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 말 법(法)을 얻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에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을 수련 성취할 것을 요구하셨다. 여기서 나는 가정과 직장에서 내가 어떻게 선량하고 위타(爲他)하게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아들이 결혼한 후, 나는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을 구했다. 간단히 말해 80대 노부부를 위해 집안을 청소하고 점심 식사를 차려드리는 일인데 매일 오전에 약 3시간 정도 일했다. 하루는 할머니 몸이 편찮아서 바지에 똥을 싸고 침대에 누워 있었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라 했다. 이치에 따르자면 이 일은 원래 내 업무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떠올렸고 속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할머니 방 청소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드렸고 또 몸을 씻긴 후 똥 묻은 옷을 깨끗이 빨아드렸다. 퇴근하려고 보니 이미 4시간이 넘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부부는 감동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몰랐다.
역병 기간에 중공의 지역 봉쇄가 아주 심해서 같은 소구(小區)에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출입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두 부부의 자식들도 거주지가 달라서 집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내가 맡은 일도 자연히 쉬게 되었다. 두 노인은 집에서 스스로 식사를 챙겨야 했다. 나는 이런 사정을 알고 집에서 찐빵을 쪄서 가져다드리려 했다. 하지만 사구 입구에서 통제 요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어머님이 아무것도 못 드시는데 어떻게 합니까? 두 분이 다 여든이 넘으셨는데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요?”라고 했다.
통제 요원이 초조해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아주 예외적으로 나를 들여보내 주었다. 나중에 할머니 자녀들도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봉쇄 기간에 나는 근무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늘 자기 가족을 위해 추가적인 희생을 한 것을 감안해서 월말에 임금을 전액 지급하려 했다. 나는 근무시간이 부족하니 당연히 임금에서 차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당황해 하시며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하지?”라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렇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속으로 즐거웠다. 나는 그에게 “제게는 신앙(信仰)이 있어서 제 것이 아니면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살아가는 원칙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내가 아직 파룬궁을 연공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나의 언행을 통해 이미 나의 신앙이 반드시 위대하고 바른 믿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일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을 마치 친부모님처럼 대했고 가급적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려 노력했다. 두 분은 어려운 시절을 겪은 탓에 비록 현재 급여가 낮진 않았지만 다년간 절약이 습관이 되었다. 돈을 아주 신중하게 썼다. 가령 다른 곳의 쌀값이 근처보다 5위안 싸면 그곳에 가서 쌀을 사는 식이다. 쌀가게가 거리가 멀어 집에까지 보내주지 않아서 내가 전동차를 사용해 집까지 가져다드렸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자 노인들도 내가 진심으로 자신들을 대하는 것임을 알고 점점 더 나를 신뢰했다.
집에서 갈비나 야채 등을 살 때면 내게 직접 돈을 주고 사오게 했고 돌아온 후에는 가격도 묻지 않았다. 내가 비번일 때 자녀들이 와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내가 출근할 때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두셨다. 매번 내가 출근해서 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할아버지가 문을 열면서 “얘야 너 왔니!”라고 하셨는데 말투에서 내가 하는 일과 나의 인품에 대한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하는 기간에 나는 여러 차례 사부님의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경문 및 《천사홍복(天賜洪福 하늘이 주신 큰 복)》등 진상 소책자를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제가 보니까 아주 잘 썼어요, 시간 나실 때 한번 보세요.”
처음에 할아버지는 내가 의도적으로 그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가져갔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저 밖에서 주웠다고 생각했다. 또 나더러 파룬궁은 국가에서 금지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에 대해 아는 것은 TV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며 내가 아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친구들은 모두 아주 좋다고 말했다. 그들도 공산당의 역대 운동에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공산당의 선전을 다 믿진 않았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점차 내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원래 큰 부잣집이었고 부친은 아주 선량하셨다고 한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식량을 훔치러 왔다가 자루가 너무 무거워 움직이기 힘들어 하자 아버지께서 도둑이 짐을 메는 것을 도와주셨고 다음에는 힘들지 않게 조금 줄여서 가져가라고 당부하셨다. 이렇게 선량한 노인이었지만 중공이 토지 개혁을 할 대지주(大地主)로 몰려 비판투쟁을 당했고 가산을 모조리 빼앗겼으며 이틀 내내 끌려다녀야 했다.
두 노인은 중공의 사악함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1989년 천안문 학생운동 탄압 사건과 파룬궁 탄압 및 날조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알려주자 그들도 똑똑히 알았고 또 삼퇴를 선택했다. 부부의 딸도 내가 말한 진상을 똑똑히 알고 역시 삼퇴했다.
이 집에서 몇 년을 일하면서 나는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속으로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알았고 또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도 알았다. 그들은 이렇게 대법 사부님의 구도를 받아 아름다운 미래가 있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엄격하게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늘 선량을 유지하며 또 충실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