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心清)
【정견망】
수련에서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수련 성취할 수는 없으며 모두 잘못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우리는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아야 하고 남이 잘못했을 때도 여전히 안으로 찾아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
어제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함께 하던 중, 동수 A가 만든 진상 자료가 대개 품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녀에게 이 일을 알리자 그녀가 나더러 (좋지 않은 것을) 골라내라고 했다. 자료를 고르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괴로워 중얼거렸다.
“나쁜 게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질이 떨어지는 것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진상 자료를 보면 중생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이렇게 하면 중생 구도의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줄곧 마음이 불편했다.
A가 떠난 후 동수 B가 내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당신이 그녀를 원망하는 것 같아요! A는 당신 말을 듣고 분명히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내 머리까지 불편했으니까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자신의 내심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녀를 원망한 게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불편했을 뿐입니다.”
생각해보니 동수 B가 기왕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내가 왜 불편했는지 이유를 찾아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아도 마땅히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반드시 좋지 않은 사상이 있기에 비로소 좋지 않은 물건이 표현되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불편해하지만 말고 그녀가 무엇이 좋지 않은 사상인지 찾도록 도와야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안으로 찾은 후 마음이 좀 좋아졌지만 여전히 좀 불편했다. 나는 자신에게 왜 마음이 여전히 불편한지 물어보았다.
나중에 나는 이 불편한 것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깨달았는데 그럼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당시 장면을 회상하다 한 구절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들의 착오를 허용해야 하고, 그가 고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 법의 위대한 점이다.”(《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아, 나는 명백해졌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불편한 것은 다른 사람의 착오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는 착오적인 관념인데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런 관념을 가질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착오를 허용하지 못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착오를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내 마음이 곧 더 활달해졌다. 다른 사람의 착오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그를 더 잘 원용(圓容)할 수 있고 그가 더 좋게 변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사유(思惟)는 또한 미래 신우주의 원용불멸(圓容不滅)에 필요하다. 과거에는 어떤 물건이 나빠지면 곧 폭파하고 다시 만들었는데, 이는 구우주에는 이 좋지 않은 생명을 좋게 바꿀 수 있는 지혜가 없었고, 그저 성주괴멸(成住壞滅)속에서 훼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이 법칙은 누구도 고칠 수 없었다. 지금은 대법이 중생을 구도하러 왔고 한 생명이 좋지 않게 변하면 대법 속에서 바로잡아 좋게 고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허락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또 그가 대법 속에서 갱신하고 좋게 변하게 해야 하는바 이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한 갈래 길이며 이는 또한 우리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바른 길[正路]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문제를 보는 것은 여러분과 같지 않고 세인들과 같지 않다. 사람은 한 사람이 착오를 범한 것을 보고는 그야말로 용서하지 못하는데, 나는 그렇게 문제를 보지 않는다. 나는 전면적으로 한 생명의 정체를 보며, 설령 한 가닥의 희망이 있다 할지라도 그에게 희망을 준다.”(《각지 설법 4》〈2004년 시카고 법회 설법〉)
이번 일을 통해, 사부님의 법과 대조해 나는 다른 사람의 착오를 대하면서 착오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더 큰 흉금을 갖고 더 큰 자비로 대해, 다른 사람에게 더 큰 희망을 주며, 묵묵히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 함을 깨달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696