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아득한 여름 7.20의 실루엣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25년이 흘렀다. 1999년 7월 20일을 전후해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고, 그 여름은 아득하게 지나갔다.

1999년 내가 대학 3학년 때 파룬궁도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는 항상 내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있었다. 그때는 7.20이 오기 전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두가 추측하고 있었고, 온갖 골목 소식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나는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수련자들의 굳건한 신념을 독려하는 시를 암송하고 있었다. ‘오색 법륜이 천지에 연결되어 있네(七彩法輪連天地)’라는 한 구절만 기억나는데 그 장관을 보고 대법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우리는 항상 법 공부 소조에 가서 ‘4·25 사건’에 대한 생각을 교류하고 자기의 신념을 다졌다.

중공은 7월 20일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을 전국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납치하기 시작했는데, 통상 그날 납치됐다가 그날 풀려났다. 그런 다음 사람들은 다음 날 계속해서 성의 당 위원회와 정부를 방문했다. 7월 21일, 나는 법 공부 소조 조장 부부와 상의해 다음날 아침 일찍 상방하러 가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그 장면과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상방하여 파룬궁을 위해 바른 말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없어지고 단지 법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학교의 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는데 여름 바람이 내 옷자락에 살랑살랑 불어오고 생각이 텅텅 비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캠퍼스를 나와 동수 집에 가서 다음날 상방을 준비했다.

7월 22일 아침 일찍, 우리가 성 정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이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우리도 대열에 합류했고, 주위에는 경찰과 무장경찰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과 무장경찰이 연좌 행렬을 끌어내기 시작했고, 나도 끌려나갔다. 당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두 다리를 두 경찰에게 끌리고 몸은 다른 경찰에게 안긴 채 비록 버둥거렸지만 경찰차에 던져져 운동장으로 실려갔다. 그런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경찰차 안에 앉아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운동장에 와서야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7월 22일 정오, 연공 시간이 되자 운동장의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이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경찰이 연공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엄하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장관을 이루었고, 맞은편 층층의 계단에 앉은 수련생들이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다른 공간에서는 금빛으로 빛나는 불도신(佛道神)이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갑자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지 않고 거대한 에너지장으로만 느껴졌다. 이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격려해 대법에 대한 신앙을 굳어지게 했다.

7월 22일 이후 어느 날, 나는 학교 보위처(保衛處)로부터 파룬궁 수련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할 것을 요구받았고, 나는 그때 “선(善)을 타격하는 것은 반드시 사악하다”(《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는 한 마디만 기억했다. 나는 찢어진 블라우스,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의자에 앉아 파룬궁은 정법(正法)이라고 직언하던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7월은 여름 방학 계절이지만 중국 공산당의 유언비어 선전은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으며 정말 천지를 뒤덮을 기세였다, 그때 마침 내가 아득할 때, 교문을 나서자 어디선가 스피커에서 큰 소리로 중국 공산당의 유언비어를 재생하고 있었다. 나는 유언비어를 듣고 길을 가다가 마음이 초조하고 아득해졌다. 이 유언비어를 어떻게 없애야 할지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듣지 않기로 선택했다.

비록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지만, 마음씨 좋은 수련생이 슬리퍼 한 켤레를 사줬는데, 기억에 이 슬리퍼는 여름 내내 신었다. 집에서는 샌들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고, 여름이 지나 가을 신발을 신을 때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때는 학생이었고, 아무런 능력도 없었지만, 파룬궁이 박해받는데 나는 침묵할 수 없어서, 친숙한 동수와 교류했다. 나보다 한 학년 높은 급우였는데 그는 북경에 갔고 돌아온 후 교류했다. 비록 그 일 때문에 그는 직장을 잃었지만, 그의 굳건함에 감탄했고, 나에게 바른 생각을 격려했다.

발에 맞지 않는 한 켤레 슬리퍼가 여름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아득한 7월을 따라다녔던 기억은 나를 아득한 가운데 법을 굳게 믿는 길을 걷게 했다. 올해 7월, 나는 더 이상 아득하지 않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