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한번은 몇몇 동수들이 함께 교류하면서 병업관(病業關)에 대한 체험을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당시 자신의 병업이 대단히 심각했지만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발정념을 해서 극복했다고 말했다. 또 어떤 동수들은 다른 동수들이 병업관을 넘은 사례를 말하면서 어떻게 대단하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관건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은데 왜 병업이나 세상을 떠난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동수에게 누락이 없다면 어찌 병업관이 나타나고 어찌 세상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사악이 어떻게 미쳐 날뛰든지, 당신이 만약 결함이 없으면 그것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각지 설법 14》〈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이렇게 여러 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리가 보았다시피 동수에게 어떤 마난이 나타나든 다 이유가 있는 것으로 모두 인과(因果)가 있으니 절대 그 원인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결과만 말하면서 ‘누락’을 찾으려 하다면 마난이 또 나타날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일찍이 차에 치여 멀리 날아간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정념이 아주 강해서 마음속으로 “괜찮아, 틀림없이 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고 외쳤다. 바닥에서 기어 일어난 후 나는 운전사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그냥 보내주었다. 사고가 난 원인을 찾아보니 나는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한번은 한 동수가 내게 말했다.
“차에 치여 발목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해 병원에 가서 치료를 좀 받고 집에 갔는데 빨리 회복되었고 가해자에게 배상을 청구하지도 않았어요.”
그녀가 이 말을 할 때 나는 일념(一念)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이런 일을 만나면 나도 그녀가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바르지 못한 일념이 교통사고를 불러온 것이다. 만약 당시 내가 이 누락을 깨닫지 못했다면 아마 두 차례나 세 차례 교통사고를 당했을지 모르는데, 구세력이 이치를 잡고 “당신이 이걸 구하지 않았는가? 당신에게 줘야 한다.”라고 했을 것이다.
이런 염두는 사(私)인데 자신이 스스로에게 일을 배치해 위덕이 좀 있게 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가끔 동수들의 글을 읽다 보면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쉽게 생기는데 이런 생각이 바로 누락이며 쉽게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염두가 있을 때면 당장 제거해야 한다! 구세력이 구실을 잡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동수는 세 가지 일에 아주 정진했는데 한번은 길을 걷다 차에 치였다.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골반이 골절되고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을 해서 아주 빨리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 동수는 교류할 때 교통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정념이 어떻게 강했고 어떻게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는지만 언급했다. 현장에 있던 동수들도 아무도 어떤 원인으로 교통사고 생겼는지 물어보지 않고 모두 듣기만 했다.
나는 동수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이 정말 감동적이긴 하지만 교통사고가 난 원인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 일이란 없으며 원인을 찾지 않으면 교통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 구세력이 이 누락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만 일이 지나갈 것이다.
또 어떤 동수는 다섯 번이나 차에 치였는데 그때마다 늘 정념이 아주 강했고 몸도 빨리 회복되었다. 그런데 왜 차에 5번이나 치였을까? 원인은 무엇인가? 비슷하게 위험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면 반드시 원인이 있으니 엄숙하게 한번 찾아보아야 한다. 정말 찾을 수 없다면 사부님께 점화(點化)해달라고 청해야 한다. 이런 일은 모두 목숨을 앗으러 온 것이다. ‘누락’을 찾아내지 못하고 ‘원인’을 해체하지 못하면 위험이 늘 존재할 수 있다.
또 한 노동수가 있었는데 세 가지 일에 매우 정진했다. 최근 몇 년간 세 차례나 납치되어 구금당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정진하는 사람은 상태가 점점 더 좋아져야 하는데, 어찌 감히 사악이 감히 당신을 세 번이나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배후에는 반드시 당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누락이 있을 것이다.
한번은 몇몇 동수들이 이 일을 당한 동수의 누락을 분석하는데 한 동수가 한 가지 일을 말했다.
“이 동수가 전에 사이트에 글을 발표했는데, 많은 동수들이 보고 현지의 문제이고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칭찬하는 이들이 있자 이 동수는 좀 환희하고 과시하는 표정이 있었고 남들이 몰라줄까 두려워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그 이유가 아닌가?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과시하고, 자신이 비범하며, 대단하다고 뽐내는 것이니 이는 큰 누락이 아닌가, 구세력이 이런 사람을 놓아줄 수 있겠는가? 또 주변 동수들의 무책임한 칭찬도 누락인데 구세력이 박해할 이유가 될 수 있다. 글을 발표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마땅히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며 희희낙락하지 말아야 한다. 또 주위 동수들도 수구(修口)해서 동수를 위해 책임지고 동수의 안전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 수구하지 않고 도처에서 말해 악경이 안다면 구금하지 않겠는가!’
매 사람마다 모두 묵묵히 대법을 실증하는 많은 일을 하는데 아무리 많이 했어도 모두 사부님의 노고이다. 사부님의 보호와 점화 및 도움 없이 우리가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겠는가? 언제든 늘 사부님을 실증하고 대법을 실증해야지 자기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어선 안 된다.
병업관이든 다른 관이든 마땅히 ‘누락’을 찾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누락을 찾는 과정이 바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제고하는 과정이자 마난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얕은 인식이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8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