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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욕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청진(清塵)

【정견망】

어렸을 때 성경에서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善惡果)를 먹고 아담도 먹게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후 두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예전처럼 벌거벗고 돌아다닐 부끄러움을 느껴 나뭇잎으로 은밀한 곳을 가렸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때 바로 사람의 색욕심(色慾心)이 올라왔고, 남녀의 구별이 생겼으며 성(性)에 대한 인식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비록 행동으로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았어도 성적으로 끌렸다면 바로 마음이 움직인 표현이다.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모두 요구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표현인데 왜냐하면 고급생명(高級生命)·각자(覺者)는 금강부동(金剛不動)하기 때문이다.

색욕심이 행동을 지배하면 곧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만지려 하는데, 무심한 척 가장하고 열정적으로 두드리는 것은 모두 상대방에게 뻗친 색욕의 표현이다. 비록 상대방에 대해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은 이미 그 움직이는 마음이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온 것을 안다. 단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대방에게 무심한 척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이미 욕망을 끊었고 특히 그런 종류의 것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말 자체가 아직 욕망을 끊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당신이 마음에서 배척한다면 그 배척 자체가 색욕 때문에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닌가? 당신이 배척하는 힘이 더 클수록 도(道)에서 더 멀어진다.

끌림과 배척은 일체(一體)인바 단지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층차에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욕망을 끊으려면 반드시 이런 대립과 분열 의식에서 뛰쳐나와야 하는데 남녀의 구별이 없고, 다른 사람을 끌어당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또한 배척하거나 혐오하는 정신적 소모가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또 하나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색욕심이 있는데 바로 어떤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비정상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관적으로 억측하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가? 그 남녀에게 문제가 있든 없든, 자신에게 그런 색욕심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남녀에 반응해 나온 판단이다. 만약 자신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곧 표상(表象)에 따라 색욕이란 사유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그런 생각조차 없을 것인데 그래야만 진짜 청정(淸靜)이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견정〉에서 우리에게 “마음을 닦아 욕망을 끊고 지혜를 밝혀 미혹되지 않음은 곧 자신의 책임이다.” 가르쳐주셨다. 나는 “마음을 닦아 욕망을 끊는 것”의 시험은 “지혜를 밝혀 미혹되지 않음”을 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만약 마음이 아직 색욕 속에서 맴돌고 있다면 바르게 돌든 반대로 돌든 반드시 무명(無明)과 미혹 속에 있는 것으로 사정(私情 사사로운 정)과 색욕을 초월한 지혜란 있을 수 없다.

수련인은 이 방면에서 반드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자신이 어떤 생각을 움직였는지 감시해야 한다. 만약 우리 몸과 마음에서 상술한 반응이 나타난다면 그럼 자신의 색욕심이 여전히 깨끗이 제거되지 않았음을 설명하니 반드시 사념(邪念)을 잘라버리고 내심의 성결(聖潔)과 청명(淸明)을 지켜야 한다.

개인의 작은 인식이니 바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