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新生)
【정견망】
오늘 아침 동수의 글을 정리하면서 동수가 어떻게 사람 마음을 제거했는지에 대한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을 보았다. 이 동수는 수년 간 늘 가정에서 가족들과 모순이 발생한 후 안으로 찾아서 많은 사람 마음을 찾아냈고 그런 후 이런 사람 마음들을 어렵사리 닦아버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집에서 또 일부 모순이 나타났다. 동수는 같은 방법으로 다시 사람 마음을 찾아내 그것을 또 닦아버렸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번 나타났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이런 사람 마음의 집착을 닦아버렸다.
동수에게 나타난 상태를 보고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의 수련 과정을 회상해 보았다. 나 역시 동수와 같지 않은가? 20여 년 수련의 길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끊임없이 찾아낸 사람 마음을 제거했지만 어떤 사람 마음은 또 끊임없이 다시 올라왔다. 한참 생각하는데 갑자기 사부님의 한 구절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사(下士)는 사람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네”(《홍음 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
그렇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수련한 지 20여 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사람 마음이 이렇게 많은가?”
“그래선 안 된다!”
“나는 하사(下士)인가?”
“그럴 순 없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사람 마음이 이리 많은가?”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
계속 안으로 찾아보니 사람 마음을 없애는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20여 년 수련의 길에서 나는 비록 아주 정진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했다고 느꼈지만 늘 수시로 많은 사람 마음의 집착이 나타나서 수련이 아주 고생스럽고 또 아주 피곤했다. 오늘은 이 마음이 나타나고 내일은 저 마음이 나타나는데 끊임없이 다양한 각종 사람 마음이 변해가면서 나타났다. 마치 수련에서 이 마음을 잘라내면 저 마음이 오는 것 같은데 정말로 마치 부추를 자르는 것 같아서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며칠 전 《정진요지》〈뿌리를 캐다〉라는 경문을 공부하다 단번에 자신에게 사람 마음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원인을 알았는데 그것은 바로 각종 사람 마음의 뿌리를 파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똥구덩이에서 악취가 나오는데 나는 단지 냄새를 처리하는 데만 공력을 들이고, 조금 나오면 조금 청리(淸理)하고 다시 나오면 다시 청리했는데 끊임없이 반복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았다. 이것은 부추를 자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오직 부추 뿌리가 남아 있는 한 위에 나오는 부추잎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수련인의 사람 마음은 만약 뿌리에서부터 캐내지 않으면 그것은 끊임없이 각종 사람 마음의 집착이 자라게 할 것이다.
최근 며칠 매번 사람 마음이 나올 때마다 나는 그것을 배척하거나 제거하기에 급급하지 않고 그것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가령 수구(修口)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날 때면 나는 우선 수구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겨냥한 게 아니라 더 깊이 찾아 수구하지 못하는 근원(당 문화)이 무엇인가 찾았고 또 근원의 근원(현대관념 행위)을 찾았다. 또 근원의 근원의 근원은 무엇인가?
최후에 내가 찾아낸 것은 바로 사람의 본질을 구성하는 ‘사(私)’였다. 거꾸로 말하면 ‘사’가 없다면 현대관념이 형성될 수 없고 현대관념이 없다면 이런 당 문화의 오염도 없었을 것이며 이런 당 문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배후에서 남을 말하지 않고 수구를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차례 찾아낸 후 나는 명백해졌는데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기 어려운 게 아니라 그것을 닦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찾아낸 후 지금 나는 훨씬 가벼워졌다. 비록 감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미 이런 사람 마음이 존재하는 모든 근원을 찾아냈고 그것들이 모두 ‘사’에서 내원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치를 똑똑히 알고난 후 나는 생각했다.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 더는 ‘부추’ 자르듯 해선 안 되며 ‘파’를 뽑는 것처럼 그것의 뿌까지 뽑아내 이런 사람 마음에 그 어떤 후환도 남겨서는 안 된다. 나는 여기서부터 개변하고 여기서부터 바르게 닦을 것이다. 이때 나는 사존께 제자의 정념을 가지해 주시고, 제자에게 위타(爲他)한 정념, 법을 실증할 수 있는 정념을 주시며, 위사위아(爲私爲我)하고 자아를 보호하며 자아를 실증하는 낡은 이치의 변이된 사유를 포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은 일체 중생을 위하고 일체 중생을 구도하는 것임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사람 마음은 또 중생을 구도하는 정념 앞에서 갈수록 작게 변했고 사람의 사유도 신(神)의 사유로 변했다. 나는 사람 마음을 찾아내고 닦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부추’ 자르기가 아니라 ‘파’ 뽑기임을 찾아냈다. 나는 아주 가벼워졌다! 비록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나는 명백해졌다. 이를 글로 써 내어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개인 인식이니 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3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