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
【정견망】
사랑, 우정, 가족정을 막론하고 사람의 정[人情]은 때로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너무 불안정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 모종의 이해관계 아래 있으며 늘 당신을 배신할 수 있다. 당조(唐朝) 시인 이야(李冶)의 시 《팔지(八至)》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모두 28자로 구성되어 있다.
지극히 가깝고도 먼 것이 동과 서의 방향이요
지극히 깊으면서 얕은 게 맑은 시냇물이며
지극히 높고 밝은 것이 해와 달이고
지극히 가깝고도 먼 게 부부라네
至近至遠東西
至深至淺清溪
至高至明日月
至親至疏夫妻
“지극히 가깝고도 먼 것이 동과 서의 방향이요
지극히 깊으면서 얕은 게 맑은 시냇물이며 ”
이 두 구절은 사실 일종의 복선이지만 또한 당연히 우주 이치의 표현이다. 절대적인 거리나 절대적인 깊이란 없다. 예를 들어, 사물의 거리란, 사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알의 모래알보다 작지만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오히려 천만 리에 달한다. 깊이 역시 마찬가지로 환경과 사물에 따라 역시 다르게 인식된다. 이 두 구절은 매사를 절대화해선 안 되며, 당시의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지극히 높고 밝은 것이 해와 달이고
지극히 가깝고도 먼 게 부부라네”
해와 달은 사람들이 모두 느끼고 알 수 있지만, 사실 더 먼 곳에 있는 것이 더 밝고 환하다. 단지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마지막 구절인 “아주 친하고 아주 소원한 부부”가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아버지와 아들은 가장 가깝고 부부는 가장 친하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특히 부부 사이의 정은 애정이 있을 때는 가장 가깝지만, 일단 감정이 깨지고 나면 서로 원수가 된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보고 “아주 친하고 아주 소원한 부부”라고 표현한 것이다. “친함(親)”은 감정이 있을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고, ‘소원함(疎)’은 감정이 깨졌을 때는 원수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사실 사람의 감정은 아주 불안정한 것으로, 아버지와 아들도 때로는 원수처럼 될 수 있고, 부부는 더욱이 같은 둥지 속 새와 같아서 큰 난이 닥쳤을 때 누구도 누구를 신경 쓰지 못한다. 우정 역시 한 차례 타격도 견디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랑 이야기도 많고 우정이 아주 오래 지속된 경우도 있지만 이는 필경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사부님은 《홍음 4》 〈몇 사람이나 깨어날꼬〉에서 말씀하셨다.
“인정(人情)은 불안정해 오래가기 어렵도다 백 년의 영화(榮華)는 가져갈 수 없거늘”
이것이 바로 사람 생명의 특징이다. 사람이 사람을 보면 아름답게 보이지만 신(神)의 눈에는 오히려 가련한 존재다. 사람은 오직 수련해서 원만한 후에야 비로소 이 이치를 똑똑히 알 수 있다.
파룬따파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발표된 후, 사람 존재의 의미는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임을 투철히 밝혀주셨다. 왜 아직도 어떤 사람은 사람의 정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가? 이는 가장 비참한 일이 아닌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