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謝師)
【정견망】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인생을 원하는데 중국인들은 특히 ‘오복의 도래(五福臨門)’를 기원한다. ‘오복의 도래’에 관한 최초의 출전은 《상서 홍범》에서 나왔다. 여기에 기록된 오복은 장수(長壽), 부귀(富貴), 강녕(康寧), 호덕(好德)과 선종(善終)이다. 여기서 ‘장수’란 수명이 긴 것이고 ‘부귀’란 돈과 재물이 풍족하며 지위가 높은 것이다. ‘강녕’은 신체가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며 ‘호덕’이란 본성이 어질고 선해 후덕하고 평온한 것이다. ‘선종’이란 마음에 걸림이 없어 편안히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에 대한 고인(古人)의 전면적인 해석인데 이 다섯 가지를 다 갖춰야 지복(至福)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무신론(無神論)에 중독된 지금의 중국인들은 이미 전통의 신전문화(神傳文化)에서 이탈해 대부분 사람들이 평생 ‘부귀’ 두 글자만 추구한다. 즉 큰 부와 지위만 갈망하거나 심지어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되길 바라는데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사존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현재는 오직 이익을 꾀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은 다 하고, 돈을 위해서는 그 어떤 나쁜 짓도 다 한다. 살인하여 생명을 해치고, 돈으로 목숨을 사며, 동성애, 마약 등등, 어떤 일이든 다 있다.”
돈에 대한 숭배와 갈망은 사람이 자아(自我)를 잃게 만들었다. 사실 돈으로 장수를 살 수 없고 건강과 평안도 살 수 없으며 어질고 선량함과 평온함도 살 수 없으며 선종에 대한 이해는 더욱 가소롭다. 살아 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부귀한지가 가장 중요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멋대로 한다. 사실 선종이란 한 사람 생명의 마지막 총결이자, 생명의 가장 큰 축복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가장 닦기 어려운 것이 ‘잘 죽는 것’이다.
선종은 ‘인생 오복’의 하나로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임종 전에 환난을 겪지 않고 육체적인 고통이 없으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서 평화롭고 정상적으로 떠나는 것을 뜻한다. 수행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임종 시간을 예상해 속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에 아무런 걸림 없이 자비심을 품고 자연스럽게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갈 수 있다.
속세에서 한 생명의 최후에 두려움이 없고 걸림이 없으며 고통 없이 평온하게 지나간 후에는 다른 공간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렇다면 생명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은 덕(德)을 쌓고 선(善)을 행하며 경건하게 신을 믿고 공경하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 복을 얻는다. 파룬따파 정견망(正見網)과 명혜망(明慧網)에 보도된 수많은 실제 사례들에 따르면 많은 노인들이 대법 진상을 똑똑히 알고 난 후 경건하게 ‘9자진언(九字真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을 외우면 수명이 연장될 뿐만아니라 생의 마지막에 질병 없이 끝낼 수 있으며 미소를 지으며 잠자다 떠날 수 있다. 이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감히 생각하기도 힘든 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중공이 대법을 박해할 때 공범이 되었고 비록 일시적인 명예와 이익은 얻었지만 결국에는 선종하지 못했다.
가령 중공 CCTV ‘분신자살’을 보도한 앵커 라경(羅京 뤄징)은 파룬궁을 비방하는 거짓말을 퍼뜨렸다가 갑자기 임파선암에 걸려 사망했다. 사망 전 구강 궤양으로 여러 날 먹지도 못했고 심지어 약이나 물을 먹어도 다 토했는데 사망 향년 48세였다.
또 CCTV ‘분신자살’ 사건을 제작한 진맹(陳虻 천멍)은 불과 47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분신자살 사기극을 퍼뜨린 또 다른 CCTV 사회자 방정(方 팡징靜)은 44세의 나이에 위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사망했다.
파룬궁 박해에 앞잡이 노릇을 한 하남 등봉(登封)시 공안국장 임장하(任長霞 런창샤)는 2004년 4월 교통사고로 비참하게 사망했는데, 사망 후 3일 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그녀의 친척들은 모두 그녀가 파룬궁을 박해해서 보응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필자가 직접 목격한 사례도 있다. 한 주민센터 직원이 현지 국보대대 악경들을 이끌고 대법제자 집을 급습해 대법제자를 박해했는데 얼마 후 홍수 통제 중 강가에 서 있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 이런 사람들의 죽음은 모두 ‘선종’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이승에서의 보응에 속하며 다른 공간에서 전생(轉生)한 후에는 아마 더 두려운 보응이 기다릴 것이다.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관건적인 시각에 마땅히 선과 악을 잘 구별하고 불법(佛法)을 존중하며 ‘9자진언’을 성실히 외우고 대법제자들을 잘 대해야만 시작도 좋고 끝도 좋을 수 있으며 유감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