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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운 깨달음

요녕 대법제자 화일(華一)

【정견망】

나의 가장 깊은 깨달음은 바로 《전법륜》 《홍음》과 신경문을 외우면서 지혜가 많이 열렸다는 것이다. 마난에서 관(關)을 넘기는 중에 법을 외우는 것 역시 자신에게 정념(正念)과 신심(信心)을 더해주었다.

다음은 최근 수년 동안 법을 외우면서 얻은 깨달음의 일부다.

1. 《전법륜》 외우기

내가 처음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이전이다. 당시 근무 환경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여가 시간을 활용해 법을 외웠다. 법을 외울 때면 늘 눈물이 흘렀다. 내 기억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법륜》〈수련은 전일해야 한다〉의 다음 대목을 외울 때였다

“누구도 나를 알아낼 수 없으며, 누구도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낼 수 없다. 그들이 나의 사상활동을 요해(了解)하고자 했기에, 그들은 나의 동의를 거쳐서, 어느 한 단계 나의 사상을 그들과 연결했다. 연결한 후 나는 좀 견뎌내기 어려웠다. 나의 층차가 얼마나 높든지 또 나의 층차가 얼마나 낮든지 간에 나는 속인 중에 있고, 나는 아직 유위(有爲)적인 일, 사람을 제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마음은 사람을 제도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마음은 어느 정도로 고요한가? 고요하기가 두려울 정도까지 이르렀다. 당신 한 사람이 이런 정도로 고요하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네댓 사람이 거기에 앉아 모두 그런 정도로 고요하고, 마치 깊은 못의 고인 물(一潭死水)과도 같이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들을 감수(感受)하려고 해도 감수할 수 없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정말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운, 그런 기분을 느꼈다. 우리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하며 감각할 수 없는 것으로서, 완전히 무위(無爲)이며 텅 빈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이 단락 법을 외웠다. 나는 두려울 정도로 고요하다는 것이 대체 어떤 경지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 그것은 각자(覺者)의 경지인바, 각자의 경지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라 이해했다. 당시 내 수련 층차에서 ‘고인 물’과 ‘무위(無爲)’ 배후의 내함(內涵)을 깨달았고 마음이 너무 시큰거려서 줄줄 눈물을 흘렸다.

또 한번은 《전법륜》에서 다음 단락을 외웠다.

“예를 하나 들자면, 어느 날 직장에서 집을 분배하는데, 상사가 말했다. “집이 없는 사람은 모두 와서 조건을 내놓도록 하라. 개인적으로 어떻게 집이 필요한지 말하라.” 제각기 자기 말을 하지만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상사가 보니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곤란해 마땅히 그에게 집을 줘야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안 된다. 집을 그에게 주어서는 안 되고 나에게 주어야 한다. 나는 어떠어떠하게 집이 없다.” 그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이 가져라.” 만약 속인이 본다면 이 사람은 바보다. 어떤 사람이 그가 연공인(煉功人)임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 연공(煉功)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데, 당신은 무엇을 가지려고 하는가?” 그가 말했다. “남들이 무엇을 가지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가지겠다.” 사실 그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으며 상당히 똑똑하다. 바로 개인의 절실한 이익상에서 그는 곧 이렇게 대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되묻는다. “지금의 사람이 무엇인들 가지지 않겠는가?” 그가 말했다. “땅 위의 돌은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가지려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면 나는 그 돌을 줍겠다.””

내 마음은 단번에 감동했는데 이것은 평범한 속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또 울었는데 이것은 어떤 경지인가? 그는 이미 인간 세상의 이익을 중시하지 않는데 그것도 과거 소도(小道) 수련임에도 해낼 수 있구나!

당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데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해낼 수 있을까? 마땅히 그가 한 것보다 더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대법수련 중에서 해낼 수 있는 것은 다 이렇다. 내가 아는 한 대법제자는 정말로 해냈는데 어떤 동수는 원래 살던 집이 단체 법학습에 편리하다며 직장에서 분배한 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그때 내가 아직 《전법륜》을 다 외우지 못한 상태에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박해 초기 몇 년 나는 법 외우기를 내려놓았다. 2007년 소매일을 그만 두자 시간이 생겼다. 나는 생각했다.

‘《전법륜》을 전에 제5강까지 외우다 몇 년간 중단했으니 이어서 다시 외우자.’ 마침 어떤 동수가 법을 외우고 있어서 우리는 함께 힘을 내서 《전법륜》을 한번 외웠다. 이어서 반년 넘는 기간에 두 번째로 외웠다. 법 외우기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또한 고생을 겪어야 하는데 일단 앉으면 곧 한 시간 정도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때로 관념이 나오면 외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견지했다.

한번은 제5강 <사법연마>를 외웠는데 먼저 읽고 나서 외웠다.

“폭파되어 죽지 않은 것들은 원래의 그런 특성, 그런 이치를 품고 이 우주 중에서 행사한다. 새로 세워진 이 우주는 새로운 우주특성, 이 이치에 따라 행사한다. 그래서 폭파되어 죽지 않은 것들은 우주의 이치를 교란하는 마(魔)가 된다.”

갑자기 법 배후의 내함이 내게 주어졌고 나는 깨달았다.

‘구세력이 품고 있는 낡은 이치가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저애하고 있구나.’

당시 감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데 신체에 뜨거운 흐름이 위로 용솟음치는 것 같았고 책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또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지나가는 굴욕을 당하는 부분을 외우면서 한 차례 관을 넘으면서 정말로 “한신의 대인지심(大忍之心)”을 떠올리자 참아낼 수 있었다. 검은 소굴에서 한 시간 낮잠 시간에 나는 대부분 잠들지 않고 발정념하거나 법을 외웠다. 어디까지 생각나면 거기까지 외웠다.

뼛속까지 스면든 정(情)을 제거할 때 늘 《정진요지 2》〈길〉에서 “수련이란 곧 어려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든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든지, 생사에 관계되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여전히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을 확고하게 걸어가면서 인류사회 중의 어떠한 일도 수련의 길에서 행보를 교란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를 외웠다. 그러면 곧바로 정념(正念)이 올라왔다. 단지 마음에 법이 있기만 하면 곧 곤경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다.

세 번째 외우면서 제4강까지 외웠을 때 법 공부 소조의 한 동수가 함께 《전법륜》을 외우자고 제안했다. 1강부터 시작해서 매일 한 단락씩 외웠는데 지금은 이미 제6강을 외우고 있다. 법 공부 소조에서 《전법륜》을 일단 외우기 시작하자 몇 사람이 함께 두 번을 외웠다. 그 후 또 개별적으로 두세 번 외었다. 나는 외우는 것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해 매번 늘 글자를 빼먹을 때가 있는데 또한 마음 씀이 충분하지 못했다. 법을 외우면서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으면 외울 수 없는 것으로 법을 외우고 법에 따라 하지 않아도 닦지 않는 것이다.

2. 《홍음》을 외우고 시를 배우다

나의 첫 번째 《홍음》은 1999년 직장에서 세뇌반을 운영하던 시절 손으로 베껴 쓴 책으로 사무실에서 매일 외웠다. 나는 <높은 곳은 쓸쓸해> <연귀성과> 두 편을 외울 때는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법(法)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좀 감성적으로 인식했다. 마침내 사부님을 찾았다고 느꼈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시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다.

박해가 가장 심했던 그 시절, 나는 《홍음 2》의 <정념정행><매화><두려울 것 뭐냐>를 암송하곤 했는데, 정념(正念)과 신심(信心)이 많이 강화되었다. 《홍음 3》은 내가 가장 유창하게 외우는 것으로, 당시에는 거꾸로도 유창하게 외울 수 있었고 어느 한 구절을 말하면 바로 어느 시인지 알았다. 지금은 다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홍음》 여섯 권을 다 외웠다. 《홍음 4》, 《홍음 5》, 《홍음 6》 대부분 아침 6시 발정념 후 7시 넘어 아침을 할 때까지 외웠다. 내 심태는 법을 외우는 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태가 좋을 때는 늘 한 시(詩)의 내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두 번을 읽으면 외울 수 있었다. 갈수록 더 외우고 싶어졌다. 잠시만 공력을 들이면 몇 편도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심태가 좋지 않을 때는 하나의 시를 외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또 기억하지도 못했으며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편의 시사(詩詞)에서 ‘무신론’, ‘진화론’, ‘현대관념 행위’에 대해 쓰셨다. 시사를 외우는 과정에서 나는 똑똑히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관념들을 타파할 수 있었다.

가령 《홍음 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을 외우면서 나는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대조해 보았는데 평소의 공리공담은 착실한 수련이 아니다.

나는 또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 문화의 것들을 많이 찾아냈다. 법을 얻은 초기에 사부님께 일종 은혜에 감사함을 느꼈고, 법 공부와 법을 외우면서 애초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려는 홍서대원(洪誓大願)과 짊어진 책임을 똑똑히 알았으며 내가 세상에 온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사를 외우면서 늘 눈물이 나왔고 법의 내함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한마디로 법을 외우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 세 권의 《홍음》은 자주 복습하지 않아 잊어버린 것이 많았는데, 하지만 외운 적이 있어서 다시 암송하면 빨라질 것이다. 우리 법 공부 소조에서는 저녁에 다시 《홍음 6》을 외우기 시작했다.

6권의 《홍음》을 외우다 보니 마치 지혜가 많이 열린 것처럼 나는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매년 명혜망에 축하 카드를 보낼 때면 늘 한 수의 시를 적는다. 비록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내 시를 본 동수들이 압운(押韻)도 좋다고 한다. 마치 시나 문장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일부 영감은 법을 외우면서 온 것이다.

3. 법 공부 소조에서 법 외우기

우리 지역 몇몇 법공부 소조는 《홍음》과 신경문을 외우고 또 《전법륜》을 외운다. 한 동수는 《전법륜》을 이미 30여 차례나 외웠다. 어느 날 몇몇 동수들이 모여 이 동수더러 《전법륜》 〈부체〉 단락을 외우게 하자 단숨에 외웠다.

또 80대의 한 노동수는 《홍음》 6권을 능숙하게 외울 수 있고 또 《전법륜》도 외울 수 있다. 늘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한다. 매년 축하 카드를 보낼 때면 이 노 동수가 늘 한 편의 시를 바친다.

또 한 남자 동수도 잘 외우는데 《홍음》 6권을 날마다 외운다. 아무 구절이나 말해도 어느 시에서 나오는지 아는데 시도 잘 쓴다. 우리 동수들은 차를 타고 갈 때면 함께 법을 외운다.

신경문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험악을 멀리하라》, 《대법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가 발표된 후 나는 곧 외우기 시작했다. 《험악을 멀리하라》를 외우는데 “‘사람’으로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대법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 ‘사람’이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수련 중의 ‘사람’이 겪는 불공평과 ‘사람’이 사악에게 박해받음은, 사부가 당신을 보호하고 있으며 동시에 당신을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를 외울 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흔히 사람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 마음으로 법을 대하는데 박해하는 것은 사람이고 신(神)의 상태는 사악이 박해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동수들이 법을 외울 때 모두 자신의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 지역 동수들은 법 공부와 법 외우기를 중시해서 서로 정체로서 비학비수(比學比修)한다. 법을 얻은 초기 우리는 늘 《진수(真修)》란 한 편의 경문을 외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수(真修)제자여,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은 수불수도(修佛修道)하는 법(法)이었건만, 당신들은 속인 중의 이익이 손실됨으로 인해 오히려 나에게 괴롭다고 하소연할 뿐, 자신이 속인 중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함에 대해서는 괴로워하지 않는데, 이것이 수련인가?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은 초상적인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관이다. 진수제자는 사람마다 모두 넘어야 하는바, 이것이 수련자와 속인의 경계선이다.”

나는 27년 넘게 수련했지만 속인 마음이 상당히 많은데, 사부님께서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잘 깔아 놓으셨으니 나는 발걸음을 빨리해 사부님의 진수제자(真修弟子)가 되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