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늘 당신들에게 안을 향해 수련하고, 문제가 있으면 자신을 찾으라고 알려 주었다. 당신들이 발정념을 할 때 대내적으로는 자신을 청리한다. 그것은 당신이 자신의 사상을 순정(純正)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당신 몫에 속하고 당신이 담당한 그 환경을 청리하는 것이다.”(《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
사부님의 설법은 나를 일깨워 안으로 찾음에 대해 일부 깨닫게 했다. 우리는 모두 안으로 자신을 찾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나는 안으로 찾는 것이 여전히 표면형식에 머물러 있다고 느꼈다. 모순 앞에서 만약 안으로 자신을 찾을 수 없다면 이는 대법제자의 행동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수련이 차(差)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때문에 비록 마음을 모순 속에서 완전히 내려 놓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억지로 자신을 찾는데 이런 상태는 법에 동화(同化)하지 못한 체현이다. 또한 일부 사람의 것과 내려 놓지 못하는 집착에 장애를 받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로 이런 오성이었다. 때문에 이따금 비록 법에 대조해 자신의 부족을 찾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집착을 제거하지 못한다고 느끼는데 뿌리가 아직 남아 있어 일정한 시기가 되면 또 나올 수 있다. 때문에 진정하게 깨달은 것이 아니라 단지 표면적인 매끄러움만 중시한 것이다.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본 후 나는 안으로 찾음은 단지 모순의 격화를 피하기 위해서거나, 표면적인 화합을 위하거나, 내가 수련을 잘했다는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천체의 운운(芸芸)중생들이 구도받고 내가 감당한 배후의 생명들이 구도 받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면 모순에 얽매여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자신의 공간장이 깨끗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때로는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상대방이 한 일이 너무 불합리하거나 좀 지나치다고 느낀다. 때문에 소위 모순 중에서 자신의 관념을 견지하며 사람의 이치로 가늠하는데 어떻게 보아도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고 기어코 잘못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만약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곧 속으로 화를 내고 모순이 격화될 때면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자신을 찾는다. 이렇게 안으로 찾는 것은 진정으로 법에서 깨달은 것이 아니며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어 자신을 찾는 것이다. 이는 피동적인 수련이지 주동적으로 법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더욱 이러한바, 왜냐하면 중생구도의 사명을 담당했으며, 범위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대법제자들은 전반 세간을 포용하고 있으며, 사람마다 하나의 범위가 있다. 당신이 마주친 것과 접촉한 것은 모두 당신 이 범위 중의 요소이다. 당신이 정념이 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당신의 범위 중에서 높고 크게 될 수 있고, 당신의 범위 중에서 좋지 못한 그런 것들을 내리누를 수 있을 것이다.”(《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 공간장(空間場)의 일체는 모두 사람 이곳 표면에 반영되는데 단지 부동한 시기에 부동한 장면이 나타날 뿐이다.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만난 것, 감수한 것은 사실 모두 내 공간장 물질의 반영이다. 대법제자는 이 큰 무대의 주역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모두 대법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것이 주요 줄거리다. 전체 연극은 모두 이 주인공을 따라 돌기 때문에 그 어떤 일이 나타나든 모두 우리가 제고해 올라갈 수 있고 주인공 역할을 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확실히 이런 것으로 우리 자신의 범위가 포용하는 그 부분 중생은 모두 구도 받기를 기대하며 그들의 주(主)가 자신을 잘 수련해 빨리 제고해 올라가길 기대한다. 때문에 안으로 찾음은 자아(自我)의 기점에 서서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법(法)의 기점에 서서 법과 대조해 자신이 어디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지 보는 것이다.
신우주는 위타(爲他)한 것이고 구우주는 위사(爲私)한 것이라 위타한 생명은 신우주의 표준에 부합한 것이다. 이전에 위타(爲他)에 대한 깨달음은 늘 자신을 고려하지 말고 남을 고려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위타 역시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마치 타인을 위해 고려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런 위타한 기점은 신우주로 들어가기 위한 요구이다. 기점이 올바르게 설정되면 상응하는 그 부분 대응하는 생명은 곧 법에 동화해 신우주의 생명이 될 수 있다. 이는 자신을 잘 닦아서 얻은 것이 아닌가?
때문에 대법제자는 진정으로, 주동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안으로 찾아야 하며 안으로 찾는 법리에 대해 똑똑하고 마음의 용량 역시 커야 한다. 부딪힌 소위 모순이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며 무조건 자신을 찾고 원한(怨恨)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속으로 얼마나 고생스럽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며 일종 법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 있는데 법리(法理) 역시 끊임없이 드러나고 또렷해지며 주의식이 강해지는데 그럼 대법제자는 곧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1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