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지금 20대로 6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서 법을 얻었다. 2011년부터 세 가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법륜》을 40여 번 외웠는데, 자신이 법을 암기한 과정과 수련 심득을 여러분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이가 많거나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 능력이 있거나 젊고 기력이 왕성한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외워야 한다. 아마 내가 제출한 요구가 너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많은 수련생이 모두 아주 익숙하게 외웠다. 그들은 공부할 때에 책이 전혀 필요 없으며 모두 외운다.”[1]
그래서 나는 법 암기를 견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수련한 5년 동안 나는 《전법륜》 전체를 외울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주로 3권의 《홍음》에 나오는 시사(詩詞)와 일부 《정진요지》 경문을 외우곤 했다. 가끔 난관(難關)에 부딪혀 넘길 수 없으면 겨냥성을 지니고 《전법륜》의 특정한 단락을 외웠다. 걸어갈 때나 식사할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법을 외우면 늘 에너지가 온몸을 관통하면서 정념(正念)이 충족해지는 것을 느끼고 때로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또 이후 수련을 위해 튼튼한 기초를 다졌다.
2015년 나는 아직 미성년자라서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할지 몰랐다. 실명으로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을 고소한 후 국보(國保 국가안보부 직원)가 나를 속여서 말했다.
“우리도 파룬궁을 한번 배워보고 싶으니 네가 무슨 자료든 단 가져와 봐, 우리가 보고 나서 돌려줄게.”
나는 순진하게도 이 말을 믿고 협조했고 결국 몇 주 동안 구금되었다.
간수소에는 대법 서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기억나는 법을 매일 반복해서 외웠다. 법 암기는 내게 강대한 정념을 주었다. 나쁜 사람들이 아무리 교묘한 말로 나를 ‘전화(轉化)’하려 해도 나를 조금도 흔들 수 없었다. 나는 수감된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 주었고, 그들 중 일부가 삼퇴(三退)하도록 도왔다. 또 인연 있는 사람을 한 명 만났는데 대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 나는 그에게 법을 들려주고 《홍음》 경문을 써서 주었다. 그가 배운 후 아주 흥미를 갖고 말했다. “(이곳에서) 파룬궁을 만났으니 몇 년 형을 선고받아도 손해가 아니다!” 이 말은 경찰들마저 놀라게 했다.
간수소에서 나온 후 대법 서적, 휴대폰, 컴퓨터가 모두 사라졌다. 나는 막 외지에 와서 학교에 다닐 때라 그 지역 동수들과 연락할 수 없었다. 때문에 여전히 법의 일부만 외울 수 있었다. 대법 서적을 볼 수 없던 두 달이 넘는 그 어려운 기간에 나는 법 암기에 의지해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수련에서 뒤처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층차 제고도 아주 빨랐다. 늦게 수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이전에 구세력에 대한 이해가 막연했는데, 그때 비로소 구세력이 어떻게 된 일인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고, 각종 새로운 법리도 계속해서 마치 영화처럼 나에게 나타났다.
2016년에 나는 정법 노정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을 얻었다. 당시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실 때마다 나는 처음부터 외우고 마음으로 이해했다.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가 발표된 후, 나의 사상 경지는 아주 크게 넓어졌다. 원래 대법제자가 감당하는 각종 박해와 교란은 모두 그 속에 빠져서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되며 마땅히 우리가 자비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의 체현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이 경문을 외우면서 대법제자란 칭호의 위대함과 수승(殊勝)함을 느꼈고, 또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 대해 다른 생명들과 달리 높은 표준으로 요구하심을 느꼈다.
2017년 어느 봄날, 나는 문득 마땅히 《전법륜》 전체를 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일종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속인의 언어로는 형용하기 아주 어렵다. 생각은 아주 간단했는데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날마다 견지해 외운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단 이런 결심이 서자 더는 《전법륜》 외우는 것이 아주 까마득하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튿날부터 나는 매일 일찍 일어나 수업 전에 학교 운동장에 가서 《전법륜》을 외웠다. 처음 외울 때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처음에는 하루에 겨우 몇 페이지밖에 외울 수 없었다. 나는 법 공부와 수련을 지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책을 암송하려 한다면 당신은 다만 특정한 시간을 내서 공력을 좀 들여 암송해 내도록 하라. 이후에는 책을 들지 않아도 통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시간을 집중하여 그를 암송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통독하려 하면, 또 암송하려 하고 또 통독하려 할 것인데, 늘 이런 생각이라면 그럼 늘 이렇게 당신이 암송하면 통독에 영향주지 않을 것이다. 영향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독할 수 없다 해서 제고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책을 암송할 때 매 한 글자의 배후에는 모두 무궁무진한 불(佛)ㆍ도(道)ㆍ신(神)이 있으므로 매 한 글자는 다 당신에게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알게 할 것이다.”[2]
불법무변(佛法無邊)이라 이 단락 법은 내가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게 했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나는 《전법륜》을 최대한 빨리 외우기 위해 당분간 통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한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외우는 것이다. 외우다 한 글자가 틀리면 다시 외웠고 비슷한 구절은 비교해 가면서 외웠다. 처음 한 번 다 외우는데 반년 넘게 걸렸다. 책 전체를 세 번 외운 후로는 익숙해져서 기본적으로 통독하는 것과 속도가 비슷했지만 아직도 외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읽는 것보다 외우는 것이 더 능숙해질 때까지 계속 외웠고 최후에는 책 전체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계속 외웠다.
나는 《전법륜》을 외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포기하거나 실패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전법륜》을 외운 과정은 겉으로 보면 스스로 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서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고 나는 단지 사부님의 배치와 가지 아래 그것을 했을 뿐이다.
내가 《전법륜》을 외우기로 결심한 후부터 나는 다른 경문은 적게 외우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법륜》은 유일하고 완전한 체계적인 우주 대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경문은 단지 《전법륜》의 보조에 불과할 뿐이다. 매번 《전법륜》을 한번 외울 때마다 나는 늘 가뿐함과 신성감을 느낀다.
나는 법을 외우는 것과 통독 모두 단번에 법의 내함(內涵)을 똑똑히 깨닫게 할 수 있음을 체험했는데 이런 점에서 보자면 마찬가지다. 《전법륜》을 외워 좋은 점은 대법을 늘 몸에 지닐 수 있고 문제에 부딪히면 언제 어디서나 법과 대조할 수 있으며 아울러 언제 어디서나 법을 공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제때 자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어 제고와 정념 강화에 아주 좋은 장점이 있다.
법을 외우는 것 자체도 수련이다. 작년에 《전법륜》을 30번 외웠을 때 나는 생각했다
‘꼬박 30번이나 외웠으니 충분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외우지 말까?’
나는 곧 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왜 계속 이어서 외우지 않는가? 더 많이 외울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왜 스스로 ‘30번’이란 틀로 제한하는가? 위로 수련하기에는 아직 멀지 않았는가? 오직 여전히 수련하기만 하면 법을 외우는 것은 끝이 없는 것으로 원만하는 그날까지 얼마나 외울 수 있으면 외우는 것이다. 이에 나는 계속 외웠다.
《전법륜》은 신우주(新宇宙)의 근본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1994년 젊고 능력 있는 제자들에게 책을 외울 것을 요구하셨는데, 여기에는 아마 우리가 아직 모르는 심원(深遠)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 하시니 제자로서 사부님 말씀을 에누리 없이 그대로 따른다면 반드시 제고가 가장 빠르고 자신의 미래에도 가장 좋을 것이다. 또한 신우주에 가장 좋은 것을 개창해 줄 것이다.
사부님 고향 동수들은 법 외우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미 30년 전 단체 법 공부 때 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후 많은 동수들(노년 동수들에게는 이런 요구가 없음)이 계속 해내고 있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전법륜》을 능숙하게 외울 수 있게 된 후 이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며 오히려 아주 쉬운 것을 발견했다. 이에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수련 과정에서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해 보고 싶지 않은” 배후가 정념(正念)인지 아니면 사람 마음인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따파의해》〈베이징(北京)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말씀하신 정법(正法)에 관한 의견〉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8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