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주변 일부 동수들의 정(情)이 비교적 무거운 것을 발견했다. 정법이 곧 끝나가는데, 아직도 세상을 떠난 친인(親人)을 언급하기만 하면 고통스레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한 여자 동수는 남동생이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매번 남동생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눈물을 줄줄 흘린다. 또 어떤 여자 동수는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주 오랫동안 비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모친을 언급하기만 하면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린다. 또 어떤 동수는 아들이 대법을 수련하다 30대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의 초상화를 집에 걸어놓고 향을 올린다. 동수들이 그녀에게 이지적으로 하라고 권고하자 그녀는 “아들을 그리워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했다.
과거 수련에서는 가장 먼저 정을 끊어야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전해 내려온 것은 모두 산에 들어가고 절에 들어가서 수련하는 것을 말했다. 세상과 연을 단절하고 육친 정도 다 버리는 것으로, 부모가 절에 가서 육친을 찾는 것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를 찾습니까?” “나는 너를 찾는다. 너는 내 아들이다.” “아, 아미타불, 시주님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았습니다.” 나는 무엇 무엇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법명(法名)으로 고쳤기 때문이다.”(《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정은 각종 방면에서 체현되는데 사람의 극복, 억제, 인내하는 방법으로는 누를 수 없고 오직 법(法)을 많이 공부해서 “법을 얻은” 일면(一面)으로 제거해야만 쉽다. 사람 마음의 크기와 상관없이 단번에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경계도 따라서 승화된다.
나는 법을 얻기 전에 아내와 자주 말다툼을 했고, 법을 얻은 후에도 오랫동안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강했다. 우리는 서로 정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수련하면서 한 경계에 머물 수는 없고, 남을 위해 생각하는 경계를 닦아내야 한다. 20년이 넘는 가정의 우여곡절 속에서 나도 변하고 그녀도 변했다. 요즘 그녀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나를 걱정하고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속인이라 이기적이고 사소한 계산이 늘 나타난다. 예를 들면 자기 월급은 저축하고 나더러 돈을 달라고 한다. 나는 비록 개의치는 않지만 아내에게는 나보다 돈이 더 친한 것 같다.
한번은 식당에 갔는데 맞은편에 농촌 노인이 앉은 것을 보고 아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자신은 땅을 할당받기 위해 500만 위안 이상을 주었고 촌장에게도 수고비로 100만 위안 이상을 주었다고 말했다. 아내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물었다.
“그래요? 정말 대단하세요. 어쩜 그렇게 큰 돈을 쓰세요? 아들에게 얼마나 주세요? 또 얼마나 남겨놓으세요?”
호기심과 흠모는 물론이고 얼굴에 온통 열정이 가득했다. 이 역시 정의 쏠림을 잘 보여준다.
주변의 어떤 동수는 남편이 불륜을 저질러 매우 슬퍼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자 병업이 나타나 세상을 떠났다. 나는 생각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왜 그것을 간파하지 못하는가? 정이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내려놓지 못하면 자신을 해친다. 누가 당신에게 영원한가? 일시적인 동반자일 뿐인데, 다음 생에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직 대법만이 영원하다.”
옆집에 언니가 살았는데, 부부 금슬이 아주 좋아서 어디를 가든 늘 같이 붙어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울부짖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나 여전히 둘이 어울린다. 고인은 “사람의 정은 마치 종이처럼 얇다.”고 했는데 우리는 수련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점에서는 과거 막 출가한 사람만도 못하다.
정(情)은 생명이라 서로 교류를 유지하면서 생존하고 성장해야 한다. 서로 교류하지 않으면 시들어 죽어버린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잘하는 것은 모두 잠시뿐이다. 정의 기점은 위사(爲私)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었다고 해서 상대방이 늘 감사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내게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집을 살 때 내가 14만 위안을 빌려주니 감동해서 울었다.
“우리 부모님도 나한테 이렇게 해준 적이 없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잘 챙겨줄게.”
그러나 몇 년 후 돈을 갚고 나서는 만남도 그저 인사만 나눌 뿐이다. 나는 무슨 원한은 없고 단지 정이란 무엇인지 말할 뿐이다.
내가 잘 나갈 때는 매년 새해 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은퇴할 때는 소수 사람들만 왔다. 올해 설날, 사이가 좋은 친구 두 명에게 전화를 걸어 새해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한명은 받지 않았고, 한 명은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대체 우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게를 보아야 한다. 중시하지 않으면 정이 여전히 있겠는가?
이 일이 있은 후 나중에 사부님께서 꿈에서 점화해 주셨다.
“집에 친척과 친구들이 많아 시끄러웠고, 나는 서너 살 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공간이 아주 좁았다. 내가 아이를 내려놓았을 때 방 안에는 갑자기 사람이 없었고 아주 넓었다. 단지 여전히 바닥에 쓰레기가 남아 있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여전히 (아이를) 안고 내려놓지 않아서는 안 되며 정의 쓰레기를 제거해야만 공간장이 넓고 청정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효도를 다 했고 음식이며 용품, 돈 등 모든 면에서 자발적으로 감당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이 관(關)은 단지 한 번 뿐이며 내가 관을 넘기지 못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다시 돌아가실 수는 없다는 것을 똑똑히 간파했다. 정을 간파해야만 담담해질 수 있고 내려놓음도 쉬워진다.
자식 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예 내려놨는데 가끔 자식이 다투거나 또 이혼하려고 한다. 나를 설득하는 말을 하는 것 외에는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고 그들의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혼하는 것은 그들의 인연이자 선택이다. 나 자신도 좌우할 수 없는데 내가 누구를 좌우한단 말인가? 무슨 자식 정, 부부 정, 친구 정이든 하늘이 무너져도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을 내려놓음은 바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이다! 이런 단호함이 없으면 넘어갈 수 없다.
사이트에 이런 글이 있었다.
“아버지와 딸이 모두 대법을 수련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딸은 몹시 슬퍼했다. 그녀가 천목으로 보니 아버지가 떠날 때 자신에게 그저 예의만 차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딸은 매우 실망했다. “아버지는 나를 몹시 염려하셨는데 어째서 몇 마디 말도하지 않으실까?”
내 생각에 그렇게 한다면 신(神)이 아니다. 동시에 또 딸에게 “누가 당신 아버지인가? 또 당신은 누구의 딸인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여기서 훼멸 되는데 이것이 작은 일인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인용해 모두를 격려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불교가 혼란하다고 한다. 유교의 것도 불교 중에 들어갔고, 무슨 부모 효도ㆍ자식 정 같은 것조차 들어갔는데, 불교 중에는 이런 내포(內涵)가 없다. 무슨 뜻인가?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元神(왠선)이기 때문에, 당신의 元神(왠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다.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여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그가 죽었다 하고, 그의 어머니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역시 죽었다고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데, 이것은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한다.”(《전법륜》)
작은 깨달음을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5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