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小云)
【정견망】
그날 어머니의 여든여덟 번째 생신을 위해 여동생이 우리 집에 왔고, 우리는 같이 요리하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딸이 다가오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외할아버지가 엄마 침대로 갔어.”
나는 당시 화가 좀 나서 급히 가보니 친정 아버지가 정말 침대에 누워 계셨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참았다.
여동생도 화를 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노인네가 남의 침대에 눕다니 정말 사리 분별을 못하네. 여긴 안방인데 만약 며느리였다면 어쩔 뻔했어요?”
내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말자, 나이가 드셔서 정신이 흐릿하신 거야.”
비록 이렇게 남을 위로하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좀 답답했다.
저녁에 《각지 설법 2》〈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을 공부하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아무리 잘 수련했어도 오늘 당신들에게 속인의 마음이 있기만 하면, 바로 마(魔)에게 이용당할 것이다. 자신이 주의하지 않으면 수시로 모두 이용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로서는, 되도록 이런 속인의 마음을 억제해야 하고, 그것이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되도록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야 한다. 일체 환경 속에서, 발생한 모든 일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너그럽고 도량이 커야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가급적 전면적으로 문제를 사고할 수 있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아주 많은 일을 모두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공부했을 때, 대법의 광명이 나의 어두운 사람 마음을 보게 했고, 원망이 초래한 어둡고 우울한 마성(魔性) 물질이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부님의 법이 그것들을 청리해주신 것이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아버지를) 원망했는가? 바로 그가 ‘내’ 이익을 건드렸기 때문인데, 그것은 내 침대이고 내 이불이고…등등.’
모두 이기심이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집착을 너무 중시해서 진아(真我)의 청정한 마음을 교란한 것이다.
다시 안으로 찾아보니 이 일념(一念)은 우선 자아를 수호하려고 나온 것이다. 만약 아버지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했다면 어떠했을까? 이때 나는 문득 아버지에게 심장병이 있어서 하루 종일 정신이 산만하고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신 것이 생각났다. 누가 큰 소리로 말하거나 웃으면 짜증을 내셨다. 아마 그래서 우리가 웃고 떠드는 소리를 피하려다 보니 거실에서 제일 먼 내 방에 들어가셨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더 분명해졌다. 일단 우리가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고 노인의 감수에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더 깊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바로 “만약 며느리였다면 어쩔 뻔했어요?”라는 여동생의 말이었다. 딸이 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하긴 쉽지만, 만약 정말 저런 시아버지가 있었다면 내가 참을 수 있을까? 더 많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일체 환경 속에서, 발생한 모든 일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너그럽고 도량이 커야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체”란 예외가 없다는 뜻으로 아버지든 시아버지든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모시길 거부하고 자녀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원망 때문에 모순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아울러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외부 세계의 어떤 현상에 흔들리기보다는 우선 마땅히 자신의 내심(內心)을 중시하고 중도(中道)를 지켜야 한다. 외부 현상은 바로 자신의 내심이 다른 사람을 통해 투사된 것으로 그는 마치 하나의 거울과 같으며 그를 통해 우리의 내심을 비춰주는 것이다. 만약 그 의식적인 염두가 남을 위해 생각한 것이라면 상화(祥和)로운 생활환경이 나타날 것이고, 만약 무의식적이고 남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면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상유심생(相有心生)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화나게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오직 안으로 자신을 찾기만 하면 반드시 그곳을 가로막고 있는 더러운 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거기에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 마성(魔性)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각지[覺知 깨달아 아는 것]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알고 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신성한 행동으로 늘 주위 사람과 일을 관조(觀照)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반감을 일으키지 않게 할 수 있다. 반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의 감수를 고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것이다. 각자(覺者)는 이렇게 조금씩 곤혹을 각지(覺知)하고 이치로 받아들이며 내심이 청정무위(淸靜無爲)에 도달해 수련 성취해야 한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6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