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제자
【정견망】
최근 많은 신(新)수련생들이 법을 공부하고 연공을 배우러 왔는데, 이는 아마도 법정인간(法正人間)의 천상(天象)이 이 일보에 이르러 일부 사람들이 속속 법을 얻으러 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법 공부 소조에도 한두 명이 왔는데 수련 중에 많은 질문을 해서 나로 하여금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신수련생들이 하는 질문 중 어떤 것은 대답하기 쉽지만 어떤 것은 어려웠는데 20년 넘게 수련한 나도 몰랐다.
이에 나는 신수련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을 많이 보세요. 많이 보면 곧 명백히 알게 되는데 책 속에 답안이 다 있습니다.“
그러자 신수련생이 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책을 보는 것은 좋은데, 어떤 책의 어떤 단락이 이 질문에 해답해줄 수 있나요?”
나는 머뭇거리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신수련생이 이어서 말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거나 이해가 안 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데, 당신들이 직접 답을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나는 20년 넘게 수련해 왔고 이 책은 몇백 번에서 천 번을 읽었다. 평소 법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간단해 보이는 질문들도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니 체면이 말이 아니라 여겼다. 신수련생들 앞에서 “나는 알고 있고” “노(老)수련생”이라고 폼을 잡을 수 없었고 허영심에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전법륜》의 한 구절이 떠오르게 했다.
“오늘날 당신이 만약 선종에 가서 법을 배운다면 당신은 묻지 말라. 당신이 무슨 문제가 있어 그에게 묻기만 하면 뒤돌아 몽둥이로 당신의 머리를 치는데, ‘방할(棒喝)’이라고 한다. 그 뜻은, 당신은 묻지 말고 스스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와서 배우려는 것인데, 무엇을 깨달으란 말인가? 당신이 날 몽둥이로 치다니?!””
오늘 신수련생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로 이랬다.
나는 좀 짜증이 나서 말했다.
“이 문제는 너무 심오해서 제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쇠뿔을 파지 마세요. 당신은 그래도 책을 많이 보는 게 좋은데 책 속에서 답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때로 나는 또 허세를 부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문제를 잘 알지만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사실 나는 전혀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또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피상적으로만 이해했다.
신수련생이 다시 물었다.
“당신들이 책을 20년 넘게 읽었어도 대답하지 못하니 만약 제가 20년 넘게 책을 읽어도 여전히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요? 게다가,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제가 대답을 얻을 때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요?”
그렇다, 이건 답이 없는 무한반복이 아닌가?
나는 충격을 받았고 부끄러웠다. 깊이 파고들지도, 회피하지도, 체면을 세우지도 못했다. 나는 지금 바로 이렇게 끔찍한 악순환에 빠져 있음에도 몰랐던 것이다!
내가 신수련생에 대해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선심(善心)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신수련생이 제기한 질문을 회피한 것은, 자신이 이 문제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과거 법 공부에서 깊은 이해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이렇게 오랫동안 법을 공부했음에도 나는 이미 일종의 엄중한 착오에 빠진 것 같다.
“대법(大法)을 통독(通讀)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당신이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개변되고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제고될 것이며, 당신이 끝까지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원만을 이룰 수 있다.”(《미국 동부법회 설법》)등의 설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해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하고, 수련 중의 ‘교활한 사람’으로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다년간 제고가 이렇게 느렸던 것이다. 나는 반드시 자신을 개변하고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7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