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 대법제자 초범(超凡)
【정견망】
아래에서 밀린 월세 문제에서 내가 법 공부를 통해 점차 법리를 깨닫고, 법리의 인도하에 점차 사람 마음을 제거한 과정을 적어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신기를 견증하고자 한다.
내게 셋집이 하나 있는데, 중개사가 노동자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현장 감독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 건설 노동자들에게 2.5칸 집을 임대해줬는데, 무려 20여 명이 살면서 집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룻바닥에 그을린 자국이 있고, 온통 얼룩으로 뒤덮였는데 화장실과 부엌은 끔찍할 정도로 더러워서 청소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때문에 나는 이 사람들에게 임대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집을 임대해달라고 고집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나는 수련인이니 내가 만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 모두 배치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구원하도록 배치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집을 빌려 주기로 했다.
하지만 첫 달부터 월세가 밀렸고 열흘이 넘도록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집을 찾아가서 한 노동자에게 감독님에게 연락해 며칠 내로 집세를 입금해 달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설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월세는 여전히 안 들어왔다. 내 생각에 아마 사장님이 돈을 구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필경 지금은 돈 벌기가 쉽지 않다.
나는 더 재촉하지 않았다. 일에 부딪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내 이익심을 내려놓자. 그에게 돈이 생기면 입금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달이면 대보름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이번에는 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입금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을 찾아가 다른 직원에게 감독에게 다른 집을 구해보라고 전달해 달라고 했다. 당신 사장님이 이미 두 달 동안 집세를 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니 이번달 월세는 필요 없으니 수도 전기세만 결산하고 나가라고 했다. 그는 감독에게 말해 내게 전화를 걸라고 전달 하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사장은 여전히 전화조차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월세도 내지 않고 이사도 가지 않다니! 그럼 공사가 끝날 때까지 내 집을 강제로 점거하고 나중에 또 다른 사람에게 전매하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수련인이니 속인처럼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없다. 이에 마음 속에서 이 일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속으로 수도 전기세로 몇만 위안의 손실을 입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괴로웠다. 억울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그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의 차량 출입을 막고 상대방과 싸우는 방법으로 해결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니 나는 수련인이니 일에 부딪혀 선(善)하고 참아야(忍) 하니 그럼 나는 참자. 하물며 나는 또 두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고 속인의 방법을 채용하지 않았으며 수련인의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비록 돈을 빌려주었으면 받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그것은 속인의 이치다. 나는 이 일은 손해를 두려워하고 돈에 대해 집착하는 내 마음을 제거하라는 것임을 알았다.
내가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바라보니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나를 바라보시며 내가 돈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가련한 눈빛으로 보고 계셨다.
아무 소식도 없고 그렇다고 이사를 나간다는 전화도 없이 하루하루가 또 지나갔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다.
‘만약 이 사람들이 내 집을 계속 점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대(轉貸)하면 어떻게 할까?’
내 생각에 이 사람들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집을 파는 것뿐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또 수련인이니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기에 마땅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부면(負面)적인 생각을 가져선 안 된다.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개의치 않는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는”(《전법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얼마만큼 잃으면 얼마만큼 얻는다. 나는 계속해서 법을 외우며 이런 좋지 않은 사유를 없앴고, 자신에게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알려 주었다.
어느 날 법을 공부하던 중 점화가 있었다. “오행 중에 있지 않고 삼계 밖으로 벗어나다”(《전법륜》). 그렇다, 나는 삼계를 벗어나려는 생명인데, 어찌 이렇게 돈에 집착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면 어떻게 사람을 떠날 수 있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염두가 들었다.
‘지금 건설업이 이렇게 침체 되어 있는데, 아마 설이 지나면 일이 멈출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할 일이 없으면 이사를 나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느 날 공사 현장을 지나가다 공사가 다시 시작된 것을 보았을 때 화가 났다. 공사를 다시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월세를 내지 않았다. 현장 감독을 비난하는 말들이 떠올랐고 내가 못 받은 돈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사람의 생각과 신의 생각이 교차되었고 일념(一念)은 사람 생각이었다 일념은 또 정념이었다.
나는 또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전법륜》)라는 말이 생각났다. 잃는다면 잃자, 잃는 것은 돈이고 얻는 것은 공덕(功德)이니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좋은 일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에 그것을 심성을 제고하고 소업(消業)하며 공이 자라는 좋은 일로 간주했다.
그날 밤에 그들을 찾아가 이사 가라고 말할까 고민하다 결국 동수 집을 가려고 전동차를 타고 갔는데 실수로 길가의 경사면에 부딪혔다. 그래도 제때에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계속 올라갔더라면 경사가 갈수록 높아지고 길도 점점 좁아져서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 나는 이번 교훈을 받아들여 심성을 잘 지키고 이 관을 넘겨야 한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홍음》) 이 관(關)은 돈에 대한 나의 집착심을 겨냥해 온 것이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으면 이 관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계약 만료 후에도 그들이 떠나지 않을 거라는 나의 두려움이 있자 사부님께서 또 나를 점화해주셨다.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이런 현상이 다시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 한 몫 빚을 치른 후에는 그것이 다시 와서 교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은 수련함이 비교적 빠르고 층차의 돌파 역시 비교적 빠르기 때문이다.”(《전법륜》)
나는 그들이 오랫동안 월세를 체납하지 않을 것이며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일거사득(一擧四得)의 법리를 점화해 주셨는데, 나는 이것이 나의 업력을 전화시킬 기회로 아주 좋은 일임을 깨닫고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어느 날 오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번 마난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보다 낫고 내 심성을 제고하고 법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자신의 업력을 제거할 수 있음을 느꼈다. 이날 저녁 문자가 와서 보니 감독이 석 달 치 월세를 입금했고, 이번 달 월세도 미리 주었다. 이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안도감과 법을 실증한 기쁨을 느꼈다. 나는 속으로 대법의 엄격함과 엄숙함을 깨달았는데 내 심성이 제고되었을 때 이 일이 아주 잘 해결되었다. 돌이켜 사존의 자비하신 보살핌과 줄곧 점화해 주신 것을 생각하니 진심으로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렸다. 사존의 법상 앞에서 3대의 향을 올리자 사존께서 흐뭇한 눈빛으로 보셨다.
이 한 관(關)을 통해 나는 마난에 직면했을 때 수련의 이치로 문제를 생각해야 하며,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봐선 안 되며, 상대방이 어떻게 나쁜지 생각해서도 안 되며, 이 난은 자신의 마음을 겨냥해서 온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이때 우리는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법을 공부할 때 깨달은 법리(法理)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넘어갈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2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