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사람들이 시를 쓸 때, 모두 그것은 자신의 경지[境界]에서 비롯된다. 수련인에게도 하나의 경지 문제가 있다. 근대 시인 왕국유(王國維)의 《인간사화(人間詞話) 7칙(七則)》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경은 풍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희로애락 역시 사람 마음속의 한 경지다. 따라서 진짜 풍경을 쓰고 진짜 감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경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지가 없다고 한다.(境非獨謂景物也。喜怒哀樂,亦人心中之一境界。故能寫真景物、真感情者,謂之有境界。否則謂之無境界。)”
사실 사람이 무엇을 쓰거나 무엇을 하든, 심지어 수련에도 모두 하나의 경지가 있다. 수련인들은 그것을 층차(層次)라 부른다. 좀 더 멀리 말하자면 자신이 내원한 곳과 관련이 있다.
시인이 말하는 경지[境界]란 주로 글쓰기 문제와 관련이 있다. 시인이 보기에 풍경 자체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가 풍경을 글로 쓰는 진실한 목적은 바로 자신의 희로애락, 즉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표현해내면 곧 좋은 문장이 된다. 물론 좋은 문장은 반드시 자신의 좋은 심정과 좋은 상태에서 나올 것이다.
우리가 고인(古人)의 시사(詩詞)를 보면 예전 사람들의 소탈하고 명리에 집착하지 않음과 당조(唐朝) 시인의 활달함, 송조(宋朝) 시인의 섬세함, 청조(淸朝) 시인의 복잡함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지의 크기다.
마음이 협소하면 경지 역시 작아진다.
많은 대법제자들 일찍이 각 분야에서 탁월했지만 수련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심지어 유리실소(流離失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의 글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함에서 내원한다. 이는 진정으로 큰 경지이자 자비심의 표현이다. 대법제자들의 문장에서 우리는 평화와 겸손, 선량과 인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경지다.
시인이 경지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이미 아주 대단한 것이다. 이 또한 오늘날 대법이 전해지기 위한 문화를 다져준 것이다. 오직 오늘날 대법제자들만이 경지라는 두 글자를 사상 유례없는 높이까지 제고시킬 수 있다. 글쓰기가 그렇고 수련도 그러하며 심지어 업무에서도 최고 가장 좋은데 그야말로 각 업종의 진정한 개척자가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사실 천상에서 내원한 신(神)으로 법(法)을 얻으러 왔다. 대법을 수련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장 행운인 것이다. 그들의 글쓰기와 생활은 모두 높은 곳에서 내원한 표현이며 천상에서 내원했기에 자연히 경지가 높다. 물론 또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0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