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雨然)
【정견망】
심리학에 ‘아첨형 성격’이라고 있는데, 학술적으로는 가정에서 받은 사랑이 부족하고 상처를 많이 받아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고, 남의 얼굴만 바라보며 가급적 다른 사람에게 영합하고 비위를 맞추려 하면서 감히 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남이 화를 낼까 두려워하는데 겉으로는 매우 친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비참하다. 늘 공황 상태, 무력감, 불안감 속에 산다. 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목적은 안정감을 얻기 위함인데, 사실 안정감은 인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들의 생명마저 다 조작했는데 그(그녀)가 말법시기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대법제자들의 가족, 성장환경, 인격까지도 모두 조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특히나 불안했고, 거절·무시·고립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이러한 두려움에 이끌려 늘 유머러스하고 행복한 척 가장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 늘 아주 활동적이고 행복한 척했다. 모두 함께 어울리고 웃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고립시키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모습은 겉으로는 아주 행복해 보였지만 사실은 억지로 격동하는 마음과 환희심을 일으킨 것으로 오직 남을 웃길 수만 있다면 아무 말이든 가리지 않았다. 남이 좋아하지 않으면 나를 해칠까 두려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너무 크게 보았고 자신은 너무 작게 생각했다.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이 내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생명 가장 깊은 곳의 무력감과 타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나를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수련하고 나서 나는 순진하게도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자비(慈悲)와 같다고 여겼는데, 내가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춰 남들이 다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그것이 바로 수련자의 자비가 표현된 것이라 여겼다. 우습게도 어디서나 늘 겸손하게 웃는 내 모습과 남에게 자세를 낮추는 태도는 남이 나를 어떻게 조롱해도 나는 감히 그렇게 맞서지 못했다. 이는 수련인의 자비가 체현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점차 나의 이런 모습이 더 많은 사람들의 무시를 받고 있으며 심지어 웃음거리나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수련인의 위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비위 맞춤’을 ‘자비’로 착각한 것이다.
나는 ‘비위 맞춤’ 역시 집착이고, 또한 마땅히 닦아버려야 할 집착임을 깨달았다. ‘비위 맞춤’이란 이 집착의 가장 주된 표현은 잘 웃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웃으면 남들에게 잘 보이고 남들이 화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늘 웃다보니 또 환희심과 격동심, 흥분심을 불러일으켰다. 딸도 내게 말하길 “엄마, 늘 웃으면 바보처럼 보이니 웃지 마세요”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나는 정신이 너무 분산되어 마음을 안으로 집중할 수 없었고, 때문에 연공 중에 입정(入靜)에 들어가는 것도 아주 적었다. 평소에도 수구(修口)가 아주 어려웠는데 늘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말로 남에게 극진하게 아첨하고 칭찬해서 의도적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려 했다.
사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우리가 자신의 집착을 인식했을 때 사존께서는 이미 우리를 도와 이 물질을 없애도록 도와주신다. 최근 며칠 나는 이미 더는 함부로 웃지 않는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는데 함부로 웃는 것도 단정하지 못한 표현이다. 생각해 보면 고대에는(현대도 그렇다) 오직 풍기가 문란한 여자들만이 함부로 웃었다. 대갓집 규수들은 표정이 아주 엄숙했고 용무가 있으면 말을 했지만 일이 없으면 조용히 침묵했다. 일체는 모두 ‘정(正)’이란 하나의 글자에 체현되어 나온다.
아마도 구세력이 어려서부터 나에게 남이 나의 운명을 통제하고 주재할 수 있다는 관념을 심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남이 싫어하거나 화를 낼까 두려워 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집착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에게 병이 있고 모든 불행이 조성되는 근본원인은 업력으로서, 그 흑색물질의 업력장(業力場)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데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고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에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리며, 사부님 즐거운 새해 되세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