었다.
비록 나이는 아주 어렸지만 나는 주변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루 세 끼 먹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 사이의 각종 모순 등 이런 것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비록 어머니와 조부모님들은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처리하신 것이 내게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의혹을 풀어주진 못했다. 나중에 내가 반항심으로 공부를 싫어한 것 등은 모두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는 이런 진리를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또 산에 들어가서 도(道)를 닦을 생각도 있었지만, 생활의 문제며 벌레나 맹수 등의 문제가 겁이 나서 행동으로 실천하진 못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가족과 교사들에게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내 의혹을 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대학에 가면 인생의 많은 도리를 가르쳐 줄 유명한 스승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품고 나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 대학에 입학한 후 알게 된 사실은 당시 교수들이 1989년 6·4 천안문 사건을 겪었다는 것이다. 많은 교수들이 교과서만 읽으며 감히 자기 의사를 함부로 표현하지 못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 교수님을 만나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외국은 어떤가요?”라고 질문해도 교수는 겁을 내며 일단 교실 문을 닫은 뒤 “외국은 우리가 듣던 것과는 다르단다.”라고 하면서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면 온갖 종류의 책이 있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1992년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이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후 부패로 나라를 통치했고, 이듬해에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갑자기 ‘돈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학교에서 더 뚜렷이 나타났다. 돈을 이야기하고 돈을 추구하는 것은 더는 저속한 일이 아니며,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표면화되었다. 학교에서도 돈과 개인의 미래를 위해 도덕에 어긋나는 온갖 일들이 발생했다.
누가 아직도 천리(天理)와 양심을 믿겠는가?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것이 점차 모토가 되었다. 그 4년의 대학 생활이 내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남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지만 또 온갖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승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똑똑히 알 수 없었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고등학생 때부터 조깅, 기공 등 각종 운동을 했다. 또 모두 심성을 이야기하는 기공 서적도 여러 권 샀지만, 실제로 해보니 아무 효과가 없었다. 대학 생활 4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당 문화 사고를 많이 갖게 되었다. 이 역시 나중에 진상을 알고 나서 깨달은 것이다.
1993년 외지에서 돌아온 여동생이 나에게 《파룬궁》 초판본을 추천하면서 자신이 어느 도시 공원에서 몇 달 동안 파룬궁 연공장에 가서 연마할 때 동수 아주머니가 주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은 처음부터 가부좌를 한 시간 틀 수 있었고 동수들이 그녀의 근기가 좋다고 칭찬했다고 말했다. 이 공법(功法)은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아주 좋으며 오직 심성이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책을 받자마자 아주 빨리 한번 다 읽었다.
앞에서 언급하신 각종 특이공능은 당시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심성 수련”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었고 또 첫 문단까지 외웠다. 그 당시 나는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마지막 문답 풀이 부분을 읽으면서 수익을 본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좀 의문이 들고 너무 허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 책을 내려놓았다.
1994년 4월, 외지 친척이 내게 편지를 보내 6월에 파룬궁 사부님이 정주(鄭州)에서 학습반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나도 참가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참가하기로 생각하고 답장을 보내 나 대신 참가 신청를 해달라고 청했다. 6월 11일, 이 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오전에 정주의 버려진 작은 체육관에서 개최된 기공 보고회는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의 인식과정을 주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비록 부처요 도를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사부님에 대한 존경심을 저해하진 않음을 아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 사부님이셨지만 조금도 잘난 척하는 느낌이 없으셨고 아주 평범해서 접근하기 쉬웠다. 또 이렇게 무더운 날에도 조금의 짜증도 없이 차분하게 설법하셨다. 시장경제의 조건 하에서 사람마다 모두 돈과 지위를 추구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사심 없이 베푸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주 설법에서 이런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과거에 이런 설법을 하면서 돈을 받지 않았지만 오늘날 이런 조건에서는 장소를 빌리고, 책을 인쇄하고, 각지에서 설법하고 공을 전해야 하기에 모두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비용은 가장 저렴합니다.”
처음 학습반에 참석할 때는 10강에 50 위안이었고, 이후에는 절반인 25위안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경찰 친구로부터 들으니, 그가 서안(西安)에서 기공 강좌를 들었는데 한 강의당 300위안이 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그가 본 것은 땅바닥에서 뒹구는 것뿐이었고, 그는 별로 얻은 것도 없었다. 당시 300위안은 교사 월급보다 많은 액수였다.
처음 사부님의 기공 보고회에 참석했을 때 나는 이분이야말로 내가 찾던 사부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많은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우리를 속이진 않으실 것이며 앞으로 내가 천천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8일 간 총 10강의 수업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돌아올 때 내내 눈물이 흘러내렸는데 정말로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 기차 세면대 앞에 섰다. 이분이야말로 이 세간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단지 우리 몸을 정화해 병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해주셨을 뿐만아니라 학습반에서 우리를 밀어주어 직접 고층차에서 연공하게 하셨다. 또 우리에게 직접 설법해 주셨고, 부동한 층차에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지난 20여 년의 수련 과정 역시 이 점을 실증할 수 있다. 그때 나는 당 문화 사유가 아주 강했다. 비록 사존(師尊)을 매우 존경하긴 했지만 대법 사부님에 대한 각종 존중 방식을 견디지 못했고 그것을 봉건 미신이라 생각했다. 사부님에 대한 존중은 마음속으로만 하면 되며 굳이 겉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나중에 나는 시어머니가 매일 아침 일어나 사부님께 공경하게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비록 동의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봉건 미신처럼 느껴졌다. 수련의 길에서도 각종 잘못을 저질렀고, 다양한 당 문화와 사상의 교란도 있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나처럼 못난 제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늘 우리를 구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셨고 배치하신 그 길은 모두 반드시 성공하는데 우리 자신이 분발하지 못하고 사부님 말씀에 따라 수련을 잘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할 뿐이다.
오늘날 사회 상태는 대법제자들이 모두 체험했다시피 각종 예언이 모두 정확하지 않다. 사부님께서 거듭 결속(結束)을 연장하여 중생 및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대법제자들에게 수련해 올라갈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 대법제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다양한 복보(福報)를 체험할 수 있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럼 세간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인가? 사람을 인도해 정법(正法)을 수련하게 하고 수련의 길에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이야말로 가장 친한 사람이다.
대법제자들과 진상을 똑바로 아는 세인들이 명혜 정견 사이트를 사용해 중국의 4대 중요 명절인 5월 13일 세계 파룬따파의 날(사부님 탄신일), 중추절, 신정, 설에 축하 편지와 카드를 보내 사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사부님이야말로 세간에서 가장 친한 분이다.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과 함께 하고 법과 함께 할 수 있는 만고(萬古)에도 만나기 힘든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사부님과 함께 하고 정법(正法)과 함께 하며 구원 받을 수 있는 이 얻기 힘든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이 마을을 지나면 정말로 이 주막은 없으니 나중에 후회해도 늦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4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