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源馨)
【정견망】
사람 신체의 평형을 상실하면 곧 병이 생기는데 그럼 의사를 찾아가 약으로 조리해야 육체가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심리적인 평형을 상실하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남이 가진 것은 원망하고 남이 없는 것은 비웃는” 심리 상태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비정상인 나쁜 질병이니 급히 처방전을 찾아야 한다고 인식할 수 있는가?
《산해경》에 따르면 “또 동쪽으로 400리에 떨어진 단원(亶爰)이란 산이 있는데 물은 많고 풀과 나무가 없어서 올라갈 수 없다. 이곳에 짐승이 있는데 그 모양이 살쾡이와 같고 털이 있어 이름을 유(類)라 하는데 스스로 자웅 양성을 지녀 사람이 먹으면 질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산해경》은 미지의 사물에 대한 고인(古人)의 이해와 상상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의 고증에 따르면 그것은 사람이 신(神)과 함께 존재했던 시기로 현대인의 관념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신기한 것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그러나 상상이든 고증이든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지 결코 아무런 근거 없이 나올 수는 없다. 만약 질투에 대응하는 생명의 형상이 존재한다면 그럼 질투 자체가 심층의 다른 공간에서 곧 형상을 지닌 생명이 된다.
사실 우리도 모두 체험하다시피 사람은 심리적 불균형이 안에 있고 물질 신체의 불균형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다. 즉, 안의 것이 밖으로 나오면서 외부 신체의 고통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안에 있는 이 해로운 생명체를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신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사람이 잘 먹고 잘 자지 못할 때면 그것이 안에서 몸을 움직이면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고인은 심리적인 불균형에서 처방을 찾을 수 있었는데 우리 대다수 현대인들은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설마 우리 모두 더 깊은 한 층에서 질투라는 독에 심각하게 ‘중독된’ 건 아닐까?
중국인들이 모두 절실한 체험이 있는데 ‘절대 평균주의’가 마치 습관적인 사유처럼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선천적인 요소는 대개 모두 다른 것으로 전통문화에 따르면 사람은 복덕(福德)이 다르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려면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선(善)을 행하고 덕을 쌓으라고 했다. 그러나 ‘절대 평균주의’라는 이런 변이된 관념에 중독되면 외부의 수많은 사물에 대해 가늠하는 표준이 영원히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이렇게 질투가 생기고 원망이 쌓이면 심지어 덕을 잃고 죄업을 짓는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 우리 개별 생명이든 전반 사회든 모두 아주 고생스럽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몸이 건강해지려 하고, 외부와 내부가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증상’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청성(淸醒)한 사람들은 정통 신전문화(神傳文化)의 기억을 되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神)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문화이고 신은 반드시 이런 변이된 문화의 ‘독’을 제거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