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문앞 길에서 맑은 시내 굽어보고

섬섬(纖纖)

【정견망】

당조(唐朝) 시인 배도(裴度)는 전설에서 자신의 운명을 고친 것으로 유명하다. 《계거(溪居)》란 이 작품은 시인의 은거 생활을 표현한 것이다.

문앞 길에서 맑은 시내 굽어보고
초가집 처마는 고목과 가지런하네.
붉은 티끌 날아들지 못하니,
이따금 물새 날아와 울 뿐이라네.

門徑俯淸溪
茅簷古木齊
紅塵飛不到
時有水禽啼

“문앞 길에서 맑은 시내 굽어보고
초가집 처마는 고목과 가지런하네.”

여기서 ‘문앞 길’이란 아래로 계곡이 흐르는 시인의 전체 생활환경을 가리킨다. 고인(古人)은 은거할 때 흔히 물이 있는 곳을 선택했다. 계곡이나 강 근처였다. 한편 고목을 표현할 때면 흔히 ‘고목참천(古木參天)’이라 해서 하늘로 우뚝 솟은 나무를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초가집 처마와 가지런하다고 했을까? 왜냐하면 초가집을 높은 곳에 지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담긴 함의는 자신(초가집으로 비유)이 고목처럼 고고(高古 고상하고 고풍스러움)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목표나 동경이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다.

“붉은 티끌 날아들지 못하니,
이따금 물새 날아와 울 뿐이라네.”

“붉은 티끌”이란 단어는 표면적인 뜻은 연지(胭脂)와 술기운을 뜻하는데 흔히 명리를 추구하는 그런 세력을 비유한다. 시인은 번잡한 세상과 멀리 떨어져 세상과 다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들려오는 물새(그리고 다른 물고기)의 울음소리가 환경에 한 가닥 생기를 더해준다.

많은 때 우리는 은사(隱士)의 삶이 무미건조하리라 생각한다. 사실은 정반대로 그들의 생활은 더욱 활기가 넘친다. 다만 명리에 대한 추구와 집착이 없어 사상이 훨씬 단순할 뿐이다.

우리는 또 흔히 수련인은 마치 나무토막이나 절의 불상(佛像)과 같을 거라고 오해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들은 대개 삶과 즐거움을 더 잘 알고 있다. 신(神)의 눈에 모든 물질과 동물은 다 생명과 사유가 있는 것이다. 모두 소통할 수 있다. 그들의 생활은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다.

많은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시인(배도)은 본래 굶어 죽을 운명이었지만 자신의 선행(이에 관한 많은 전설이 있다)으로 인해 운명을 바꿨고 심지어 재상까지 되었다. 이 시에서 은거 생활은 다른 사람들의 은거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비교적 진실한 것이다.

사람은 사실 마땅히 선념(善念)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시인은 다년간 관직에 있었지만 만년(晩年)에 오히려 은거를 선택했다. 고위 관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역주: 배도가 선행으로 운명을 바꾼 이야기는 《유유고풍(悠悠古風): 배도환대(裴度還帶)-띠를 돌려주고 운명이 바뀐 배도》를 참고할 것.]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2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