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서산(西山)
【정견망】
깨끗한 한 잔의 물에 한 손이 한 방울의 먹물을 떨어뜨리면 유리잔에 서서히 먹물이 번지는데 유리잔 밖에서 보면 극히 아름답고 섬세한 단청(丹靑)처럼 보인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 유리잔 속의 물이 움직임을 멈추면 더는 감상할 것도 없고 새로 만들 필요는 더욱 없다. 보는 사람마다 혼탁하다고 버릴 것이다. 잔에 든 물을 새로 바꾸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어서 또 다른 한 손이 끊임없이 깨끗한 물을 새로 주입하면 서서히 먹물이 옅어지고 먹물이 끊임없이 잔 밖으로 넘쳐 나온다. 이렇게 끊임없이 밖으로 밀어내는데 아주 오래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잔 속의 물이 비로소 훨씬 깨끗하게 보일 것이다. 이 장면은 한 아이의 감당과 거듭남을 설명한다.
앞에 말한 손은 인간 세상의 더러운 손(흑수)이고 뒷면의 ‘손’은 오히려 인간 세상에 오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선물인 ‘작은 생명’을 원하지만, 나중에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순진(純真)’한 상태로 와서 세상의 더러움을 감당케 하는 것은 모독이다. 아이의 감당은 이기적인 소위 어른들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희생되고 재난을 막고 목숨으로 보상하는데 이용되는가. 한 아이의 죽음은 바로 한 잔(한 생)에 먹을 끊임없이 떨어뜨리는 것으로 최후에 온몸이 흑색 업력으로 가득 차 쓰러진다(도태).
만족함을 알고 비교하지 않는 것은 순진한 생명이 빛을 내게 하고, 만족함을 모르고 질투하면 이기적인 ‘내’가 장난을 쳐서 온통 검은 기를 내보내 우주를 오염시킨다. 매 생명은 다 능력이 있고 또 모두 사랑스러운 것으로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고 그 어떤 사람이 평가할 필요도 없으며며 장점과 단점은 모두 하늘의 도리가 시킨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생의 여정은 완벽함을 연기하기 위한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남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는 구우주 모든 생명의 영광이자 은혜다.
불법(佛法)이 바로 끊임없이 생명에게 다시 태어날 기연을 가져다주는 ‘맑은 물’이며, 정법 수련은 바로 주동적으로 불법에 동화해 주동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 집착을 제거하여 소중한 생명이 되는 것이지 즉 구도받고 돌볼 가치가 있는 ‘빛나는’ 생명이다.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고,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며, “파룬따파”는 중생을 하늘 문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큰손이다. 창세주의 불광(佛光)은 당신과 나를 비추고 있으며 선택권은 이미 각자에게 주어졌다.
우리 소중히 여깁시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7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