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당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는 며느리였던 양옥환(楊玉環)의 미색(美色)을 탐해 구실을 찾아 양옥환이 남편을 떠나 도사가 되어 출가하게 했다. 양옥환은 이렇게 도관(道觀)을 거쳐 시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비(妃 황제의 후궁)가 되었다. 열정적인 임금과 다재다능한 후궁이 만나 춤추고 노래하며 태평성대를 가장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간신들이 조정에서 혼란을 일으키도록 방임했다. 결국 야심만만했던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군대가 단번에 당조(唐朝)의 수도인 장안까지 이르렀다.
당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와 문무백관을 이끌고 피난을 갔다. 그러나 마외파(馬嵬坡)에서 많은 대신들과 병사들의 핍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양귀비를 죽여 군심(軍心)을 달래야 했다. 나중에 반란군을 격파하고 강산을 되찾지만 당조(唐朝) 역시 이로 인해 쇠퇴해졌다. 당 현종은 아들인 숙종에게 제위를 양위한 후에도 시종 양옥환을 잊지 못하고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다.
션윈 무용극은 기본적으로 실제 역사와 일치한다. 당 현종과 양옥환의 이야기가 역사상 혼군(昏君 어리석은 임금)이 미색에 집착한 다른 이야기들과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현종이 비록 안사의 난을 겪긴 했지만 나라가 망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역대로 호색한 많은 혼군들은 자기 몸뿐만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결말을 맞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당사자들의 증거는 없고 대부분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혼군이 미인을 사랑한 뻔한 이야기가 시인의 오묘한 붓 아래에서 널리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문장으로 변해 천고(千古)에 유전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또한 이 문장을 통해 더욱 애틋해졌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다정(多情)과 다욕(多慾)은 수련인에게 모두 좋지 않다. 당 현종의 다정(多情)은 이지를 상실해 좋고 나쁨을 구별할 능력을 잃게 만들어 이리를 집안으로 끌어들였고 결과적으로 나라는 피폐해지고 미인을 죽게 했다. 그는 백발이 창창하게 늙은 후에도 여전히 양옥환과 너풀너풀 춤추고 싶은 마음이 일었는데 욕망은 자신이 이미 늙고 허약해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허리를 숙이려다 허리가 뒤틀리고 만다. 미인은 그가 이미 마음은 있어도 힘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를 버리고 떠난다.
당 현종의 끊이지 않는 오랜 한(恨)은 단지 만족하지 못한 정욕(情慾)으로 인한 탐욕의 정일 뿐이니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속인들도 “마흔에 욕심이 많으면 대세는 이미 지났고 쉰에 정이 많으면 닭이나 개까지 불안하게 한다.[四十多慾,大勢已去;五十多情,雞犬不寧]”라고 했다.
즉 사람이 마흔이 되면 신체는 이미 내리막길이 되고 비록 욕망이 많다 한들 대세는 이미 지나갔으니 청년처럼 정력이 왕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욕망을 줄이거나 심지어 끊어야 한다. 또 쉰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식이 있거나 심지어 손주가 태어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 안정적인 만년을 즐긴다. 만약 이 나이에도 여전히 애정과 사랑을 말한다면 이는 마치 말벌 집을 건드리는 것과 같아서 자녀와 친척 및 친구들까지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즉 노년의 즐거움과 평온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당 현종의 이야기에서 내가 이렇게 큰 감촉을 느낀 이유는 바로 이 속담에 대해 깊은 감수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찍이 소위 수련인이라는 두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쉰이 넘었지만 남자가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모두 이 사실을 알고 극력 저지했지만 당사자들은 오히려 듣지 않았다. 정말이지 닭이나 개까지 불안하게 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다 나빴다 반복하면서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발정념 과정에 이 유부녀의 모습이 바로 나찰귀(羅刹鬼)의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붉은 비단 띠를 두르고 녹색 얼굴에 송곳니를 한 아주 추악한 모습이었다. 남자의 몸에서는 파룬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두 사람의 상황을 보고 무척 조급했지만 두 사람의 집착이 너무 심해서 외부인이 아무리 권고해도 설득할 수 없었다. 부디 그들이 당 현종 이야기를 보고 계발을 얻어 정욕에 통제당해 큰 재앙을 초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늦으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당 현종이 피난 가다 마외파에 왔을 때 션윈 무용극의 배경은 도처에 봉화가 피어오르는 강산이 나타난다. 이는 사실 우리 수련인들에게 우리가 정욕에 사로잡혀 난(難)에 처했을 때, 우리 자신의 상응하는 천국세계에서도 도처에 봉화가 피어오르고 산하(山河)가 만신창이가 됨을 의미한다.
과거에 이런 심득 체험 글이 많았는데, 수련인의 심태가 좋지 않아 마성(魔性)의 통제를 받을 때, 자기 천국 중생들이 모두 마귀의 공격을 받는 것을 보았고 천국은 어두침침해서 빛이라곤 없고 온통 어둠뿐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수련인이 자신의 부족을 알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해 정념(正念)이 일어날 때면, 천국세계에서는 순간적으로 사악이 모조리 소멸되고 광명이 크게 나타나며 중생이 기사회생해 온통 활력으로 가득 찬다. 중생 구도의 각도에서 볼 때, 수련인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은 모두 자기 세계 생명의 존망(存亡 생존과 사망)과 대응한다.
정욕 문제와 남녀관계의 문제에 관해 또 많은 교류 문장들이 있어 이런 것들이 수련인에게 끼치는 해악을 인식하기에 충분하다.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당신이 아무리 수련을 잘해도 중생 구도를 지체한다면 아주 큰 범죄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속담을 봤을 때 정말로 마음에 와닿았다.
“마흔에 욕심이 많으면 대세는 이미 지났고 쉰에 정이 많으면 닭이나 개까지 불안하게 한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경계로 삼았으면 한다!
이상의 내용은 단지 개인의 체험일 뿐이니 참고로 제공할 뿐이다.
[역주: 션윈 프로그램에 담긴 함의는 대단히 풍부하고 다양하며 여기서 정욕의 해악을 중심으로 풀이한 것은 글쓴이 개인의 견해일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8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