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수련생
【정견망】
우리는 주의식(主意識)을 수련하기에 주의식이 반드시 똑똑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해한 것은 주의식을 느슨히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는 천기를 알려주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우리 수련은 모두 사부님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할 수 있고 배후 요소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처리해 주신다. 하지만 제자는 어느 것이 좋지 않은 것인지 똑똑히 갈라야 하는데 어떻게 가를 수 있는가? 지금 내가 이해하기에는 주의식이 강해야만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미국 서부 법회 설법》)
재작년부터 번뇌가 생겨서 가부좌를 해도 입정(入靜)할 수 없었다. 한동안 나는 스스로 한 차례 놀랐는데 그리고 나서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지만 또 자신이 잠을 이루지 못해서 그렇고 사상업도 그리 많지 않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놀라고 난 후 문제를 찾아보니 아마도 가부좌 중에 자신의 주의식을 느슨히 했던 것 같다. 최근 1년 넘도록 법 공부 중에 자신이 반드시 주의식을 강화해야 함을 서서히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야만 사상업을 배제하고 입정(入靜)에 들어갈 수 있다.
아래에서 내가 수련 과정에서 주의식이 강해야 함을 깨달은 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데는 몇 종류의 상태가 있는데 발정념, 가부좌, 법 속에 녹아들기, 진정으로 깊이 법을 공부해 법을 이해할 때 등이다. 모두 주의식이 강해야만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에 한 서양인 수련생이 밤새도록 심각한 두통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색심(色心) 등을 포함해 많은 집착심이 있음을 똑똑히 알았다고 했다. 한번은 내가 머리가 아팠는데 나는 곧 속으로 중얼거렸다.
“색심을 제거하자, 색심을 제거해.”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아졌지만 또 한동안 계속되었다. 머리가 아픈 부위가 바뀌면서 아팠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색심을 겨냥해서 제거한다고 생각했는데 효과가 늘 아주 빨랐다. 이는 자신이 다른 공간의 요소를 명확히 알고 자신의 한 가지 집착심을 찾아 제거하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제거해 주셨기 때문에 뜻밖에 좋은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집착심은 관념(觀念)이라 주의식이 강해야지만 자신과 좋지 않은 사상을 갈라놓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것에게 완전히 통제당할 수 있다. 가령 두려운 마음을 예로 들자면, 두려운 마음이 자신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주의식이 강해야 하며 두려운 마음이 자신이 아님을 더 청성하게 알 수 있다. 나 역시 속으로 ‘그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아주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아주 많은 집착심과 각종 관념이나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있는데, 모든 사상은 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지만 이는 모두 당신이 아니다.”(《스위스 법회 설법》)
또 말씀하셨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純真)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신체의 병업(病業)에 관해 나는 최근에 이런 체험을 했다. 법 공부가 깊어질수록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또한 사람 중에 형성된 병이란 관념을 타파할 수 있음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나는 반복해서 다음 구절을 외웠다.
“무슨 요추추간판탈출증, 골질증식도 당신이 그것을 떼어버리고 그 장(場)을 쳐서 내보내면 당신은 즉시 나아지는 것을 발견한다.”(《전법륜》)
이 단락의 법을 매번 외울 때마다 늘 체험하는데 내가 병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타파하는데 도움이 된다.
만약 이익심(利益心)이라면 나는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 일부 사람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전법륜》)라는 단락을 반복해서 외운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에 늘 주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자신이 제거하려는 것이 어떤 집착심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법(法)의 힘이 있어서 사부님께서 비로소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또 어떤 집착심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난다면 정법시기(正法時期)이기 때문에 발정념을 더 자주 해야 한다. 아마 어떤 것들은 강요 되거나 증폭되었을 수 있는데 때문에 발정념을 더해서 제거해야 한다.
특히 색심(色心)은 아주 범위가 넓은데 색에 관련된 행동이 없다고 해서 색심이 없는 게 아니다. 색심은 관념적일 수도 있고 또는 정이 아주 깊어도 색심을 가중시킬 수 있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명혜문장이 하나 있는데, 동수의 병업이 심해 병원해 입원했는데 천목이 열린 동수가 그를 돕다가 그에게 색심이 있는 것을 보았다. 동수는 비로소 자신이 사위를 마음에 들어 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다. 이 역시 색심임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럴 때면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기에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전법륜》)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외운다.
글이 아주 짧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에 외울 수 있고 반복해서 외우다 보면 아주 많은 집착심의 근원이 모두 욕망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아주 많은 교란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가령 잘 먹으려는 욕망을 예로 들면 이런 것들은 모두 자신이 청성해져야 하고 주의식이 강해야만 집행할 수 있다.
또 어떤 문제들은 부정확한 상태이긴 하지만 대체 어떤 집착심 때문인지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사부님의 다음 법을 참조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내가 이해한 것은 도피하려는 마음을 제거해야 하며 직면하기 싫은 마음을 제거하고 자신의 각도를 조정해 정면(正面)으로 마주한다면 자신이 문제를 너무 크게 보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나갈 수 있다.
최근 동수들이 오만심(傲慢心)을 많이 토론하는데 나는 이런 마음이 있으면 곧 〈논어〉에서 “대법(大法)은 창세주(創世主)의 지혜이다.”라는 구절을 외운다.
이 구절 법은 내가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교만한 것 등을 제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책은 만능이며 못 하는 일이 없다.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확고히 함과 동시에 당신의 사상 중의 업력을 없애고 있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나는 가부좌하면서 자신의 주의식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주의식을 확인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상업력과 갈라낼 수 있고 여기서 뛰쳐나왔을 때 그것을 배척할 수 있다. 어떤 과정에서는 당신의 주의식이 비교적 청성할 때 사상업도 많이 나타난다. 이전처럼 사상업에 끌려가고 당신이 다시 끌어오길 반복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고 자신이 흐리멍덩하면서도 사상업이 많지 않다고 여기는 부정확한 상태가 아니다. 이런 것은 사실 주의식이 충분히 청성하지 못해 사상업에 끌려갔음에도 스스로 청정(淸靜)하다고 여긴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주인이 집에 있으면 오는 사람은 모두 손님이라(손님은 사상업력를 가리킨다), 환영받지 못하고 없애버린다. 예전에는 손님(사상업력)이 오면 내보냈고 또 손님이 오면 다시 내보내느라 바빠서 숨돌릴 틈도 없었다. 지금은 바뀌어 진정으로 자신의 주의식이 이곳에서 연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6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