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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말하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확실히 ‘도(道)’라는 이 단어에 다소 신비감을 느낀다. 흔히 도포 차림의 그런 도사들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예부터 관련 서적에서 모두 일부러 이 단어를 신비하게 변모시켰기 때문인데 그 목적은 사람들이 도를 너무 깊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실 도란 아주 간단한 단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도로(道路)’라는 단어는 실제로 특정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남경에서 북경까지 간다면 곧 도로가 있지만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다”고 한다. 길은 달라도 아마 같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난이도는 같지 않다. 대체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업종에서 모두 기예(技藝)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 방법이 바로 우리가 아는 도(道)로 소위 말하는 도란 바로 도로를 간단히 줄인 것에 불과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7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때 배우러 다니는 사람은 모두 가부좌를 중시했으며, 앉는 데는 자세를 중시했고, 붓을 잡는 데는 기를 운행하여 호흡함을 중시했으며, 각 업종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淨心) 하고, 호흡 조절(調息)을 중시했는데 전반 사회는 모두 이런 상태에 처해 있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호흡 조절을 중시한 것은 바로 모든 업종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道)였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들의 특정한 업종에서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수련의 도(道)는 속인 업종의 도보다 더 엄숙하며 요구가 더욱 높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데 구우주는 곧 해체되니 신우주는 반드시 신우주의 도를 따라야지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 즉,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떠나면 그 어떤 도(道)도 더는 생명이 원만해서 회귀하게 할 수 없다. 심지어 각 업종이 대법을 떠나면 곧 신우주 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각 업종마다 모두 대법제자가 있어서 바로 그 한 업종의 길을 걷고 있다.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 수련이 아니며 또 각 업종의 길을 걸어나와야 하는데 바로 그 한 문(門)의 도(道)이고 그 한 문의 길이다.

도는 사실 이렇게 간단하지만, 더욱 간단한 일일수록 하려면 오히려 쉽지 않다.

작은 견해를 써내니 참고로 하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