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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있음은 글쓰기의 승화

유원(有源)

【정견망】

대법제자의 글쓰기는 사실 신(神)이 돕는 것으로 이 역시 법을 실증하는 한 가지 형식이다. 내가 처음 글을 쓴 것은 사실 동수가 쓴 션윈(神韻) 문장을 보고 시작되었다. 당시 그 글을 읽고 나서 나 자신이 활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션윈에 관한 글로 시작되었다.

막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사람 마음이 아주 무거웠다. 물론 사람 마음이 무거운 문장은 발표될 수 없다. 나중에 진정하게 부딪힌 문제는 바로 버림이었다. 때로는 아주 긴 단락을 쓰고 나면 내용이 주제와 맞지 않음을 발견하는데 그럼 취사선택의 문제가 생긴다. 이럴 때면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이나 핵심 사상을 포기하는 것이 정말로 매우 꺼려진다. 하지만 내용은 주제를 위한 것이라 주제와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의미가 없다. 만약 이런 것을 버리지 못하면 문장 전체가 폐기된다. 꽤 많은 고민을 하고 나서야 그래도 버릴 수 있다.

심지어 때로는 문장 전체가 수련과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문장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때로는 그냥 사이트에 올려 편집하는 동수가 게시 여부를 결정하게 하자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가장 무책임한 것으로 동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나 자신마저도 볼 수 없는 문장이 어찌 표준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버릴 수 없는 내용은 자아(自我)가 장난을 친 것이 아닌가? 수련이란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럼 글쓰기도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종의 내용에 집착하는 것 역시 닦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심할 때는 한 문장에서 3분의 1을 줄여야 한다. 때로는 최후 글에 한 글자를 더해도 넘치고 한 글자를 줄여도 문장이 불완전해지는데 이때의 내용은 이미 자신이 당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작은 이해를 써내어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