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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아프고 나서 깨달은 것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수련한 지 20년이 넘도록 나는 병이 없었고 주사나 약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설 기간에 팔이 아팠다. 아픈 게 아니라 시큰거리는 느낌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연말에 레인지 후드를 닦았는데 레인지 후드가 벽에 걸려 있어서 팔을 들고 오래 닦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냥 당겨서 힘들어 그렇겠지, 3~5일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마치 어떤 것이 어깨 혈자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걷거나 앉아도 안 되었고 팔을 뻗으면 쑤셨다. 밤에는 더욱 괴롭고, 팔을 아무리 놓아도 불편하고,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때마침 설 기간이 되어 며칠을 참았는데 집안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더 번거로워졌는데, 온갖 민간요법이 다 나왔다. 약을 뿌려라, 고약을 붙여라, 불로 지져라, 침을 놓아라 등 다양한 ‘관심’이 등장했다. 오십견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심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었다. 팔이 점점 불편하니 내 마음도 안정이 안 되어 어떻게 좀 해결해 보려고 했다. 이틀간 불을 쬐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때 나는 사람의 방법으로는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자신이 수련인임을 떠올리고 수련인의 방법으로 안을 찾고 발정념을 했다.

수련인에게 우연한 일이란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자신을 찾아보았다. 후드를 닦을 때 일은 손으로 했지만, 마음속에는 온갖 일이 자꾸 뒤집혀 올라왔다. 나는 노모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생들이 자주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일이 더 많아졌고 나의 시간을 빼앗겼다. 나는 가정환경이 원만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겉으로는 내색은 안 했어도 속으로 내키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많은 것을 감당했다고 생각했다. 원망, 불평하면서 환풍기를 다 닦은 것이다. 예전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 환경을 떠나고 싶었고, 어떻게 떠날지 수많은 이유를 생각했다.

이때 나는 알았다. 레인지 후드 때문에 팔이 아픈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아 구세력이 빈틈을 탄 것이다. 그리고 이 잘못된 생각은 오랫동안 자신의 장(場)에 있었다. 예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그것에 의해 좌우되었다. 진정한 수련자는 고생을 낙으로 여기지만, 나는 고생을 부자연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 관념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사부님은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조급해 하셨다. 구세력들도 호시탐탐 대법제자들의 일념을 노리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일부 수련생들은 번거로움에 봉착하기만 하면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언짢아한다. 일부 수련생들은 일단 모순의 충돌, 감정의 충격을 당하면 곧 언짢아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전히 수련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수련하는 사람은 문제를 거꾸로 보는 것으로, 이런 마난(魔難)과 고통을 모두 제고할 좋은 기회, 좋은 일로 보면서 그것으로 하여금 많이 오고 빨리 오게 해서 자신을 빨리 제고하게 한다.”

법을 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셨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모순과 마주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흑색물질이 백색물질로 전화(轉化)되고, 德(더)로 전화되게 하는 것이다.”(《전법륜》)

나는 자신의 오성이 차하고 업력도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덕이 부족하면 흑색물질을 사용해 전화(轉化)해야 하지만 내 관념에 가로막혀 흑색물질이 전화될 수 없었고, 내 공간에 존재하자 좋지 않은 것들이 올라 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수련인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 것으로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늘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이는 사부님의 배치에 불만을 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를 위해 그렇게 많이 했건만,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가고 싶지 않다면 그럼 누가 배치한 길을 간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깜짝 놀랐다. 이건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으로 이건 크게 불경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큰 틈을 탄 것도 당연하구나.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진수(真修)하느냐?”

“나는 진수한다”고 대답했다.

비록 내가 오성이 좋지 않아 수련은 느리지만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돌보며 지켜보신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느낄 수 있다. 그 당시 나는 안사돈과 함께 손자를 보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자꾸 부딪히게 되어 그녀와 함께 아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이것은 ‘행각(雲遊)’이라고 점화하셨다.

또 장쩌민을 기소할 때도 몹시 두려웠지만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셨다.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속의 어리석음이로다”(《홍음 2》〈고집을 버려라〉)

한번은 머릿속에서 “당신은 이미 지옥에서 제명되었다”라는 생각이 스쳐간 적이 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다.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법의 표준에서 거리가 멀고, 수련하는 것도 비교적 표면적이어서, 조금 미적지근하지만, 그래도 수련하고 있어,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

나는 또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백분의 백 신사신법(信師信法)했는가?”

내가 깨달은 것은 진정한 나는 믿지만 믿지 않는 이런 패물(敗物 부패한 물질)들은 진아(真我)가 아니라 구세력이 강요한 것이다. 내가 닦을 것은 바로 이런 불신의 요소들이고, 제거할 것은 바로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이런 패물이며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찾아낸 후 내 마음은 좀 가벼워졌고 더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금생에 줄곧 법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10대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무슨 책이든 기갈 들린 듯 읽었다. 지금 나는 법을 찾았다는 것을 안다. 잠재의식 속에 은연중에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칠흑같이 어두운 광야에서 나는 험한 산길에서 바람과 눈을 맞으며 혼자 걷고 있었다. 매우 먼 곳에 희미한 불빛이 있어서 나는 그 방향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중 10여 일 동안 팔이 심하게 아팠는데, 내가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았을 때 나중에 무엇을 하든 영향받지 않았고 다만 견갑골, 팔꿈치, 손목만 약간 아팠다. 처음에는 사람의 방법을 사용해 조심하고 당기지 않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행동으로 실천했으며, 단체 법 학습과 법 암기를 회복하고 반복해서 선해의 법을 외웠다. 일찍 일어나 연공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정공을 2시간 동안 했다.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닦았고, 속인과 나눈 말에서도 옳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

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또 반복되었다. 나는 철저하게 찾지 못한 것을 알고 더 깊이 찾아야 함을 알았다. 찾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

그러던 중 강소(江蘇) 한 동수의 교류 문장을 보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동수는 글에서 말했다.

“왜 지금 어떤 동수에게 나타난 병업(病業) 가상이 수련 초기처럼 그리 잘 지나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수련인의 층차가 끊임없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수련인에 대한 요구 역시 상보상성으로 점점 더 높아지고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대법제자들은 신체에 무슨 병업이 없지만, 이런 병업 가상을 이용하여 수련인들을 일깨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며 자신에게 어떤 사람 마음이 떠올랐는지 찾아야 한다. 어떤 생각이나 행위가 법에서 틀어졌지 찾아 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 역시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관념을 전변해 층차를 제고하는 한 가지 형식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한 층차에는 모두 부동한 표준이 있다. 층차를 제고하려면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좋지 못한 사상을 버리고 당신의 더러운 것들을 쏟아내어 그 한 층차가 요구하는 표준에 동화(同化)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올라올 수 있다.”(《전법륜》)

마지막에는 모든 집착의 근원인 ‘사심(私心)’을 찾아냈다. 수련 초기에 나는 일찍이 동수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즉 ‘무엇이 닦음인가’라고 물었는데, 정말로 무엇이 닦음인지 몰랐다. 법을 계속 배우다 보니 지금은 닦을 수 있게 되었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염두는 모두 자신이 아님을 알기에 다 원하지 않고 배척하며 제거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그 뿌리 깊은 ‘사(私)와 아(我)’는 건드리지 못했거나 설사 건드려도 승인하지 못했는데 이익심(利益心)은 사심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표현이다.

구세력이 감히 교란하는 것 역시 자신에게 누락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은 자신의 집착심을 닦아버리지 못하고, 당 문화와 무신론에 물들어 선심(善心)이 적어졌으며, 사부님께 대해 폐부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서 꿈에서는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공 할 때는 또 입정(入靜)에 들지 못했다. 정념으로 문제를 고려함은 빈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마난이 있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고통을 통해 도를 깨닫고 소업할 수 있다. 수련인이 마주치는 어떤 일도 사람의 이치와 관념으로 가늠해선 안 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조금 흔들리고, 다시 법으로 바로잡기까지, 질질 끌다 보니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 역시 심성의 위치를 점검하는 것이다. 처음엔 병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수련에 대한 검증임을 몰랐다. 이는 자신이 법리에서 착실하지 못하고 법 공부가 충분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함을 깨달아야 함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음을 통해, 나는 또 나쁜 생각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무슨 큰 마난을 겪지 않았는데 합격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나중에 이 생각은 법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는데 박해받는다는 사유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떤 마난도 배치하지 않으셨다. 마난은 모두 구세력이 강요한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승인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세력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하면 구세력을 승인하는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이것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릿속에 ‘뭔가’가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운행’하고, 때때로 머릿속에 부면(負面)적이고 더러운 것들이 반응되지만 배출하지 못하고 억제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이 ‘물건’은 법을 공부할 때, 연공할 때, 발정념 할 때 늘 교란한다. 원래 ‘사상업’인줄로만 알았는데 지금은 이것이 구세력이 배치한 ‘나쁜 물건’임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똑똑히 인식하고 단호히 그것을 원하지 않고, 배척하고, 그것을 소멸한다!

내가 이것을 깨닫고 나서 동수의 교류 문장을 보니 역시 이 방면의 인식이 있었는데 바로 구세력을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삼계(三界)에 속하지 않고, 구우주(舊宇宙)의 이치에 단속되지 않으며, 누구도 박해할 자격이 없고,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걷는다. 사부님께서 전하신 대법은 모든 것을 선해(善解)할 수 있다.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고, 대법에 동화하는 것이야말로 대법속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리며 사부님 말씀에 따라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서 서약을 실현할 것이다. 높은 질과 양의 법 공부로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 길을 잘 걸어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