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내가 《서유기》를 해석해 보려는 이유는 이 책 전체가 세인들에게 ‘수련(修煉)’이란 두 글자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또한 정신적인 층면(層面 층차와 방면)의 체현이 되는데, 주원신(主元神)과 부원신(副元神)이 협력해 수련하는 이야기다. 그 깊이와 폭에서부터 사람 마음의 근원을 직접 가리키는데, 드러내는 것이 모두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가령 수련에서 불성(佛性)과 마성(魔性)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묘미가 넘치는데 수련에서 근본 집착이 남김없이 모조리 드러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서유기》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수련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수 있다.
오공(悟空)은 여러 원신(元神)들 중 내원이 가장 높다. 얼마나 높냐 하면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아무도 근원을 찾아내지 못하는데 바로 미지(未知)의 세계에 속한다. 따라서 오공은 이 팀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데, 바로 정념(正念)의 화신(化身)이다. 그야말로 주원신 정념(正念)의 집행자라 할 수 있다. 비록 가장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주원신인 당승(唐僧)의 총애를 받지 못하며 심지어 여러 차례 긴고주를 외워 쫓겨나기도 한다. 이는 수련 중에서 사람 마음이 정념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무거운 당승은 많은 경우 선한 사람과 요괴를 구별하지 못하며 요괴는 수시로 가상(假象)을 만들어 그를 미혹시키고 함정을 파서 그가 빠지게 한다.
마치 《백골정을 세 번 치다》에서 자비심이 지나쳐 판단력을 잃고, 요괴에게 속았음에도 오공의 좋은 마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고험에 직면해서도 많은 때 세속 아녀자의 어짊(仁)으로 대할 뿐 신목(神目)의 대자비심(大慈悲心)을 닦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요정에게 미혹 당해 오공을 오해하고 쫓아내니 이는 수련인이 정념을 잃은 것과 같으니 요괴에게 붙잡히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오공은 대화보다는 몽둥이를 좋아하는 원숭이로 소통을 잘하지 못하고 고험(考驗)에 대처하는 방식도 비교적 강경해서 요정을 보기만 하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단 때려죽이려 한다. 쟁투심이 아주 강하며 일에 부딪히면 먼저 전후 인과관계와 이치를 따져 모두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지 않고 일단 주먹부터 나간다. 이렇게 취경단(取經團)이 직면한 고험에서 공동(共同)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니 각자 자기 일을 하는데 주원신과 부원신의 풍격이 너무 다르다. 이에 곧 마합[磨合 역주: 숫돌로 사물의 거친 면을 갈아서 서로 맞추는 것으로 한 팀에서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갈아 조화를 이뤄가는 과정을 상징]해야 했다.
이렇게 요정이 왔지만 취경단은 처음에 외부 세계를 처리하는 데 일치하지 못해 우선 내부 혼란에 빠지고 내부 모순이 발생했다. 이 관(關)은 불에 구워지는 상처를 입지 않고는 넘길 수 없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사단을 잘 일으키는 팔계(八戒)가 있다. 팔계가 돼지 태에 들어간 것은 절대 실수가 아니며 마땅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승 사람 마음 욕망의 화신으로 주원신의 집착을 체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팔계는 가장 문제가 많지만 오히려 당승은 그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욕념(欲念)이기 때문에 너무 많아서 버리지 못하고 잘라내지 못한다. 때문에 많은 경우 당승은 늘 사람 마음의 욕망을 수호해 정념을 잃는다. 취경단 내부에서 체현되는 것은 팔계가 무슨 일만 생기면 곧 팀을 해산해 고로장(高老莊 팔계가 살던 처갓집)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며 늘 소인(小人)의 뜻을 이루게 하고 당승의 사람 마음을 가중시켜 정념인 오공을 쫓아낸다.
다행히 또 말수가 적은 사승(沙僧 사오정)이 있다. 사승은 겉으로 보면 능력이 가장 작아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다. 또 흔히 당승과 함께 자주 붙잡혀 요정에게 얻어 맞지만 사승은 주원신 정력(定力)의 화신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고 단지 당승 옆을 굳건히 지키며 그의 정심(定心)을 돕고 심신(心神)을 안정시키며 신념(信念)을 지키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 생사관을 앞에 두고 주원신인 당승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 시작하는데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으로 찾음이다. 그럼 정념(正念)이 다시 천천히 올라와 오공의 능력이 잘 발휘되어 구원 행동 역시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다. 설령 오공이 해결하지 못해도 상관 없는데 일이 있으면 관음보살을 찾는 등 구원병을 불러올 수 있으며 팔방의 신선(神仙)들 역시 흔쾌히 동참하는데 좋은 일을 하면 자연히 각기 인과(仁果)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서유기》 이야기는 바로 우리 수련 중에서 사유 의식 중에서 정념(正念)과 사상업(思想業) 사이의 싸움이다. 매 한 걸음의 제고는 모두 하늘과 사람이 교전하는 전적(戰績 전투의 성과)이다. 이것을 의인화시켜 써낸 것인데 생생하고 흥미로울 뿐만아니라 또 아주 깊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서쪽 여행은 수련 중에서 불성과 마성의 대결, 사상의 정화와 승화, 정념(正念)이 늘 머물러 쇠퇴하지 않음, 고치에서 실을 뽑는 것 같은 사람 마음 욕망의 제거, 위험이 잇따라 나타나고 요마를 제거하는 스릴 넘치는 여행이다. 걷는 것은 심령(心靈)을 정화하며. 영혼이 자신의 본래 면목으로 돌아가게 하는 회귀(回歸)의 길인데, 그중에 만나는 고난이 서쪽 여행에서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서유기》를 이해할 수 있으면 곧 수련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0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